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건인 오윤경(가명)이 매일 받는 채식 급식. 윤경은 “예상한 것보다 급식이 잘 나와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오윤경 제공
“오늘 학교에서 처음으로 채식 급식을 먹게 됐습니다. 항상 바라고 기대만 하던 것이 실제로 눈앞에 보여서 어제 오늘 너무 기뻤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오윤경(16·가명)은 10월6일 노옥희 울산광역시교육청(시교육청) 교육감에게 급식판을 찍은 사진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보냈다. 급식판은 채소볶음밥, 양상추샐러드, 두부가스 등 채식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날은 윤경이 4년 만에 도시락을 싸지 않은 날이었다. 윤경을 뺀 다른 학생들은 굴소스볶음밥, 북어콩나물국, 양념파닭, 배추김치, 양상추샐러드를 식판에 받았다.
윤경이 말했다. “채식 선택급식을 신청하면서도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고기만 뺀 부실한 식단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나왔다. 만두와 채개장칼국수(채소로 국물을 우린 칼국수), 주먹밥, 바나나가 나온 날은 감동이었다. 그래서 교육감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노 교육감은 윤경의 메시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윤경은 비건(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주의자)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동물권을 다룬 책 <동물들의 소송>을 읽고선 락토오보(유제품과 달걀은 먹는 채식주의자)가 됐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달은 2년 전부턴 비건으로 생활한다. 채식을 시작한 뒤 줄곧 학교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윤경에게, 잘 모르는 친구들까지 다가와 “너는 왜 도시락을 싸와?” “고기는 왜 안 먹어?” “닭은 먹어?”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마치 ‘물음표 살인마’(끊임없이 질문해 질리게 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 윤경이 도시락에서 벗어나게 된 건 시교육청이 ‘채식 급식’을 시행하면서다.
울산시교육청이 올해 10월부터 시작한 채식 급식은 일종의 기후위기 교육이다. <한겨레21>은 제1290호 표지이야기(‘텅텅 빈 내 식판’)에서 채식하는 학생의 식사권을 보장하기 위해 채식 급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아이들이 채식 급식의 필요성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기엔 기후위기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축산 부문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이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로 추정한다.
울산에 있는 초·중·고·특수학교 247곳 모두가 채식 급식에 참여하고 있다. 먼저 매달 두 차례 ‘고기 없는 월요일’을, 한 차례는 해산물도 뺀 ‘채식의 날’로 정했다. 채식 선택급식을 희망하는 학생이 있으면 모든 급식을 채식으로 보장한다. 울산시교육청은 1년여 전부터 채식 급식을 준비했다. 채식에 거부감을 갖는 아이들이 ‘왜 채식을 하지?’라는 궁금증을 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채식 동아리 운영, 채식 요리 축제 등 다양한 행사를 계획 중이다.
하지만 이미 육식에 익숙한 학생들 입맛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울산시 한 초등학교 영양교사는 “고기반찬이 없으면 학생들이 밥맛이 없다고 한다. ‘채식의 날’이라고 못박으면 학생들 거부반응이 있을까봐 자연스럽게 채식을 섞는 방식으로 식단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4년 만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급식판을 놓고 밥을 먹는 소원을 이룬 윤경은 바란다. “내가 졸업하고 나서도 채식 선택급식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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