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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원격수업에서 새롭게 발견한 아이들

건강한 교육혁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공교육 전반의
혁신을 가로막는 평가 체제의 변화가 필수적

제1330호
등록 : 2020-09-11 16:30 수정 : 2020-09-1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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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원격수업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평소 하루 일과의 마지막으로 수영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 자곤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몇 달 동안 수영을 못했어요. 제 힘든 몸과 마음을 해소해줄 신선한 음악을 찾다가 국악곡인 (만월의 기적)을 찾았습니다. 마음을 무척 편안하게 해주는 노래라고 생각되어 힘든 친구들에게 이 곡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중2 남학생의 소개로 ‘이럴 땐 이런 음악’이라는 주제의 음악 수업이 시작됐다. 화상회의 프로그램에 비친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 어린 표정을 짓는다. 친구의 추천곡을 들은 여러 아이가 나에게 비밀 채팅으로 느낌을 보내온다. 친구의 마음에 공감하는 내용, 소개한 곡에 대한 감상 소감, 발표자의 태도에 대한 칭찬과 격려, 보완할 점 등이다. 나는 글들을 익명으로 모두에게 읽어준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아이들의 감정 표현이 점차 구체화하고 글쓰기 실력이 자란다.

같은 내용을 교실 대면 수업에서 했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느낀 점을 손들고 말하는 친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중2 학생들의 일반적인 성향이다. 감정의 활발한 분화를 통해 감수성이 한층 발달하는 한편, 다른 사람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표현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제때 표출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을 순간 폭발하듯 분출해 극단적인 갈등 상황에 처하는 일도 흔하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시작된 지 6개월이 됐다. 4월9일 ‘온라인 개학’을 했을 때만 해도 교사들은 혼란스럽고 긴장했지만 빠르게 대응했다. 원격학습 체제에 겨우 적응한 뒤에는 ‘온·오프라인 이중 등교 체제’로 방역 관리까지 책임지게 됐으나 비교적 잘 대처했다.

불안과 고립을 이야기한 ‘이럴 땐 이런 음악’

학교는 교사 대부분이 쌍방향 실시간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관련 업무를 맡은 일부 교사의 헌신적인 노력과 학년부 차원의 끈끈한 협력 속에, 기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젊은 교사들의 주도로 비교적 나이 많은 교사들도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었다. 이 초유의 사태가 공동체성이 한층 강화된 민주적 학교 체제로 어느 정도 진화시킨 것이다.

25년간 중·고등학교 현장에서 음악을 가르친 나는 이런 분위기 속에 공교육의 새판을 짜는 과감한 교실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 개학이 연기된 2주간 담임 학급의 학생, 학부모에게 상세한 자기소개와 교육철학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학생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불가피한 고립 환경에서 관계 욕구가 높아진 아이들에게 교사의 개별 상담은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나는 친구나 교사와의 연결이 끊긴 학생들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어느 때보다 공감과 소통의 기회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실시간 쌍방향 수업’에서 ‘이럴 땐 이런 음악’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상황별 음악을 선곡해 소개하는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이 코로나19의 불안뿐만 아니라 고립으로 인해 학업, 관계, 성장기 내면의 갈등 등을 겪고 있음을 알았다.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니, ‘내가 겪는 어려움은 성장기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확인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음악을 통해 서로의 고충을 알아가고 ‘나만 겪는 어려움이 아님’을 자연스럽게 깨달으며 공감대가 형성됐다.

모든 아이가 모둠별 협력 수업으로 이 활동을 계속하길 원했다. 내가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모둠별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들 주변에서 얘기했는데, 실제로는 달랐다. 평가와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진행했는데도 모든 아이가 진지하게 수업에 참여했다. 

개별적 환경은 불균등한데, 입시는 공정할까

악기를 연주하는 활동에서는 학교의 시설이나 악기를 공유할 수 없으므로 ‘매체를 활용한 나의 연주 레퍼토리 만들기’를 했다. 형편에 맞는 악기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악곡을 선택해 연습하고 발표했다. 교사는 화상으로 아이들의 연습 상황을 관찰하고 피드백을 했다. 자신의 상황과 선택을 존중했기에 아이들의 만족감은 높았다.

자율적이고 개별화된 수업은 패배자가 없는 교육 성과로 이어졌다. 100% 수행평가로 이뤄지는 음악 성적이 평균 90점을 웃도는 건 놀라운 성취율이다. 학생들은 역량과 취향에 맞게 참여하면서 스스로 정한 목표에 다가갔고, 그 결과 자기 효능감을 한껏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새 체제의 성공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오로지 ‘교육 수요자’의 목소리에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시대에 새 교육의 역사를 함께 써가는 동지’라고 말한다. 모든 활동을 마무리하며 아이들의 만족도를 묻고 개선할 점을 찾았다. 그리고 새 학기 교육과정과 평가 계획에 이것을 대폭 반영했다. 2학기를 맞이한 아이들의 표정에는 ‘이제 내가 짠 새판에 한번 들어가보자’는 당당한 주인의식이 엿보였다.

코로나19로 인한 강제적 변화가 건강한 교육혁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위학교 구성원들의 창의적·협력적인 유연한 대처뿐 아니라, 공교육 전반의 혁신을 가로막는 평가 체제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1학기 학생들의 성적 분포를 보면 사교육에 의존하는 교과의 성적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주로 학교 수업으로 충당하는 과목에서 가정 내 돌봄이 부족한 아이들의 성적이 매우 낮았다. 과목별 난이도, 수업의 만족도, 장시간의 전자기기 사용으로 인한 피로도 등 다양한 요인으로 어른의 조력 없이 모든 수업에 내실 있게 참여하기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고입, 대입 선발 시험의 공정성을 새로 논의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학생의 개별적인 환경이 불균등한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로만 줄 세우는 입시가 가장 공정한 평가로 인식됐다. 그러나 이제는 그 위험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탁월한 인재는 ‘추첨’으로 뽑히기도 한다

덴마크의 자유학교는 해당 분야에 재능 있는 학생을 정원의 50%까지 선발하고, 나머지는 그 분야를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면접 또는 추첨을 통해 입학하도록 한다. 독일의 의과대학도 선발되지 못한 학생들이 일정 기간 대기하는 열성을 보이면 다시 입학할 기회를 준다. 그들이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내며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어떤 분야에 탁월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 반드시 줄 세우기 선별에만 달린 게 아님을 확인하는 좋은 예다. 마침 경쟁교육의 폐해가 한계에 이른 지금이 사회적 합의를 모아야 할 때다.

김선희 교사

*표지이야기-코로나 시대의 학교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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