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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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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와 의문사

등록 2006-01-27 00:00 수정 2020-05-03 04:24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제인 구달이 침팬지의 수호자로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데 견줘, 한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고릴라의 각별한 친구 다이앤 포시는 덜 알려져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1932년생이니 제인 구달보다 두 살 위인 그녀는 1954년 대학에서 수의학 공부를 위한 준비 과정을 마치고 재활의학을 전공했다. 장애인을 돌보는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다 1963년 아프리카 여행을 가 고릴라의 멸종 위기에 대한 강연을 듣고 이 분야에 매료된다. 처음에는 자이르로 갔다가 1967년부터 르완다에 정착해 18년을 고릴라의 친구로 살았으나 1985년 성탄절 다음날 자신의 오두막에서 의문사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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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많이 닮아 더욱 괴기스럽게 느껴졌던 큰 몸집의 고릴라는, 우리의 편견과 달리 채식주의자일뿐더러 결코 상대를 먼저 공격하지 않으며 인간과 꼭 같은 희로애락을 갖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그녀의 작업은 체력적 한계와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안개 자욱한 산속 몇날며칠 같은 자리에서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 숨소리도 죽여가며 머물다 보면 기력이 소진하고 때로 견디기 힘든 공포가 밀려왔다. 그러나 겸손하고 친절한 다이앤 포시는, 그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행동거지를 주의깊게 살피면서 무리 속에 들어가 새끼들을 함께 돌보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들과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황홀한 체험을 통해 말 그대로 고릴라의 가족이 될 수 있었다.

미지의 세계, 인간과 다른 유인원의 종족에 그녀가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필름으로 기록되고 <내셔널 지오그래피>에 발표되면서 그녀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1976년에는 이 분야의 연구를 집대성한 논문을 제출해 박사학위도 받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도 외롭고 또 외로웠다. 사랑했던 남자들은 그녀의 동반자가 될 수 없어 곧 떠났고, 외로움과 원망을 알코올과 일 중독으로 이겨내려 했으나 균형을 지켜내기 힘들어, 넘치는 열정을 그저 고릴라 보호에 쏟아부었다.

지난해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호텔 르완다>에 묘사된 바와 같이 종족갈등으로 1994년 르완다에서는 80만 명의 집단 학살이 자행되는데, 이 끔찍한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은 다이앤 포시의 활동 지역이던 루엔게리주의 악질 지사로, 1985년 발생한 그녀의 토막살인 사건의 배후 인물 역시 같은 놈이라는 증거들이 수집되었다.

세상을 떠나기 이태 전 고릴라의 친구가 된 사연을 적어놓은 책을 출간한 덕에, 시고니 위버가 다이앤으로 나온 영화 <안개 속의 고릴라>를 통해 우리는 그녀를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지난해엔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들과 한때 연인이었던 사진기자 밥 캠벨의 사진을 엮어 다이앤 포시 사후 20년을 기념하는 책도 나왔고, 올봄에는 그녀의 삶을 기린 오페라도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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