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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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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오른쪽으로 메치는
무도(武道) 교육의 복권

침략전쟁과 궤를 같이한 유도·검도 등 ‘무도’ 필수과목 채택
자민당이 개정한 ‘우익적 교육법’ 실행하는 민주당의 우선회 상징
등록 2012-04-27 06:21 수정 2020-05-02 19:26

1년 동안의 한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가는 일본인 유학생에게 소회를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한국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운동을 싫어하더군요.” 여기서 말하는 운동은 헬스클럽 등에서 땀을 흘리는 근육운동이나 다이어트가 아니라 햇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는 야외운동이다. 야외에서 햇빛을 쐬며 땀을 흘리는 운동을 싫어한다는 뜻이다. 사실 살을 빼고 화장품을 바르고 멋진 옷을 선호하는 외모 가꾸기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남녀 모두에게 일상의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천박하지만 설득력 있는 소리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따라서 외모 가꾸기에 혈안이 된 젊은 세대가 피부 미용에도 좋지 않고 땀 냄새 물씬 풍기는 야외운동을 경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입시 공부와 취직 준비에 내쫓기는 젊은 세대에게 야외운동이 몸에 좋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잔소리일 뿐이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본도 그리 다를 바 없으니 이 일본인 학생의 느낌은 새삼스러운 감이 있다.

‘구질구질한’ 체력장 떠올리는 이유
운동을 경원하니 과거에 비해 체격은 커졌는데 체력은 약해졌다는 조사 결과가 일상의 느낌에서도 확인되는 셈이다. 이런 풍조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해법을 이리저리 고민하고, 정부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 교육에 체육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체육·미술·음악 시간을 늘리고 사회체육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니 이런 해법에 딴죽을 걸 까닭은 없다. 하지만 국가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땀 흘리는 체육 과목’을 신설하고 이를 대학입시에 반영하는 방식을 도입한다면 두 손 들고 환영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 대목에서 1970년대에 학교를 다닌 세대들은 아마 체력장을 떠올릴 것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그 자체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건강한 몸’을 신체 점수로 등급화·서열화하는 체력장 제도는 예외조항을 둔다고 해도 장애인 차별을 온존시키거나 조장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개인의 개성에 불과한 신체 능력의 특징을 국가가 기준을 정하고 점수를 매겨 성적에 반영하는 것은 전형적인 파시즘 교육이다. 국가가 장악하고 관리하는 교육은 국가의 의지와 분리할 수 없다. 체력장이 단순히 체격을 키우고 체력을 늘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음은 체력장 과목에 있었던 멀리던지기가 고무공이 아니라 모의 수류탄이었음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체력장 세대는 체력과 체격을 키운 게 아니라 적에 대한 살상 의지를 키운 것이다.
일본 문제를 다루는 이 연재물에서 ‘구질구질’한 체력장의 기억을 떠올리는 데는 까닭이 있다. 올해 4월부터 일본 중학교에 무도 과목이 필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도는 유도, 검도, 스모(일본 씨름)이다. 일본 중학생들은 이제부터 남녀 구별 없이 모두 무도를 배워야 하지만, 이 중에서 60% 이상은 유도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도 과목 필수화에 대해 반대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유도가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이유를 근거로 든다. 지난 28년간 중·고등학교에서 유도 연습 중에 사망한 학생이 무려 114명이고, 중증 장애가 남은 학생은 275명에 달한다. 을 비롯한 일본 신문들이 사설을 통해 사고 위험성에 대한 만반의 대책이 갖추어질 때까지 무도 필수화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기존 사고가 대체로 정규 수업이 아닌 동아리 활동 중에 발생한 것이니 유도 등의 무도를 필수 과목화하는 것이 오히려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따라서 무도 필수화에 대한 반대 여론은 안전상의 문제에 쏠려 있을 뿐 무도 그 자체는 아니다.

오늘에 되살린 교육칙어, 2006년 교육기본법
하지만 의문이 생긴다. 왜 하필이면 무도일까? 만일 체격과 체력을 키우는 게 체육 교육의 목표라면 반드시 무도일 까닭은 없다. 무도가 다른 체육 종목에 비해 체력과 체격을 키우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과학적 검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교육은 국가의 의지다. 교육 과목에는 국가 교육의 이념과 목표가 반영된다.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무도 필수과목화에는 반드시 국가의 정치적 의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도 교육을 필수화해서 새로운 세대에게 심어주려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의지는 무엇일까?
무도 필수화는 2006년에 개정된 교육기본법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근대 이후에는 세 가지 교육 관련 법규가 존재했다. 첫째는 1889년 발포된 대일본제국헌법에 이어 1890년에 발포된 ‘교육칙어’이다. 교육 이념과 원칙에 대한 천황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상황과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1968년에 제정된 한국의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리면 된다. 교육칙어가 담고 있는 이념은 명확하다. 천황과 국가에 충직한 신민 양성이 교육목표이고 전통, 즉 천황에 대한 충성이 교육이념이다. 이런 교육칙어하에서 침략전쟁에 충직한 돌격부대가 양성됐다. 이 때문에 아시아에서 2천만 명이 죽었고, 일본인도 3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둘째는 교육칙어를 부정하는 형태로 패전 후인 1947년에 제정된 ‘교육기본법’이다. 평화와 민주주의 이념을 담고 있는 같은 해에 제정된 이른바 ‘평화헌법’과 쌍둥이다. 교육목표는 한마디로 하면 ‘민주시민 양성’이었다. 당연히 교육칙어가 담고 있던 목표와 이념은 부정됐다. 그래서 ‘애국심’이나 ‘전통’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셋째는 2006년에 전면 개정된 현행 교육기본법이다. 당시 아베 신조 내각은 헌법 개정 등 극우파적 정치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개혁의 일환으로 교육기본법의 전면 개정에 성공한다. 2006년 전면 개정은 1947년 교육기본법의 이념을 부정한 것이었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2006년 교육기본법 개정은 1890년 교육칙어를 계승한 것이 된다.
2006년 개정 교육기본법은 교육목표를 ‘전통과 문화의 존중’에 두었다. 원안에 있던 ‘애국심’ 문구를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문부과학성 자문기관인 중앙교육심의회는 2007년에 ‘전통과 문화’를 중시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으로 무도 과목 필수화를 건의했고, 문무과학성은 학습지도 요령을 개정해 올해부터 무도를 필수과목으로 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무도 과목 필수화의 목적이 체력 및 체격 향상이 아니라 ‘전통과 문화의 존중’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무도를 전통의 대표로 삼았을까?

자민당 뛰어넘는 민주당 우선회 상징
저명한 무도가인 우치다 다쓰루는 무도 필수과목화에서 말하는 ‘전통문화 회귀’를 파시즘기의 무도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전통의 무도는 메이지유신 이후에 소멸했고 파시즘기 무도는 오직 강한 병사를 육성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을 지녔으니, 일본 정부가 이를 ‘부흥해야 할 전통문화’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라 비판한다. 실제로 무도는 파시즘 교육과 관련이 깊다. 무도가 중학교 체조 과목의 하나로 학교 교육에 정식으로 채용된 것은 1901년이다. 검도와 유도가 중학교 및 사범학교 남학생의 필수과목이 된 것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1년이다. 또한 1939년에는 당시 소학교의 정규과목으로 무도가 채택됐다. 침략전쟁의 확대와 궤를 같이한 셈이다.
일본 패전 뒤 미군점령기에 미군이 무도 교육을 금지한 것은 무도를 스포츠가 아니라 파시즘 교육 그 자체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8년 유도·검도·스모가 학교 교육에 부활됐지만 필수과목은 아니었다. 게다가 무도라는 이름 대신 ‘격기’(格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무도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군국주의의 냄새를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1989년에 와서야 격기라는 이름이 없어지고 무도라는 이름이 부활됐다. 따라서 2012년의 무도 과목 필수화는 무도의 완전 ‘복권’을 의미하는 셈이다. 물론 무도가 복권됐다고 해서 학교 교육에서 무도를 통해 본격적으로 파시즘적 교육이 이뤄지고 파시즘기의 돌격부대 같은 학생들을 양성해 일본이 병영국가로 돌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파시즘기에 돌격부대를 양성했던 교육이념을 계승함으로써 일본 현대사회의 이념적 기둥과 방향이 또 하나 세워졌다는 점이다. 더구나 교육기본법을 전면 개정한 것이 자민당 역대 내각 중에서 가장 오른쪽이었다고 하는 아베 신조 자민당 내각인데, 이를 계승해 2012년 실천에 옮긴 것이 자민당을 대신해 등장한 민주당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민주당 정권 출범 때부터 별반 기대를 걸지 않았던 필자의 입장으로 봐도 민주당의 우선회는 과거의 자민당을 훨씬 뛰어넘는다.

오리엔탈리즘이 강화하는 무도의 신화
“18살 때 (1954)를 보았다. 나는 이 영화를 일본인만의 영화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영화라 생각했고, 사무라이의 삶의 방식에 심취했다. 그리고 23년 뒤 (2003)에 출연했다. 내 안에 있었던 무사도 정신 때문이다.” 톰 크루즈가 에 주연배우로 출연한 이유를 말한 대목이다. 그가 무사도 정신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내 관심이 아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는 사무라이를 초역사적 존재로 신비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에 사로잡혀 있다. 는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미국 언론인 더글러스 매클레이가 외교전문지 에 국내총생산(GDP)이라는 경제지표 대신 문화를 통해 일본을 재평가해야 한다며 ‘쿨함’을 일본 문화의 특징으로 내세운 것이 2002년의 일이다. 톰 크루즈와 매클레이 덕분에 ‘멋있는 일본 문화=무도’라는 등식이 만들어졌고, 이 이미지는 일본에 전해졌다. 이 무렵부터 일본에서 무도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무도의 복권에는 국경을 뛰어넘는 이런 문화적 오리엔탈리즘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도가 전통인지 혹은 일본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도를 통해 일본 문화를 재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무도 필수화가 일본의 이념적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타임은 분명하다. 더욱 오른쪽으로!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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