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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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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애의 마술사, 미실

등록 2005-05-25 15:00 수정 2020-05-02 19:24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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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어쩌면 세계) 역사상 가장 요란한 삶을 살았던 여자인 미실, 그녀의 아버지는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 적에 동료 장수들과 함께 10개 성을 탈취한 공적이 있는 귀족이었다. 어머니 옥진 궁주는 정치권력을 가진 남성들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불어 그들의 ‘씨’를 받아 아이까지 낳는 임무를 받드는 이른바 ‘색공’ 가문의 딸로 성장한 덕에 방중술에 빼어난 기량을 발휘하며 미실 아버지 말고 법흥왕과 보현 공주의 아들인 영실공과도 통정했다.

‘꽃처럼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뜻의 화랑, 그 무리의 우두머리인 사다함과 사랑에 빠졌던 소녀 미실은 애인이 가야와의 전쟁에 나가 전사했다는 소식에 슬퍼하다 왕비의 아들(이지 왕의 아들은 아닌) 세종이 그녀를 향한 상사병에 걸려 신음하는 상황에서 그의 아내가 되는데, 뒤늦게 돌아온 사다함은 그 광경을 보고 충격으로 죽어버린다.

미실이 임신할 무렵 세상을 떠난 사다함이 그녀 꿈에 나타나 “너와 맺어지지 못했으니 네 아들로라도 태어나겠다”고 하더니 과연 미실의 아들은 사다함을 많이 닮아 사람들은 그가 사다함의 아이라고 믿었다. 이 괴상한 사건 이후 미실은, 여성을 혐오하는 시선에서 정의하는 전형적인 ‘팜므파탈’이 되어간다. 역사 속 ‘미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끌어낸 최근 작품 <미실>에서 김별아는 이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미실은 점차로 권력이 어떤 것인지 알아갔다. 그것은 누군가를 제압하고 어떤 일을 도모할 수 있는 힘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했던 숱한 일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는 선택으로 운명 속에 내동댕이쳐져야 했던 기억이 그녀를 더욱 냉철한 권력가로 만들었다.”

권력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미실을 유혹했고, 그녀는 세종뿐만 아니라 각종 왕과 숱한 태자의 침실을 들락거리며 그들을 질투와 분노의 구렁텅이에 처넣기도 하고 쾌락과 환희의 늪으로 유인하며 왕의 자리는 물론 그들의 목숨까지 제 손에 넣고 쥐락펴락했다. 배반감에 몸을 떨며 그녀를 벌주려던 권력자마다 오히려 그녀와의 그 순간을 기억해내고는 흐물흐물 그녀와의 흥정에 다시 빠져들었다.

김별아는 색의 마술사 미실의 성적 주체성을 더욱 포르나적 경지로 묘사한다. “미실은 성애를 통해 점차 자유로워졌다. …홀연이 높은 경지에 올라 무엇에도 거치적거리지 않는 무애의 경지에 다다랐다. 더럽다거나 깨끗하고, 낮거나 높고, 천하거나 고상한 세상만사가 모두 성애 안에 있었다. 성애가 완전한 세상이었다.”

물론 이들의 사연이 실린 <화랑세기>, 그 무대인 신라는 유교나 기독교적 금욕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었다. 당시 신라는 그랬다 한다. 신라 여성은 정조라는 개념이 없어, 심지어 왕비조차 정부들을 거느리고 놀았다니 유교의 딱딱한 뼈와 기독교의 엄숙한 피로 버무려진 어설픈 현대인들은 특히 ‘상상력의 한계’ 앞에 이토록 무색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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