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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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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직장갑질 주범이다

포괄임금제와 탄력근로제…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에 치이는 노동자들
등록 2019-01-26 17:13 수정 2020-05-03 04:29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첫 월요일인 2018년 7월2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있는 위메프 본사에서 직원들이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위메프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연합뉴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첫 월요일인 2018년 7월2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있는 위메프 본사에서 직원들이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위메프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연합뉴스

현경(가명)씨는 직원 10명 미만의 작은 회사에 다닌다. 근로계약서엔 오전 9시30분에 출근해 저녁 6시30분 퇴근으로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9시에 출근해 7시 퇴근한다. 연봉은 최저임금을 맞춘 금액이었지만 월급이 밀리지 않고 나왔다. 상여금 400%, 명절 보너스 100%, 여름휴가비는 가뭄에 단비 같았다. 점심 식대도 지급했다. 해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월급도 조금씩 올랐다. 직장생활이 힘들었지만 갑질을 하거나 괴롭히는 상사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회사에서 많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회사는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제시했다. 상여금 400%를 12개월로 쪼개 기본급에 넣었다. 지급하던 식비도 사라졌다. 사장은 “정부가 상여금과 식대를 인정해주지 않아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상여금과 복리수당을 포함하는 최저임금법을 개정한 이후였다. 지난해 추석을 마지막으로 명절 보너스도 사라졌고, 여름휴가비도 없어졌다.

사장님은 불법 아니라고 했지만

이뿐만이 아니었다. 회사는 “연차는 공휴일로 대체한다”는 내용을 담은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다들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 아이가 아파 회사에 전화해 연차를 신청했다. 다음달 급여명세서에는 하루치 일당이 월급에서 빠져 있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도, 친인척의 장례에 참석해도 월급이 깎였다.

회사는 ‘자율야근’이라고 표현했다. 업무가 많아 저녁 8시 넘어 일하는 날이 잦았지만 수당이 지급되지 않았다. 일이 적을 때 일찍 퇴근하면 된다고 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불만을 제기한 동료는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는 최저임금 175만원만 지키면 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사장은 고용노동부에 신고해도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정부가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현경씨의 기대는 헛꿈이었다. 연봉 총액이 도리어 줄어들었다.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월급여에서 식비 등을 빼버리면 서류상 받는 돈보다 실제 수령액은 확연하게 적은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현경씨는 2019년 1월1일 새해 첫날 직장갑질119에 전자우편을 보냈다.

민경(가명)씨는 지난해 7월 한 회사에 디자인에이전시로 입사했다. 오전 9시30분 출근, 저녁 6시30분 퇴근이었다. 회사는 면접에서 “야근이 많은데 괜찮나요?”라고 물었다. 연봉 2천만원을 받기로 하고 근로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런데 야근이 장난이 아니었다. 밤 12시, 새벽 2시, 새벽 4시까지 일을 시켰다. 새벽에 퇴근해도 오전 11시까지는 반드시 출근해야 했고, 일이 바쁘면 정시 출근을 했다.

사장은 포괄임금제라고 명시한 근로계약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연봉에 연장수당이나 야근수당이 모두 포함된다고 했다. 한 동료는 주말에도 나와 철야근무까지 했다. 민경씨는 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근무한 시간표를 엑셀에 작성하고, 교통카드 사용 명세 등 증거를 모았다.

민경씨는 7월 1주 43시간17분, 2주 46시간, 3주 59시간, 4주 72시간을 근무했다. 11월까지 5개월22주 동안 딱 한 주만 빼고 모두 주 40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를 했다. 법이 허용하는 한계인 주 52시간(법정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넘긴 주가 9주나 됐다. 5개월 동안 연장근로시간은 261시간49분이었다. 근로기준법 제53조 위반이었지만, 사장은 포괄임금제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이상만 지급하면 불법이 아니라고 했다.

포괄임금제 합의해도 초과근로수당 안 주면 불법

민경씨는 “정말 21세기에 이런 운영이 가능한 회사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심하네요. 지금 제가 이렇게 근무하고 못 받은 야근비와 수습 기간 85%만 받은 임금을 모두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근태기록 파일을 보냈다. 그는 직장갑질119와 상담한 뒤 노동청을 찾아가 떼인 돈 300만원을 돌려받았다.

대법원은 하루 8시간을 초과해 연장·야간·휴일근무를 한 경우 포괄임금제라고 합의했더라도 무효이고, 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동시간 산정이 어려운 감시 업무나 대기 업무(감시·단속적 근로, 경비원, 청원경찰, 시설관리 대기자, 수행운전기사, 당직대체요원 등)가 아닌 한 포괄임금제는 무효다. 회사가 포괄임금제라며 야근 수당을 안 주거나 야근시간 계산을 하지 않고 매달 정해진 금액을 주는 것도 무효다.

더 심각한 문제가 탄력근로제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이 3개월인 현행법에 의하면 3개월 동안은 40시간이 아니라 52시간이 ‘준법’ 근로 시간이다.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거칠게 설명하자면, 3개월 근로시간 총량 계산이 52시간을 기준으로 계산(52시간ⅹ90일=4680시간)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45일은 주당 64시간(64시간ⅹ45일=2880시간), 45일은 주당 40시간(40시간ⅹ45일=1800시간) 노동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 방안대로 탄력근로제가 1년 단위로 확대될 경우 초과 근로가 가능한 기간이 기존 45일에서 6개월로 4배가량 늘어난다. 민경씨의 경우 2018년 7~12월은 지금처럼 64시간 근무를 하고, 올해 상반기는 주 40시간 일을 하는 식이다. 주 52시간 초과 근무에 따른 근로기준법 위반 기간이 반년으로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반년 가까이 초과근로를 하고도 연장근로수당도 받을 수 없다. 회사가 민경씨에게 추가 수당으로 줘야 할 임금이 반으로 줄어든다.

우리나라 기업 절반이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상당수 기업이 불법으로 운영해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는 지난해 6월까지 오·남용 방지를 위한 ‘포괄임금제 지도 지침’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발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도록 정부는 어떤 지침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사용자에게 유리한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와 탄력근로제를 신속하게 추진하고, 직장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명백한 불법인 포괄임금제는 노·사·정 논의로 넘겨 불법을 방치한다. 직장인들이 갑질의 주범이 바로 고용노동부라고 비난하는 이유다.

탄력근로제 1년 연장이 불러올 파국

대한민국은 정이 있는 나라다. 밥은 주고 일을 시키는 게 기본이다. 명절이 되면 보너스를 주고, 돈이 없어도 종합선물세트 하나씩은 건네는 게 인지상정이다. 많은 회사에서 통근버스를 운영하지 않으면 교통비 주고, 오래 일하면 근속수당, 가족이 있으면 가족수당을 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2년 동안 월급명세서에서 상여금과 식비, 교통비가 사라졌다. 노조도 없고, 단체협약도 없는 300명 미만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됐다.

이러다 주휴수당도 사라지고, 최저임금이 지역별·산업별로 차등화돼 월급이 더 줄어드는 건 아닐까. 최저임금은 올랐는데 다른 수당이 사라져 새해에도 월급이 오르지 않는 가난한 노동자에게 이 정부가 ‘친’노동 정부, 노동 존중 정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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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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