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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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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의 볼모가 된 일본 열도

과도적 에너지에 과도한 지지 보내는 일본 전력산업 관련 노조와 불확실한 원전 공포보다 풍요로운 전력 소비 택한 일본 국민
등록 2011-05-27 03:11 수정 2020-05-02 19:26
일본 주부전력 사장 미즈노 아키히사가 지난 5월9일 나고야시 본사에서 하마오카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라는 정부의 요청에 응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한 뒤 퇴장하고 있다. 연합 AFP

일본 주부전력 사장 미즈노 아키히사가 지난 5월9일 나고야시 본사에서 하마오카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라는 정부의 요청에 응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한 뒤 퇴장하고 있다. 연합 AFP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지난 5월6일,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을 통해 하마오카 원전이 자리한 지역이 진도 8 정도의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87%에 이르기 때문에 ‘국민의 안전’을 고려해 하마오카 원전의 가동 중지를 관할 회사인 주부전력에 요청했음을 밝혔다. 이후 간 총리는 원전 증설 계획과 핵 재처리 정책의 재검토를 발표하는 등 기존 에너지 정책에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하마오카 원전 가동 중지에 부정적 여론?

하마오카 원전 가동 중지에 대해 사민당과 공산당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지만, 자민당과 공명당은 모두 이 ‘결단’을 “갑작스러운 당돌한 결정”이라 비난하며 향후 예상되는 전력 부족 사태가 산업계에 끼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또 일본 최대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은 “당돌하고 졸렬한 결정”이라며 간 총리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집권 민주당 내의 반응도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민주당 참의원 의원인 간사이전력 노조 출신의 후지하라 마사시는 “관계자 등에게 사전에 상의가 전혀 없었다. 듣기만 해도 화가 난다”고 말했을 정도다. 언론의 반응도 신통치 않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간 총리의 하마오카 원전 가동 중지 요청 등을 포함한 일련의 발언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원전 안전 신호’가 무너졌으니 기존 원전 에너지 정책에 변화를 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의 반응이 반드시 호의적이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일국의 총리가 민간기업에 가동 중지를 직접 요청한 것 자체가 매우 ‘반시장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간 총리의 결단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또 국회 등을 포함한 관계자와 상의하지 않고 총리가 독단적으로 가동 중지 요청을 내렸다는 절차상의 문제점을 그 이유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하마오카 원전 가동 중지가 원전 폐기 움직임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 있는 듯하다.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쪽은 하마오카 원전 가동 중지가 민주당 정권의 에너지 정책 방향 선회로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마오카 원전 중지 요청을 탈원전 시대의 서막으로 읽는 것은 성급하다. 간 총리의 결단은 원전 자체의 불안정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성 장관은 이번 조처가 하마오카 원전에만 적용되는 예외적 조처이며, 따라서 다른 원전으로 가동 중지 요청이 확대되는 일은 없으리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자민당을 대신해 민주당 정권이 등장했을 때, 일본의 첫 번째 실질적 정권 교체에 대한 기대는 안팎에서 적지 않았다. 외교안보와 고용은 물론 기존 원전 의존 에너지 정책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민주당 정권이 기존 자민당 정권과 차별성을 보인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후텐마 기지, 교과서 등의 문제에서 자민당과 다름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에너지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의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가 파손된 모습. 연합

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의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가 파손된 모습. 연합

자민당보다 원전 추진 가속화한 민주당

민주당은 1998년 창당 이래 원전 증설 등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따라서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면 1960년대 이후 원전 확대로 일관한 자민당과는 다른 정책을 취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민주당의 원전 정책은 2002년 민주당 경제산업부문회의 에너지 전략위원회가 발표한 ‘민주당 에너지 기본정책’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원자력 정책은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며, 원자력은 과도적 에너지로 자리매김해 이를 신중히 추진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과도적 에너지’란 ‘대체에너지 개발 실용화 시대까지의 교량 역할’이라는 뜻이다. 야당 시절의 민주당은 원전 폐기 같은 적극적인 정책을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원전의 위험성과 한시성을 인정함으로써 원자력을 ‘항구적 에너지’로 보는 자민당과 대조를 보였다. 따라서 정권 교체 뒤 원전 반대파가 민주당에 변화를 기대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집권 이전인 2006년부터 에너지 정책에서 자민당에 근접하는 ‘보수화’ 정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야당 시절인 2006년 7월26일 민주당 경제산업부문회의 에너지전략위원회는 원자력을 ‘과도적 에너지’로 자리매김하는 기존 당 방침에 변화를 꾀하려 원전 건설 추진을 내세웠다. 그리고 정권 교체 뒤인 2009년 9월,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25% 삭감할 것을 표명했고, 그 다음해인 2010년 3월에는 온실가스 삭감의 구체안으로 ‘원전 추진’ 방침을 밝혔다. 민주당과 연립정권을 하고 있던 사민당은 원전 추진에 반대했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원자력은 CO2를 줄이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에너지”라고 발언해 결국 온난화 대책 기본법에 ‘원전 추진’ 문구가 들어갔다.

지난해 6월 등장한 간 나오토 내각은 하토야마 내각의 원전 추진 방침을 한층 더 가속화했다. 간 나오토 내각이 발표한 ‘신성장 전략’에 ‘원전 수출’이 들어갔다. 국내의 원전 증설 방침을 확대해 원전 수출로 정책 방향이 급선회한 것이다. 기존 제조업 중심의 수출 전략이 한계에 부닥친 만큼 새로운 수출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해 등장한 게 원전 수출이었다. 원전 수출로 방향을 급선회한 것은 아랍에미리트와 베트남(제1기) 원전 수주 경쟁에서 각각 한국과 러시아에 패배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된 듯하다. 결실은 바로 찾아왔다. 지난해 10월31일 베트남이 추진하는 100만kW급 원전 2기 건설을 일본 쪽이 수주하는 것으로 합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인도와의 원자력 협정 교섭에 착수했다. 그리고 일본은 ‘원전 특수’에 들끓었다. 민주당의 에너지 정책은 성공한 듯 보였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고, 기존 ‘원전 수출’ 방침에는 차질이 예상된다.

원전 압도적 지지하는 일본노총과 전력총련

이렇게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지난 50년 동안 일관되게 원전 확대 정책을 추진해온 자민당에 있지만, 민주당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셈이 된다. 만일 원자력을 ‘과도적 에너지’로 자리매김하는 민주당의 초기 방침이 지속됐다면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원전에 대한 소극적 반대론에서 적극 추진론으로 바뀌게 되었는가?

일본 국민은 원전이 주는 공포보다 풍요로운 전력 소비에 한 표를 던지는 듯하다. 환하게 불을 밝힌 도쿄타워와 도쿄 도심 야경.

일본 국민은 원전이 주는 공포보다 풍요로운 전력 소비에 한 표를 던지는 듯하다. 환하게 불을 밝힌 도쿄타워와 도쿄 도심 야경.

도시 중산층의 정치적 변화가 민주당 집권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은 기본적으로 노조에 있다. 민주당의 최대 지지 기반은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이다. 조직원 680만 명을 거느리는 최대 노동단체이다. 전후 전투적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소효(總評·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가 1989년 해산되고 이를 대신해 등장한 것이 바로 렌고다. 렌고에 반대해 옛 사회당계 일부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공산당계는 전노련(전국노동조합총연합)으로 각각 분가했지만 렌고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이 렌고가 조직적으로 원전 추진에 찬성했다. 게다가 렌고의 산하조직인 전력총련(전국전력관련산업노동조합총연합)이 민주당에 강력한 압력단체로 작용했다. 전력총련은 후쿠시마 원전의 관할회사인 도쿄전력을 비롯해 원전을 포함한 전력 관련 회사의 노조가 가맹하는 산별노조다. 무려 230개의 조합과 216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다. 과거의 민사당을 지지했던 보수적 노동단체인 전력노련(전국전력노동조합연합회)이 그 전신이다. 전력회사 사용자들의 단체인 전기사업연합회는 자민당을 지지하고, 그 노조인 전력총련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사 간 정치적 분업 체제인 셈이다. 일본 시장을 ‘조직화된 시장’이라 표현하는 학자도 있지만, 일본의 정치시장도 ‘조직화된 시장’이다. 도쿄전력 등 관련 회사, 자민당, 경제산업성 관료와의 오래된 삼자 유착관계를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소리가 있지만, 전력 관련 회사의 노조와 민주당의 유착관계도 만만치 않다. 전력총련의 민주당에 대한 압력 행사는 인력 ‘파견’, 정치자금, 표몰아주기로 이루어진다. 전력총련 출신의 인물을 직접 민주당 의원(지방의원 포함)으로 ‘파견’해, 민주당의 에너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재 참의원 의원 2명이 전력총련 출신이며, 전국에 약 150명의 전력총련 출신 지방의원이 있다. 이 의원들은 주로 원전 입지 지역을 지역구로 하기 때문에 원전 정책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치자금 지원도 만만치 않다. 전력총련은 정치단체로 전력총련정치활동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이 위원회를 통해 전력총련 출신 정치인들에게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이 전달된다. 앞에서 언급한 전력총련 출신 참의원 의원은 이 위원회로부터 연간 약 3천만엔의 기부를 받고 있다. 선거 때 전력총련은 추천 후보를 발표하고 노조원들의 집표 활동을 공식화한다. 전력총련의 집표력이 어느 정도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노조 출신 비례후보자의 득표수와 출신 노조 조합원 수의 관련을 보면, 대체로 해당 후보의 득표수는 조합원 수의 10∼20%에 불과한데, 전력총련 출신 후보의 득표수는 조합원 수의 거의 100%에 달한다.

기존 에너지 정책 변화 불확실

간 나오토 총리의 결단으로 일단 14기에 달하는 원전 신규 건설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게다가 ‘고속증식로’가 실질적으로 가동 중지 상태에 있는 것을 고려하면 기존 핵 재처리 방침도 방향 선회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일본이 원전과의 결별로 나아갈 것 같지는 않다. 지방선거에서 원전 지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후보들이 거의 당선된 것을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도시인들은 불확실한 원전 공포보다 ‘풍요로운 전력 소비’를 선호함을 알 수 있다. 노조가 변하지 않으면 간 총리의 ‘결단’도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모두 원전의 볼모가 돼 있는 셈이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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