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7일,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에선 새 학년 시작과 함께 각급 학교가 일제히 학생들을 맞았다. 다시 교문을 연 초·중등학교에는 모처럼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넘쳐났다. 3월 말 첫 코로나19 확진자 2명이 나오자, 정부가 전국의 모든 학교와 공항·항만·공장에 폐쇄령을 내린 지 다섯 달 만이었다.
온라인수업? 그건 사립학교 이야기죠
한 학기 내내 지속된 학교 수업 파행은 이곳에서도 빈부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한 가톨릭계 사립학교는 말쑥한 옷차림의 최고 부유층 학생들이 다닌다. 130년 역사의 이 학교는 ‘사회적 거리 두기’란 말이 무색할 만큼 넓은 13헥타르(약 4만 평)의 교정에 운동장과 테니스장을 갖췄다. 1~12학년까지 전교생은 2천 명 남짓. 교사들은 지난 학기에도 집에 컴퓨터와 인터넷망을 갖춘 학생들과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 이 학교 교장은 통신에 “어떻게든 올해 학사 과정을 관리하려 힘썼다. 시험은 매주 한 차례 온라인으로 치렀다”고 밝혔다.
이 사립학교에서 불과 5㎞ 떨어진 한 공립학교의 사정은 정반대다. 작은 마당 주위로 다닥다닥 붙은 13개 교실은 얇은 합판으로 겨우 구분된다. 2010년 대지진 이후 임시로 세운 낮은 외벽은 거센 비바람과 따가운 햇볕에 무용지물이다. 다섯 달 만의 개학이지만 전교생 1600여 명은 비좁은 교정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2부제 수업을 해야 한다. 한 사람당 수업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학교에는 컴퓨터가 3대뿐이고, 유일한 상수원인 우물의 펌프는 고장 났다. 이 학교 교장은 “어떤 교사들은 컴퓨터를 쓸 줄도 모른다”며 한숨을 쉬었다. “3월부터 학생들이 수업을 못했어요. 온라인수업? 그건 교회 사립학교들이나 자녀에게 컴퓨터를 장만해줄 여력이 있는 부모들 이야기지요.”
이런 사정은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미국 등 세계 대다수 지역이 비슷하다. 8월26일 유니세프(UNICEF)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봉쇄령이나 임시휴교로 영향받은 어린이·청소년이 전세계 학생 수의 90%가 넘는 190여 개국 15억 명에 이른다. 그중 3분의 1에 가까운 4억6300만 명이 온라인 원격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세계 2위 인구 대국 인도에서만 어린 학생 2억8600만 명이 도시와 농촌 사이 디지털 격차 탓에 원격수업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위기가 격차를 더욱 벌린다”
유니세프는 “가정에 컴퓨터와 인터넷망이 있어도 집안일에 대한 압박감, 강요되는 노동, 열악한 학습환경, 온라인이나 방송 교육 이용에 대한 지원 부족 등 가정환경 탓에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학습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상황은 보고서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헨리에타 포어 유니세프 총재는 “몇 달간 교육에서 완전히 소외된 학생 수는 세계적인 교육 비상사태로, 그 (부정적) 영향이 향후 수십 년간 경제와 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속 기간과 규모에서 유례없는 원격수업이 학업성취도에 미친 영향에 대한 구체적 평가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집에서 혼자 하는 온라인수업이 교실수업보다 집중력과 학습효과가 떨어지고, 경제력이나 지식정보 취약계층일수록 불리하다는 정황은 지난 몇 달간 전세계가 공통으로 경험하고 있다.
5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전국 초·중등학교 3~8학년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휴교 이전인 2019-2020학년도 시작 시기부터 그 이후인 2020-2021학년도 시작 지점까지의 수학·독해 능력 학업성취도 유형을 예측한 연구보고서를 내놨다. 그에 따르면 예년의 경우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6~7월에 학업성취도가 하향으로 돌아서는 것과 달리, 2020년엔 전국적인 학교 폐쇄가 단행된 3월부터 학업성취도가 급격히 하향으로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코로나19 슬라이드(하락)’로 명명한 이런 결과는 몹시 우려스럽다”며 “온라인 강의와 홈스쿨링에 따른 학습 손실이 과대평가됐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그로 인해)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8월에 통신은 “10대 청소년들이 코로나19 사태 속에 학교, 가족, 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전했다.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고등학생 카라 아푸조(18)는 어린 동생을 품에 안은 채 온라인수업을 따라가려 끙끙대거나 깜박 잠이 들기도 했다. 때론 온라인수업이 진행 중인데도 아르바이트 일터에 늦지 않으려 집을 나섰다. 교사들도 곤혹스러울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온라인 학습용 컴퓨터 툴도 학습장애에 한몫했다. 미국 비영리 교육지원단체 ‘어치빙 더 드림’(꿈을 이루기)의 부대표는 “코로나19 위기가 부유하고 대학 교육을 받은 부모를 둔 아이들과 저소득 가정 자녀들의 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다는 게 불평등의 진정한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9월은 코로나19 위기와 전세계 교육에 또 한 번의 고빗사위다. 대다수 나라가 9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가을학기제를 채택하는데다, 올 상반기 내내 중단된 등교수업을 이번에는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어서다. 그러나 아직까진 학교로 돌아갈 수 없는 아이가 훨씬 많다. 8월31일 유네스코(UNESCO)가 낸 보고서를 보면, 2020년 8~10월 전세계에서 유치원생과 초·중·고등학생 15억 명 중 9억 명이 개학(복학)을 앞두고 있지만, 실제 교실로 돌아오는 수는 그 절반 수준인 155개국 4억3300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학생의 3분의 2가 여전히 학교 폐쇄나 불확실성 속에 학업 지연이나 공백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뜻이다.
학교 폐쇄는 사회안전망을 제거하는 것
코로나19에 따른 학교 폐쇄는 역설적으로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즐거운 배움터이자 성장 환경이란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유엔은 8월 정책 보고서 ‘코로나 시대와 그 이후의 교육’에서 “교육기관 폐쇄는 가정폭력, 성매매, 조혼 또는 강제결혼 등 다양한 형태의 학대에 취약한 여성과 여학생을 더 큰 위험에 노출시켰다”고 지적했다. 세계경제포럼(WEF)도 8월10일 “학교는 많은 학생에게 따뜻한 음식, 특수교육 서비스, 치료 요법, 초고속 인터넷, 그 밖에도 많은 것을 이용할 수 있는 관문 구실을 해왔다”며 “코로나19가 촉발한 학교 폐쇄는 단지 교육을 넘어 많은 아이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거하고 있다”고 짚었다.
영국의 감염병 전문가이자 정부의 보건의료 자문관인 크리스 휘티 교수가 “학교 결석이 바이러스보다 더 해롭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8월23일 방송에 “아이들이 코로나19에 걸려 숨질 확률은 극히 낮지만, 수업 결손은 아이들에게 장기적으로 피해를 준다”고 말했다. 앞서 8월9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현지 일간신문에 실은 기고에서 “모든 아이에게 학교를 안전하게 재개방하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표지이야기-코로나 시대의 학교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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