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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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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숍의 전설, 아니타 로딕

등록 2005-11-24 15:00 수정 2020-05-02 19:24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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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사업은 과대포장에 쓰레기를 양산하며 특히 여성들에게 거짓과 사기를 일삼아 이뤄질 수 없는 꿈을 파는 악덕산업”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아니타 로딕. 맨손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그 이름도 유명한 바디숍을 일군 전설적인 기업인이다.

‘먹고살 길’을 찾아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그녀의 어머니는 해변에 작은 식당을 열어 밥도 팔고 술도 팔아 딸 셋과 막내아들을 자랑스레 키워낸 억척 아줌마였다. 열 살 때 돌아가신 양아버지 헨리 아저씨가 자기와 남동생의 친부였다는 사실을 안 순간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고 킥킥거리는 아니타에게 세상은 마냥 태양빛 가득한 환희였다.

세상이 너무 궁금해 시골학교 교사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알뜰히 모은 돈 긁어모아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지를 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들렀던 그녀는, 인종차별의 현장에 충격을 먹고 마지막 행선지인 스위스에 가서 국제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온다. 거지꼴로 나타난 딸을 보고, 어머니는 찍어둔 사윗감이 있는데 잘 왔다고 화들짝, 그날 밤 당장 만난 아니타의 배필 고든은 여지껏 바디숍의 공동 운영자다. 급하게 아이부터 만들고 둘째를 또 임신했을 무렵, 두 사람은 미국의 히피 마을에 가서 좀 놀다가 결혼식도 거기서 올렸다.

젖먹이 딸 둘을 데리고 어머니 식당 일을 도우며 빌어먹어야 할 무렵, ‘그녀의 고든’은 어릴 적 꿈이 생각나 아내가 선선히 보내준 여행 ‘말 타고 세계 일주’를 떠나고, 그녀 또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다. 배낭여행 중 만난 원주민들에게 배운 화장법들을 활용해 순수자연 ‘동동구리무’를 만들고, “고객이 필요한 만큼” 덜어서 파는 방식은 포장 중심이 아니라 내용 중심의 ‘리필’ 전통이 되었다. 곰팡이가 자욱했던 동네 귀퉁이 가게는 아니타의 꿈의 궁전으로 진한 초록빛이 인상적인 환경 비즈니스의 모델이 되고, “생명력이 아름답다”는 그녀의 왕수다는 멋진 슬로건이 되었다. 또한 제3세계 원주민과 직접 ‘정의구현 무역’(fairtrade)을 실천하는 아니타의 방식은 1980년대 내내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바디숍식 환경경영의 희망이기도 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연출한 세계무역기구(WTO) 반대 시위에 열혈 투사로 모습을 드러낸 그녀, 자연 파괴적인 기술개발과 반인륜적인 기업을 향해 독설을 뿜어대는 그녀는 이윤 극대화가 최고의 미덕인 자본중심적 경영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절대적 가치를 가운데 놓고 세상을 좀더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행복한 일에 앞장서왔다.

하지만 1990년대 북미를 비롯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로 진출해 현재 50개 나라 곳곳에 프랜차이즈 매장을 설치한 바디숍은 ‘동물실험 반대’ ‘삼림훼손 금지’ 등 선도적인 환경친화적 기업 이미지를 101% 활용하는데, 한국에서도 짭짤한 재미를 보는 각 매장의 분위기와 환경 마케팅의 상술이 너무도 두드러져 보이는 요즘 추세는 어느덧 이순이 넘은 아니타 로딕의 진정성마저 의심이 들 정도로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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