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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진실 두 개의 진술

두 간호장교, 세월호 참사 당일

‘가글 전달’과 평소 ‘주사제 처치’에 말 달라
등록 2016-12-06 08:12 수정 2020-05-02 19:28
대통령 관저는 청와대 비서진과 직원들도 쉽게 드나들 수 없는 사적 공간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출입이 확인된 유일한 인물은 간호장교다. 대통령 관저 정문인 인수문.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 관저는 청와대 비서진과 직원들도 쉽게 드나들 수 없는 사적 공간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출입이 확인된 유일한 인물은 간호장교다. 대통령 관저 정문인 인수문. 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4월16일 오전 10시. 청와대 대통령 관저의 문이 열렸다. 당시 관저에는,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이 머물고 있었다. 관저로 들어선 인물은 간호장교 신아무개 대위였다. 청와대가 유일하게 공식 인정한 세월호 참사 당일의 ‘관저 출입자’다.

신 대위는 그날 “관저 부속실에만 들렀고 박 대통령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게 가장 가까이 갔던 그는 당시 관저에서 벌어진 상황이나 외부인을 우연히 본 ‘목격자’일 수 있다. 또한 청와대가 극구 부인하는 ‘성형시술’ 또는 이 제기한 ‘불법 면역세포 주사’ 의혹(제1139호 ‘청와대 벗어난 대통령 피의 비밀’ 참조)과 깊이 연관된 ‘키맨’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참사 당일 관저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평소 박 대통령에게 주사제를 놓던 동료 간호장교 조아무개 대위 역시 ‘7시간의 비밀’을 풀어줄 핵심 증인으로 지목된다. 국회 국정조사나 특별검사 수사 과정에서 이들의 진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짚었다.

① 가글만 전달했을까

신 대위가 밝힌 관저 방문의 목적은 가글(구강청결제) 전달이었다. 군 전역 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근무하는 신씨는 11월29일 기자회견을 열어 “(4월16일) 점심을 먹기 전 의무실장이 ‘가글을 갖다주고 오라’고 이야기를 해서 (관저) 부속실에 전달만 했다. (상대가) 부속실 누구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의무동’에서 50m 떨어진 대통령 관저로 혼자 걸어가 가글을 주고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비상근인 대통령 주치의나 자문의와 달리 의무동에는 청와대 의무실장과 군의관 5명, 간호장교 2명, 부사관 1명이 상주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의무동에서 근무한 간호장교는 신 대위(2013년 4월~2015년 2월 청와대 근무)와 후임 조 대위(2014년 1월~2016년 2월)였다.

흔한 가글액이었다. “(1회용이 아닌) 대용량이었다. 평소 얼마나 자주 (가글액을) 달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매일 있는 건 아니었다”고 신씨는 말했다.

그러나 평범한 가글액을 의무실장의 처방에 따라 간호장교가 직접 관저로 배달했다는 진술은 일반인에겐 낯설다. 살균소독제 클로로헥시딘 청정제처럼 치과나 이비인후과에서 처방되는 의료 목적의 가글액도 있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가글액은 욕실에 비치된 비누·치약과 같은 세면도구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 초기 의무실장을 지낸 김원호 연세대 교수(소화기내과)는 과 만나 “상식에 맞지 않는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간호장교 출신 인사도 “(일반적인) 가글이든 의료용 가글이든 모든 의약품은 주치의나 의무실장의 오더(지시)를 받고 나간다”고 했다.

그러나 ‘근무 기간 동안 가글을 관저로 직접 배달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전직 간호장교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수차례 질문하자 “잘 기억이 안 난다”고 얼버무렸다.

과거 정권에서 청와대 부속실장을 지낸 한 인사도 ‘가글 전달’은 어색한 업무라고 봤다. “관저는 말 그대로 대통령의 사적 공간이라 대통령 내외를 담당하는 1·2부속실 직원 1명씩만 최소한으로 배치한다. 그런 편안한 공간에 간호장교가 가글을 갔다주러 들락날락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두 간호장교의 진술에는 묘한 차이도 있다. 신씨는 그날 조 대위와 의무동에 같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의무실장의 지시에 따라 신씨가 가글을 챙겨 관저로 간 사실을 조 대위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재 미국 육군에서 연수 중인 조 대위는 11월30일(현지시각) 워싱턴 특파원단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참사 당일 의료진이 관저에 간 적 있냐’는 질문에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 대위 인터뷰를 봤다. 그는 ‘가글을 전달하러 관저에 갔다’고 했다”고 했다. 신씨가 가글을 전달하러 간 사실을 최근 그의 인터뷰를 보고 알았다는 뜻이다.

신씨가 애초에 가글을 관저로 가져가지 않았거나, 비밀의 물건을 가글과 함께 가져갔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간호장교들이 관리하는 의약품은 764건(2014년 1월~2016년 9월 구입)에 이른다. 이 중엔 제2의 프로포폴인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 얼굴 국소마취제인 엠라5% 크림 등도 있다.

② 왜 한 명만 주사를 놓았을까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간호장교로 근무했던 신아무개씨가 11월29일 자신이 근무하는 강원도 원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간호장교로 근무했던 신아무개씨가 11월29일 자신이 근무하는 강원도 원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의 ‘비선 주치의’ 김상만 자문의와 관련해선 두 간호장교의 진술이 더 벌어진다. 청와대 의무실(의무동)이나 관저 내 파우더룸에서 박 대통령을 진료했다는 김씨는 자신의 ‘조력자’로 간호장교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간호장교가 박 대통령에게 영양제 주사 등 정맥주사를 놓았고 박 대통령의 혈액도 채혈해 차움의원으로 가져갔다고 그는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진술했다.

이에 대해 신씨는 “그분(김씨)을 본 적은 없고 진료를 왔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며 반박했다. 그러면서 “나는 (청와대 근무 2년 동안) 박 대통령에게 주사 처치를 한 적이 없다” “관저에서 (진료에) 참여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반면 조 대위는 김씨가 말한 정맥주사 처치를 인정한다. 그는 “김씨를 본 적은 있지만 (대통령을) 진료할 때는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하며 김 원장이 (진료)할 때에는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서도 정맥주사를 직접 놓은 적이 있다고 했다. 선임인 신씨가 2년 넘게 한 번도 하지 못한 ‘대통령 주사 처치’를 후임인 조 대위는 종종 했다는 뜻이다.

의무실장 시절 두 간호장교와 함께 1년 가까이 근무한 김원호 교수는 “(이에 대해) 답변하지 않겠다”고 입을 닫았다. 다만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 있는 간호장교 출신 인사는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조 대위가) 관저에 근접해서 근무했을 수 있다. 의무실장이나 주치의의 성향에 따라서도 (간호장교의 역할이) 달라질 수 있다.”

청와대에는 대통령 관저 바로 옆에 있는 의무동 외에 경호실 건물 ‘충정관’에 별도로 ‘의무실’이 있다. 두 간호장교의 역할은 의무동과 의무실 담당자로 나뉜다. 세월호 참사 당시는 의무동 근무자인 조 대위가 신씨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기간이었다. 신씨가 박 대통령을 근접 진료하게 됐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뒤에도 신씨가 한 번도 대통령의 관저 진료에 참여하지 않거나 주사를 놓지 못했다는 진술 자체를 납득하기 어렵다.

특별히 조 대위가 신씨에 비해 주사를 잘 놓았기 때문에 ‘주사 처치’에 참여한 것으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간호장교의 주특기는 수술, 마취, 중환자 등으로 나뉜다. 정맥주사는 ‘기본 간호’ 과정에서 배우는 아주 기본적인 기술이라 누구든지 주사할 수 있다.” 전직 간호장교의 설명이다.

다만 청와대가 간호장교의 역할 구분과 상관없이 의도적으로 조 대위를 대통령 ‘전담’으로 낙점하고 신씨를 배제했을 수는 있다. 보안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상만 자문의도 “(청와대에) 주사를 잘 놓은 간호장교가 있다. 그분이 다 한다”며 ‘대통령 전담’을 언급한 바 있다. 이 경우 2년 넘게 박 대통령에게 주사 한 번 놓지 못했다는 신씨의 진술은 ‘보안을 지켜야 할 특별한 주사 처치’가 필요했다는 방증이 된다.

③ 왜 갑자기 언론 앞에 나섰을까

두 간호장교의 ‘커밍아웃’ 시기도 석연치 않다. 신씨는 11월29일 오후 4시께 자신이 근무하는 강원도 원주 심평원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세월호 7시간의 핵심 증인 중 한 명인 간호장교가 국내 모처에 있다”고 국회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소속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지 하루 만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사 당일 근무한 간호장교는 한 명이며 미국 연수 중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신씨의 기자회견 5시간 전인 오전 11시께,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의무실장 본인뿐 아니라 간호장교 2명 중 어느 누구도 4월16일 대통령에 대한 진료나 처치를 하지 않았고, 간호장교 중 1명이 오전 10시쯤 가글을 전달하기 위해 관저에 잠깐 갔다온 적은 있음.’ 잠시 뒤 신씨가 기자회견에서 진술한 내용과 일치한다.

이에 대해 신씨는 “기자들이 며칠 전 내 차량과 회사에 왔다가고 무서웠다. (먼저) 의무실장에게 사실대로 얘기를 하겠다고 했다”며 청와대 개입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회사로 찾아오는 몇 명의 기자가 두려워 아예 전 국민 앞에 나섰다는 신씨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기자회견 전까지만 해도 신씨는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 은 기자회견 6일 전인 11월23일 심평원을 찾아 인터뷰를 청했다.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근무 중이라 통화가 어렵다”며 전화를 끊은 신씨는 조금 뒤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업이 있고, 기억이 오래되어 말씀 드릴 내용이 없어 뵙기 어렵습니다. 멀리 오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거듭된 만남 요청에 대해서도 ‘제가 드릴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라는 답변만 보내왔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자신과 현역 장교인 배우자의 난감한 처지 때문에 인터뷰가 곤란하다는 뜻으로 읽혔다. 극도로 몸을 사리던 그가 일주일 만에 ‘생업’을 포기했을 가능성은 낮다. 기자회견이 생업에 피해를 미치지 않거나 유리하다는 ‘확신’을 누군가로부터 받았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신씨의 회견 하루 뒤인 11월30일(미국 현지시각) 조 대위 역시 침묵을 깼다. 그러나 조 대위는 사흘 전 자신을 찾아 미국 텍사스로 날아온 안민석 의원과 기자들을 만나주지는 않았다. 워싱턴 특파원단과의 전화 인터뷰만 허락했고 질문은 사전에 받았다. 조 대위는 “연락을 피한 게 아니다. 현역 군인이라 상관에게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민석 의원은 윗선의 ‘기획’을 의심했다. “교포 여러분과 목사님이 설득하는 와중에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한 건 상당한 언론 플레이라 보고 있다. 그 간호장교를 통제하는 검은손과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은폐하고 있는 검은손 간에 결탁되었던 가능성이 있다.”(교통방송 인터뷰)

④ 왜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은 없을까

‘제3자 개입’이 의심되는 정황은 또 있다. 두 간호장교 모두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유리한 진술만 한다는 점이다. 두 간호장교는 핵심 의혹에 대해서만은 일관되게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을 본 적도 없다” “어떠한 의료 행위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세월호 참사 당일 프로포폴 투약, 성형시술, 불법 면역세포·줄기세포 시술 의혹에 시달려온 박 대통령에게 유리한 증언이다.

이들은 더 나아가 2년여의 근무기간 동안 “(비선 주치의) 김상만의 진료 행위를 본 적 없다” “미용시술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관저를 수시로 드나든 최순실·최순득·차은택에 대해서도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진술엔 ‘구멍’도 있다. 박 대통령에게 주사를 놓았던 조 대위는 유난히 의료법상 ‘기밀누설 금지 조항’을 자주 들어 구체적인 답변을 피해갔다. 태반·백옥·마늘주사나 프로포폴 투여에 대해 한결같이 “말할 수 없다”고만 했다. “태반주사를 본 적은 있지만 (누군가 그걸 투여했다고) 들은 이야기는 없다” “프로포폴은 내가 알기로는 전혀 없다”는 신씨의 구체적인 답변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조 대위는 청와대 근무 중이던 지난해 8월 육군의 위탁교육에 선발돼 현재 미 육군 의무학교에서 중환자 간호과정을 밟고 있다. 반면 신씨는 6년간의 의무복무 뒤 연장복무를 신청했으나 탈락해 지난해 2월 전역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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