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부부가 결혼한 지 한참이 지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천지신명께 빌어 쌍둥이를 낳았는데, 두 딸이 너무 예뻐서 언니는 금화(金花), 동생은 은화(銀花)라고 이름을 지었다. 금화와 은화 두 쌍둥이는 건강하고 착하게 잘 자랐으며, 서로 우애도 깊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둘은 시집갈 나이가 되었지만,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웠다. 부부가 몹시 걱정을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언니 금화가 열이 심하게 나면서 얼굴과 몸이 온통 붉게 변했다. 급히 의원을 불렀지만, 금화의 열병에는 드는 약이 없다고 하고는 치료를 포기했다. 결국 금화는 동생 은화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에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 뒤 동생 은화도 시름시름 기력을 잃더니 언니와 똑같은 병을 앓게 되었다. 순식간에 두 딸을 잃게 되어 망연자실한 부부에게 은화는 “저희들은 비록 죽지만 죽어서라도 열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가 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해가 바뀌고 봄이 되자 자매의 무덤에서는 이름 모를 새싹이 올라왔다. 이 풀에서는 여름에 노란색 꽃과 흰색 꽃이 피었는데, 처음 필 때는 흰색이었다가 점점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얼마 뒤 마을에 열병이 돌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은화의 말을 기억하고 그 꽃을 달여 먹자 열병이 낫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의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자매의 이름을 따서 꽃의 이름을 ‘금은화’(金銀花)라고 붙였다.
금은화는 여름에 흰색의 꽃이 피어 노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마치 두 가지 꽃이 동시에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고, 또 한 겨울의 매서운 추위에도 버텨낸다고 하여 인동초(忍冬草) 또는 인동덩굴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인동초는 강한 항균 작용과 독을 풀고 열을 내리는 작용이 있어서 유행성 감기 같은 데 효과적인 약재로 사용한다. 또 인동초 잎을 따서 그늘에 하루쯤 두었다가 은근한 불에 가볍게 덖어내어 종이 봉지에 담아두고 한번에 2∼3g씩 더운 물에 우려내 차로 마시면 해열, 이뇨, 감기 예방과 만성간염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목포 부근 전라도 남해안 지방에 가면 인동초를 넣어 담근 막걸리를 내오는 식당들이 많이 있다. 인동초 막걸리는 쌉쌀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을 내어 한 번 마셔보면 다시 찾게 된다. 목포시 옥교동의 식당 ‘인동주마을’(061-284-4068)에 가면 눈물이 나오도록 확 쏘는 홍어에, 인동초 술을 즐길 수 있다. ‘인동초 막걸리’와 이를 약주로 걸러낸 ‘인동초 평화주’가 나온다. 인동초 꽃을 송이가 피기 직전에 따서 그늘에 말리고, 잎과 줄기도 가을에 베어 그늘에서 말려 소주에 담가 마셔도 좋다. 또 초여름께 금방 핀 꽃을 따 말려서 소주 1.8ℓ에 꽃 100g 정도를 넣고 따뜻한 곳에서 1개월가량 숙성시켜 색깔이 노랗게 우러나면 그럴듯한 인동주가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석 달도 되지 않아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돌아가셨다. 삶과 죽음의 문턱을 숱하게 넘어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으신 그분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흔히 인동초에 비유된다. 연이은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황망하게 겪으면서 금화와 은화의 애잔한 ‘인동초 전설’을 오늘의 현실에서 곱씹어본다. 부부가 아이가 없어 노심초사하다 쌍둥이를 얻듯, 대한민국 국민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 역대 독재정권의 압제에 희망을 잃고 살다가 천신만고 끝에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을 만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금화와 은화의 죽음처럼, 두 분은 수구꼴통들의 모략과 행패 속에 연이어 이승을 하직한다. 그러고는 마을에 죽음의 열병이 돈 것처럼, 퇴행과 거짓의 이명박 시대를 맞은 것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이 전설처럼, 금화와 은화의 무덤에서 피어난 인동초가 열병을 몰아내 마을을 살렸듯, 아무쪼록 노무현·김대중 두 분의 죽음의 의미가 이명박 대통령을 성찰케 하여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빈다. ‘전설 따라 세 대통령’ 끝.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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