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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9일 그날의 운명

비박 회군으로 복잡해진 12월9일 탄핵소추안 가결 여부…

운명의 일주일, 3가지 시나리오를 미리 보다
등록 2016-12-06 12:47 수정 2020-05-02 19:28
12월1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야 3당 대표가 회동했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발의에는 실패했다. 야 3당은 12월9일 탄핵안을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12월1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야 3당 대표가 회동했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발의에는 실패했다. 야 3당은 12월9일 탄핵안을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서울 광화문광장엔 매주 100만 넘는 촛불이 일렁이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바람 앞 등불이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11월 말까지만 해도 가결이 유력해 보이던 탄핵안은 11월29일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며 국회로 공을 넘긴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 뒤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비박계는 ‘4월 대통령 퇴진, 6월 조기 대선’이라는 당론에 동의하고 탄핵에서 발 빼는 분위기다. 비박계 이탈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야 3당은 우왕좌왕했다. 12월1일 탄핵소추안 발의 합의에 실패했다.

거센 여론의 비판에 직면한 야당은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9일 본회의에서 표결하기로 2일 합의했다. 흔들리는 탄핵안의 운명을 점쳐본다.

① 탄핵안 12월9일 부결되면?… 촛불 민심은 국회 탄핵으로

상상해볼 수 있는 유력한 시나리오다. 12월2일 탄핵안 표결에 실패한 야 3당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인 9일을 탄핵안 표결 D데이로 잡았다. 그러나 이미 탄핵에서 회군해 당론에 묶인 40여 명의 새누리당 비박계가 다시 탄핵 대오에 동참할지는 불투명하다.

비박계 영남권 의원들 사이에선 “여야 합의가 되면 대통령이 조기 퇴진하겠다는데 굳이 탄핵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며 탄핵보다는 여야의 대통령 퇴진 시기 협상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식어버린 탄핵 참여 동력을 회복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박 대통령이 9일 이전 4월 조기 사퇴를 밝힌다면 비박계가 탄핵에 동참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정기국회에서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재의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법 제92조는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 또는 제출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일사부재의 원칙이다. 다른 회기엔 같은 안건을 재발의할 수 있다는 것으로, 정기국회 뒤 임시국회를 소집해 탄핵소추안을 다시 표결할 수 있는 셈이다. 임시국회는 원칙적으로 국회의원 4분의 1(75명) 이상의 요구만 있으면 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법적 가능성에 그친다.

임시국회 일정은 여야 합의 사항이다. 친박계 새누리당 지도부가 탄핵안을 재의결하려 소집하는 임시국회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2월5일 본회의를 열어 탄핵안을 처리하자는 국민의당의 요구를 “변칙적 의사 일정 변경에는 협조하기 어렵다”고 거부했다.


탄핵이 부결되면 결국 국회는 여야 가릴 것 없이 거센 민심의 분노에 직면할 것이다. 그간 청와대를 향하던 촛불이 여의도 국회로 옮겨붙을 가능성이 짙다.

야당 단독으로 임시국회를 소집한다고 해도 탄핵안 가결 정족수(재적 의원의 3분의 2인 200명)를 채울 수 없다. 야 3당 의원 전체인 총 165명(더불어민주당 121명, 국민의당 38명, 정의당 6명)에 야권 성향 무소속 6명과 새누리당을 탈당한 김용태 의원을 합해도 172명에 불과한 탓이다.

탄핵이 부결되면 결국 국회는 여야 가릴 것 없이 거센 민심의 분노에 직면할 것이다. 그간 청와대를 향하던 촛불이 여의도 국회로 옮겨붙을 가능성이 짙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분노한 민심이 당장 국회로 향할 것이다. 야당을 향해서는 촛불의 열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그동안 갈팡질팡한 채 무능함을 드러냈다는 국민적 지탄이 쏟아질 것이다. 새누리당을 향해서도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른 데 따른 역풍이 어마어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야당 지도부는 탄핵소추안 부결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추미애 더민주 대표가 뜬금없이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면서 탄핵 전선을 흐린 책임이 있어 사퇴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단 절차상으론 면죄부를 받게 되지만 이미 상실한 국정 운영 능력을 다시 회복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국정은 장기 표류 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② 탄핵안 12월9일 가결되면?… 조기 대선 가시화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3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그는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3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그는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탄핵안이 극적으로 가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탄핵에서 발뺌한 새누리당 비박계의 동참이 필수적이다. 비박계 모임 비상시국회의 간사 황영철 의원은 “여야 협상도 안 되고 박 대통령이 4월 퇴진에도 아무런 메시지가 없다면 9일 탄핵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 인원 400만 명을 넘긴 촛불 민심은 여전히 비박계가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압박이다. 비박계 의원들은 시민들로부터 ‘탄핵에 동참하라’는 수십, 수백 건의 항의 문자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12월2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지난주와 같은 4%였다. 3차 담화 뒤에도 냉담한 여론이 움직이지 않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2일 “비박계가 주춤한 모습을 보이지만 민심의 흐름을 거스르면 박 대통령과 공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론과 민심 가운데 어느 것을 따를지 고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12월6일, 7일 열리는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는 또 하나의 변수다. 6일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의 증인 출석이 예정돼 있고, 7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범인 최순실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출석할 예정이다.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의 구체적인 비리나 국정, 인사 공모 정황이 추가로 드러난다면 비박계가 탄핵을 회피할 명분은 더욱 줄어든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최순실이 청문회에서 답변을 피하고 뻔뻔한 모습을 보인다면 민심이 더욱 분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마지막 관문인 헌법재판소가 남아 있다. 헌재는 최장 6개월 안에 국회를 통과한 탄핵안에 대해 심판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불투명하다.

탄핵이 최종 결정되려면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이 찬성해야 한다. 그러나 헌재는 2014년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릴 때도 전체 9명의 재판관 중 8명이 정당 해산 의견을 내는 등 보수적 입장을 취해왔다. 여기에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각각 내년 1월과 3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점도 걸림돌이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최근 언론에 “헌법재판소법에는 심리를 하기 위한 정족수가 있다. 헌재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2명의 임기가 끝나고 남은 7명 가운데 만일 한 명이라도 무조건 탄핵을 막겠다는 소신을 지닌 재판관이 사퇴를 하면 재판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최대한 헌재 판결을 늦추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 관문을 넘어 탄핵이 가결된다면 새누리당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이준한 교수는 “새누리당은 당분간 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탄핵된 것과 다름없는 처지가 될 것이다. 친박 지도부가 교체되고 당이 재편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탄핵에서 루비콘강을 건넌 친박과 비박이 갈라져 분당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

탄핵이 최종 결정되면 박 대통령은 퇴임하게 된다. 대선 시계는 자연스레 앞당겨진다. 헌법 제68조는 “대통령 궐위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헌재는 63일 만에 결정을 내렸는데 이 경우 대선은 4월께 치러진다. 규정대로 심의 기간인 180일을 채운다면 8월께 대선이 치러진다.

③ 박 대통령이 퇴진 날짜 밝힌다면?

이런 가운데 과연 박 대통령이 9일 탄핵 표결 이전에 내년 4월 조기 사퇴를 스스로 못박을지에 관심이 모인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불명예 퇴진을 피할 수 있는 카드다. 비박계는 12월2일 “7일 오후 6시까지 퇴진 시점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퇴진 시점을 밝히면 탄핵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야당이 조기 퇴진 관련 협상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먼저 박 대통령이 퇴진 일자를 못박고 나올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일 “국회가 4월 퇴진을 결정했는데 대통령이 지키지 않으면 의원 전원이 의원직 사퇴를 결의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대통령이 그렇게 할 것으로 이해한다”고 촉구했다. 청와대 안에서도 12월6~7일께 당의 요구를 수용하게 될 것이란 기류가 있다.

하지만 야당이 조기 퇴진 관련 협상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먼저 박 대통령이 퇴진 일자를 못박고 나올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있다. 박 대통령은 “여야 합의로 퇴진 일정을 결정해달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퇴진 일정은 결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탄핵을 무산시키려는 어떤 시도에도 단호히 맞서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보수 결집을 꾀하는 행보를 시작했다. 12월1일에는 대형 화재로 피해를 입은 대구 서문시장을 전격 방문했다. 서문시장은 그가 정치적 고비마다 단골로 찾던 곳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동정 여론을 자극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11월30일에는 최성규 인천 순복음교회 목사를 국민통합위원장에 임명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세월호는 잊으라”고 말하고 “5·16 쿠데타를 역사적 필연”이라던 최 목사를 임명한 것은 무속 논란에 등 돌린 보수 기독교계를 향한 손짓으로 해석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만일 4차 담화에서 명확한 퇴진 언급 없이 시간을 끌고 버티려 한다면 박 대통령이 받아들 선택지는 탄핵 또는 직접적인 국민 충돌 두 가지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친박  9인회


‘오장육부’  ‘생살’  빠진  자리  채우다


11월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호텔에 행사차 들른 남경필 경기지사는 우연히 뜻밖의 모임을 목격했다. 친박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을 비롯한 조원진 최고위원과 정갑윤,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의원 등 8~9명의 핵심 친박 의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 지사는 인터뷰에서 “핵심 친박계가 정국 대책을 논의하고 이를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작전회의라는 걸 직감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친박 9인회’로 불린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장육부’(최순실)와 ‘생살’(문고리 3인방)이 사라진 공백을 이들이 메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새누리당 주변에 파다했다.
그런데 친박 9인회가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의 1차 대국민 담화 발표 뒤 본격적으로 모여 ‘반격’을 준비해왔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모임 참석자인 조원진 최고위원은 과 전화 인터뷰에서 “본격적으로 모인 것은 한 달 전쯤이다. 매일 모인다”고 말했다. 조 최고위원은 또 “서청원 의원을 중심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 최경환, 유기준, 윤상현 의원이 고정 멤버다. (모임의) 결론은 이정현 대표를 통해 청와대에 전달한다”고 말했다.
즉, 적어도 10월25일 이후 매일 9인회가 모여 정국 대처 방안을 의논하고, 이를 이정현 대표가 청와대에 전달한다는 것이다.
9인회의 축인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의원 등은 지난 4월 총선 공천을 앞두고 서 의원의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한 김성회 전 의원을 윽박질러 이를 철회하게 한 전력이 있다. 총선 패배 뒤엔 당 혁신을 정면 가로막기도 했다.
친박 9인회의 영향력은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에서 그대로 확인됐다. 박 대통령과 핵심 친박들은 탄핵 추진력을 약화하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들은 담화 전날인 11월28일 모임을 열어 “박 대통령이 2선 후퇴를 전제로 국회에서 향후 정치 일정을 합의해주면 따르겠다고 하는 것이 최선의 수습안이다. 질서 있는 퇴진을 해야 한다”고 뜻을 모으고 이를 허원제 정무수석을 통해 전달했다. 탄핵이 이뤄지면 박 대통령과 함께 공범으로 몰려 정치적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여야 협상을 명분으로 탄핵 무력화에 나선 것이다.
다음날 박 대통령은 3차 대국민 담화에서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 혼란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친박 9인회의 결론과 판박이였다.
이어 새누리당은 12월1일 4월까지 대통령 퇴진, 6월 조기 대선을 당론으로 정했다. 탄핵 동참을 공언했던 비박계가 이에 동참하면서 국회의 탄핵 동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친박 9인회 제안→박 대통령 수용→야당 자중지란→탄핵 불투명까지 친박 9인회의 구상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친박 패권주의를 일삼아온 이들의 ‘조언’은 정략적 술수에만 치우쳐 박 대통령의 민심 역주행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 비박계인 하태경 의원은 “대통령에 대한 친박 핵심들의 조언은 자신들의 당내 기득권 유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 혼란만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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