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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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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으로 서민경제 활성화?


기업 접대비 한도액을 올리거나 없앤다는 정부의 정책…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어찌 음주문화가 빠지랴
등록 2009-01-06 05:38 수정 2020-05-02 19:25

이명박 정부의 ‘강남 살리기’가 눈물겹다. 서울 강남 부자들의 가슴에 꽂힌 비수를 뽑아주겠다며 종부세를 너덜너덜 빈껍데기로 만드는가 하면, 강남의 아파트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며 재건축 요건을 대폭 완화한다. 강남 3구의 투기지역 지정을 전면 해제하고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겠다며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 청와대가 생쇼를 벌인다. 다주택 소유자들의 주택 매매를 쉽게 하기 위해 양도소득세의 한시적 면제를 검토하겠다고도 한다.

프랑스의 살롱, 미국의 설룬을 함께 비비고 쪼개서 룸살롱이라는 종합 엔터테인먼트가 만들어졌다. 서울 북창동의 룸살롱식 클럽들. 한겨레 김종수 기자

프랑스의 살롱, 미국의 설룬을 함께 비비고 쪼개서 룸살롱이라는 종합 엔터테인먼트가 만들어졌다. 서울 북창동의 룸살롱식 클럽들. 한겨레 김종수 기자

여기에 코미디극을 하나 더 추가한다. 서민경제 활성화의 일환으로 기업들의 접대비 한도액 50만원을 100만원으로 올리거나 아예 그 한도 규정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과거 투명하지 못한 공공기관의 업무추진비와 기업의 흥청망청 접대비가 어떤 용도로 쓰여졌고, 그 쓰인 곳이 대부분 어디인지는 삼척동자라도 다 안다. 그간 부정부패를 줄이기 위해 어렵사리 접대비 한도액을 시민들의 상궤 수준으로 정했고, 그래서 강남의 호화 룸살롱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다시 접대비 한도액을 올려 서민경제를 활성화하겠단다. 그렇다면 룸살롱 경기를 살리겠다는 것인데, 내년에 쏟아져나올 백수 여대생들의 일자리 창출 때문일까?

프랑스어 ‘살롱’(Salon)은 객실·응접실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상류층 부인들이 끼리끼리 모여 문학과 예술 등을 주제로 친교를 나누는 사교 공간이 곧 살롱이었으니, 애초부터 본격적인 술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프랑스어 살롱과 동계어인 영어 ‘설룬’(Saloon)의 본뜻은 대저택, 호텔 따위의 큰 홀, 여객기의 객실, 여객선의 담화실인데, 여기에 술집의 의미가 추가돼 영국에서는 선술집을, 미국에서는 서부개척 시대 개척마을에 생긴 작은 술집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프랑스의 살롱이나 미국의 설룬을 함께 비벼, 큰 홀을 잘게 방으로 쪼개 룸살롱이라는 종합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었다. 그 방에서 정치도 하고, 경제활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쾌락도 나누고, 술도 마시고, 가끔은 칼싸움도 벌이니 우리 민족의 창발력 하나는 끝내준다.

근대 이후 우리는 어떻게 술을 마셔왔는가? 1910년 한-일 병합에서 1950년대 말까지는 양과 질에서 크게 뒤떨어졌던, 맛도 멋도 없었던 음주문화 폐퇴의 시기다. 일제는 1909년의 주세령으로 우리 전통주 양조를 금지하고 개량식 약주와 막걸리, 희석식 소주로 술을 획일화했던바, 이는 해방 뒤 이승만 정권까지 계속됐다. 60~70년대 박정희 시절은 만취의 시대, 술 권하는 사회였다. 우선 술의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막걸리 양조장이 마을마다 널려 있었고, 희석식 소주는 텔레비전 메인 시간대 광고에 흘러넘쳤다.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온 수많은 근로자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며 노동의 고통을 술로 잊었고, 개발독재에 저항하던 인사들 역시 그 좌절과 절망을 술로 달랬다.

80년대 전두환 시절은 야간통행 금지 해제에 따른 폭음의 시대, 밤문화의 시대였다. 성공한 쿠데타의 시대는 수단과 방법을 묻지 않았다. 돈! 돈만 벌어라. 막걸리·소주가 맥주로, 맥주가 어느새 진·코냑·위스키로 바뀌었다. 술 즐기는 장소 또한 고급화·대형화됐고, 강남 여기저기에 호화스러운 룸살롱이 자리잡으면서 검은돈, 정경유착, 폭탄주, 쾌락, 폭력, 낭비 등이 일상화됐다.

전두환 정권 이후 한국 사회는 민주화와 함께 음주문화에서도 차근차근 합리성을 찾아갔다. 투명성 강화로 2차·3차로 흥청망청 마실 수 있는 검은돈이 줄어들었고, 소득 증대에 따른 웰빙 바람과 자가 운전도 절제된 음주문화에 한몫했다.

이렇게 음주문화는 변증적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술꾼들은 질풍노도의 지나가버린 음주문화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다만 추억할 뿐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에는 20여 년 전, 탤런트같이 예쁜 아가씨를 옆에 앉히고, 관리는 건설업자와, 원청업자는 하청업자와 함께하며 은밀히 현찰이 오가던, 살이 타고 뼈가 부딪던 그 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모든 것을 20년 전으로 되돌리려는데, 어찌 음주문화가 빠질 수 있겠는가.

김학민 음식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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