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전세계에서 적어도 527명의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중에는 2010년 7월27일 일본 도쿄 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된 2명이 포함돼 있다. 이날의 사형 집행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사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날이었겠지만, 연례행사처럼 반복돼온 일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까닭은 없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는 매해 있었던 일이 그날도 일어났을 뿐이다. 내가 이날의 사형 집행을 특별히 떠올리는 것은, 바로 한 해 전인 2009년 9월에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돼 사형제 폐지나 집행 정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기대했던 사형집행 정지
물론 민주당이 선거공약에서 사형제 폐지를 공식적으로 내건 적은 없다. 그러니 민주당의 공약 위반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당 법무부회가 종신형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었고, 연립정권의 파트너인 사민당이 사형 집행 유보 방침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었으니,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사형제를 폐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사형 집행을 정지하는 흐름을 만들 것이라는 게 대개의 예상이었다. 민주당 정권의 초대 총리인 하토야먀 유키오가 사형폐지론자인 지바 게이코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을 때만 해도 ‘드디어’ 일본도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의 입구에 들어설지 모른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이 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지 불과 1년도 안 된 시점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예상을 뒤집은 것이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날 사형 집행에 서명한 법무부 장관 지바 게이코가 평소에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고, 1994년 초당파로 결성된 ‘사형제 폐지를 추진하는 의원연맹’(2009년 12월 현재 80명이 참가)에 속해 있던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바는 장관 취침 뒤인 2010년 2월24일 국회 법무위원회에 출석해 “사형제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해 사형폐지론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런 지바가 태도를 바꿔 사형 집행 명령서에 서명한 것이다. 지바는 세간의 비난 여론을 의식해 사형 집행에 입회하고 사형 집행 과정을 기자들에게 공개했지만, 그가 왜 평소의 ‘신념’을 버리고 사형 집행 명령서에 서명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사형 집행에 입회한 감상을 “비인간적인, 무기질의 죽음과 사형 방식에 위화감을 느꼈다”는 말로 남겼을 뿐이다. 정치적 신념을 가진 개인이 행정부의 수장 등의 자리에 앉자마자 돌변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지바의 ‘전향’이 두드러지게 보인 것은 그가 야당 시절에 했던 발언 때문이다.
2005년 10월30일 고이즈미 내각에서 법무부 장관에 발탁된 자민당 소속 스기우라 세이켄은 취임식에서 “문명론적으로 봤을 때, 장기적으로는 사형 폐지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나는 재임 중에 사형 집행 명령서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로부터 불과 1시간 뒤 “개인으로서의 발언과 직무로서의 책임이 다르다”는 말을 통해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지만, 스기우라는 자신의 재임 기간 중에 사형 집행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후일 “사형폐지론자는 아니지만 신념에 따랐다”고 밝혔다. 그가 불교신자였다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당시에 발언을 철회한 법무부 장관 스기우라를 향해 “사형제도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사형제도 폐지를 향해 자신의 자세를 관철시켜야 한다”며 정면에서 비난을 퍼부었던 지바 게이코는 장관이 되자 사형 집행 명령서에 서명한 것이다. 보수 정치가인 스기우라가 서명을 하지 않았는데 민주당의 ‘사형폐지론자’인 지바는 왜 사형 집행 명령을 내렸을까?
사형제 폐지 위해 사형 집행?
사형 집행에서 1년이 지난 2011년 7월28일, 지바는 인터뷰에서 관료압력설을 부인하고 “형벌이란 국가의 근간인데, 사형제도에 변화를 꾀하려면 장관으로서의 책무를 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조에는 모순되지만 법무부 장관으로서는 사형제를 논의하기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사형 집행에 입회하고 사형 집행을 공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사형제 존폐 논의를 일으키기 위해 장관으로서의 직무 책임을 피하지 않고 집행 명령서에 서명했다는 뜻이라면, 아무리 사형 집행을 공개하고 장관으로서 입회했다고 해도, 사형수 2명의 죽음을 사형제 논의와 맞바꾼 셈이 된다.
몇 년 전 한국의 한 대학에서 강연했을 때의 일이다. 일본에 사형제가 있을까요? 대답은 반반으로 갈렸다. 사형을 집행하고 있을까요? 집행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답변이 훨씬 많았다. 한국이 사형제 집행을 정지한 지 10년이 넘어선 시점이어서 사형제에 대한 기초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을 때였다. 청중은 대체로 사형제 존치 여부를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구분에서 상상하는 듯했다. 사형제가 있는 나라는 후진국, 없는 나라는 선진국. 이 구분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반드시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일본은 ‘후진적’인 아시아에 자리해 있으니 사형제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선진국이기도 하니 사형을 집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었던 듯하다.
국제앰네스티 조사(2009)에 따르면,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나라가 96개국, 통상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나라가 9개국,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의 사형 폐지 국가가 34개국이다. 한국은 마지막에 속한다. 모두 합쳐 139개국이다. 사형제 존치 국가는 일본을 포함해 모두 58개국이다. 일본은 선진 공업국 가운데 사형을 폐지하지 않은 소수의 나라 중 하나다. 사형제 존치 국가는 대부분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국가에 집중돼 있다. 선진 7개국(G7) 중에서는 미국을 제외하면 일본만이 사형제 고수 국가다. 미국조차도 15개 주는 사형제를 폐지했다. 또 1994년을 정점으로 사형 판결이 줄어들어 2006년 현재 약 3분의 1 수준이다. 사형 집행도 1999년에 비해 2006년에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일본의 사형 판결은 2000년 이후 증가하는 경향에 있고, 사형 집행도 1993년 이후 매년 이루어지고 있다(2011년은 없었음).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일시적으로 사형 집행이 정지된 적이 있지만, 이는 1989년에 있었던 유엔의 ‘사형 폐지 국제조약’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은 비준하지 않았다.
이러니 일본에 가해지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없을 수 없다. 일본도 비준한 국제인권(자유권) 규약 제10조 3항에는 행형의 목적을 수형자의 사회복귀 및 교정에 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람을 죽였으니 국가가 대신해서 죽여주는” 이른바 ‘죗값’의 논리를 부정하는 셈이다. 유럽연합(EU)의 가맹 조건 중 하나가 사형제 폐지다. 가맹국 중에 오직 라트비아만이 군법상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EU 가맹국은 1997년 이후 단 한 번도 사형을 집행한 적이 없다. 유럽에서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 접한 벨라루스만이 사형제를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게다가 2001년 6월, 유럽평의회는 사형제를 존속시키고 있는 미국과 일본 양국에 사형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2007년 유엔총회에서는 사형제 폐지를 포함해 사형 집행 정지를 요구하는 결의도 있었다. 그러나 이때도 일본 쪽은 반대표를 던졌다.
흉악 범죄, 줄어도 는다고 느껴
즉, 사형제에 대해서만큼은 일본은 요지부동인 셈이다. 일본 정부의 공식 방침은 2007년 10월23일 각의 결정에 나와 있다. 사형제를 존치하는 이유로 국민의 압도적 지지 여론과 흉악 범죄를 들었다. 실제로 흉악 범죄가 늘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살인사건은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찬성론자는 사형제 덕분에 흉악 범죄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우발적인 살인은 우발성과 찰나성 때문에 자신의 살인 행위 여부를 사형제 존치 여부에 결부시켜 판단할 이성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계획적인 살인은 자신의 체포를 전제로 해 살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을 죽일지 말지를 사형제 존치 여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형제 존치 여부를 흉악 범죄와 연결해 판단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역시 여론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하다. 내각부가 실시한 조사를 보면, 사형제 지지 여론이 1994년 73.8%, 1999년 79.3%, 2004년 81.4%, 2009년 85.6%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사형도 어쩔 수 없다’는 문항에 대한 찬성을 사형제에 대한 직접 지지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사형제 폐지 여론이 각각 13.6%, 11.9%, 6.0%, 5.7%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 소극적 지지를 포함한 사형제 찬성 여론이 높고 또 매년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흉악 범죄는 실제로는 줄고 있는데, 사람들은 흉악 범죄가 늘어나고 있으니 사형제를 존치시켜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미디어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지바의 ‘전향’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국가가 합법적 살인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전쟁과 사형뿐이다. 사형은 오심이 판명되었을 때 되돌릴 수 없다.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유명한 4대 오심 사형 판결이 있다. 1948년 구마모토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멘다 사카에(당시 23살)는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 이 때문에 1951년 사형이 확정되었고 1983년 재심 청구로 무죄판결을 받아 석방될 때까지 34년6개월이나 사형수로 복역했다. 1950년 가가와현 살인사건으로 체포된 다니구치 시게요시(당시 19살)는 1957년에 사형이 확정돼 1984년 재심 청구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33년11개월이나 사형수로 복역했다. 1954년 시즈오카현에서 발생한 어린이 유괴 살인사건으로 아카보리 마사오(당시 25살)는 1960년에 사형이 확정돼 1989년 재심 청구로 무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무려 34년8개월을 복역했다. 1955년에 미야기현에서 방화 살인 혐의로 체포된 사이토 유기오(당시 24살)는 1960년에 사형이 확정돼 1984년 재심 청구로 무죄판결을 받아 석방될 때까지 28년7개월을 복역했다. 만일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사후에 사형 판결이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어도 이들을 살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재심 청구도 없었을 것이니 이들은 죽어서도 계속 살인자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형제 폐지로 가는 길
2012년 1월12일 현재 일본의 확정 사형수는 모두 133명이다. 이들 중에 억울한 사람이 없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들 중에는 아사하라 쇼코 교주를 포함해 옴진리교 관련자 13명이 포함돼 있다. 옴진리교가 일본 사회에 준 충격을 생각하면 사형제 폐지는커녕 사형 집행 정지조차 기대하기 힘들다. 또 2009년부터 시행된 재판원 제도(살인죄 등의 판결에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제도)가 사형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실제로 2011년 7월 현재까지 재판원 제도로 사형 판결(1심)이 내려진 사람은 모두 8명에 이른다. 국회에 사형 폐지 법안이 제출된 적은 1901년, 1902년, 1907년, 1956년 단 네 번뿐이다. 무려 60년 전 일이다. 사형수가 무기형으로 감형된 사례는 1975년이 마지막이다. 사형 폐지를 주장하는 정당은 공산당과 공명당뿐이고, 사민당은 사형 집행 정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사형제 폐지로 가는 길은 가시밭길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아예 길이 없어 보인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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