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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도가니’

직원에겐 갑질, 시설 아동에겐 학대

무소불위 권력 사회복지시설 원장들
등록 2018-08-07 07:45 수정 2020-05-02 19:29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한겨레 김태형 기자

그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의 상처를 위무하는 일, 고되지만 행복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이모’라고 불렀다. 엄마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편안하고 친근한 이모가 되고 싶었다. YWCA가 운영하는 아동 보육시설에서는 젖먹이 갓난아이부터 고3까지 여자아이들만 생활한다. 생활지도원으로 일하는 그녀는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들이 의 주디처럼 세상에 나가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라며 성심을 다해 일했다.

그런데 보육시설이 평온한 적이 없었다. 목사 원장은 교사들을 믿고 아이들을 맡겼다가 아동학대 사건이 터져 그만뒀고, 다음 원장은 아동생계비 공금횡령 사건으로 쫓겨났다. 아이들은 시설이 사라질까봐 걱정했다. 새로 부임하는 원장이 의 사악하고 이기적인 민친 선생이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선생님이 와서 아이들이 평화롭게 지내길 소망했다.

 

원생 생계비 카드 유용한 원장

새 원장이 이상했다. 제때 출근하지 않고 며칠씩 안 보이기도 했다. 원장은 시설 차량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개인 승용차처럼 썼다. 직원들이 업무에 필요할 때 시설 차량을 쓰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아동에게만 써야 할 생계비 카드를 쓰고 다닌다는 얘기가 돌았다. 출근하지 않고 친구와 외국 여행을 갔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는 ‘설마’ 했다. 원장은 직원 아침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원장은 거칠 것이 없었다. 휴가 중인 직원을 시설로 돌아오라고 했고, 복귀하지 않으면 다음날 조회 석상에서 혼을 냈다. 토·일요일에는 연가를 쓰지 말라고 했다. 생필품을 많이 썼다고 조회 시간에 면박을 줬다. 원장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괴롭히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했다. 아이들에게 이모가 뭘 잘못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어 아이들을 학대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특히 지적장애 아이들을 이용했다. 그만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원장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직원이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원장에게 찍힌 이모들이 견디지 못하고 시설을 떠났다.

2016년 1월이었다. 고2 학생이 제 돈으로 쌍꺼풀 수술을 하고 돌아왔다. 평소 운영위원들에게 ‘뒷담’을 하고 다닌다고 원장이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원장은 생활지도원들에게 보고서를 쓰라고 했다. 학생의 평소 악행을 강조해서 쓰게 했다. 원장이 원하는 문서가 나올 때까지 다시 쓰게 했다. 원장은 학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겠다고 했다. 이아무개 운영위원장과 한 선생님이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지만 기어이 병원에 데려갔다. 정신병원 의사는 “허락받지 않고 쌍꺼풀 수술을 한 게 무슨 정신병원 입원 사유가 되느냐”고 화내며 입원을 거부했다. 원장은 동행한 직원들에게 사실을 누설하지 말라고 한 뒤, 학생에게 “의사가 입원을 시키라고 했는데 내가 한 번만 봐달라고 했으니, 앞으로 말을 잘 들어야 해”라고 했다.

교도소에서 출소해 갈 곳 없는 학생에게 자립해서 나가지 않으면 정신병원에 보내겠다고도 협박했다.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아빠에게 한 달 동안 보내기도 했다. 아이는 울면서 원가정에 가야 했다. 아이들은 원장이 무서워 벌벌 떨었다. 직원들에게 갑질하는 건 참을 수 있겠는데, 아이들을 괴롭히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2017년 6월, 정신병원 강제 입원 사건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국가인권위에서 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협박이 있었는지, 학생은 조사를 원치 않는다고 했고 국가인권위는 손을 뗐다. 그는 직장갑질119에 제보했고, 뒤늦게 국가인권위가 직권조사에 나섰다.

 

뒤늦은 인권위의 원장 해임 권고

국가인권위가 아동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면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있거나 실제 입원한 아동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7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2012년 이후 이 시설에서 생활한 아동 중 5명이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아동의 동의 없이 원래 가정에 돌려보내거나 다른 시설로 옮기려 한 사실을 확인했다. 인권위는 △원장 해임 등 중징계 △아동과 시설 종사자 간 관계 회복 대책 실행을 권고했다. 자치단체장에게는 관내 아동 양육시설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라고 했다.

“작년 6월 진정을 넣었을 때 국가인권위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았을 텐데, 1년 넘게 흐른 뒤 이런 결정이 나와서 아이들이 겪은 고통이 너무 큽니다. 상처가 빨리 치유됐으면 좋겠어요.”

경기도의 한 사회복지시설. 사회복지사들은 목사 부부가 시설에 오면 “또 돈 걷으러 오는구나”라고 얘기한다. 일일 밥집 행사 티켓은 사원 25만원, 팀장 35만원씩 할당한다. 판매를 못하면 본인 돈으로 채워넣는다. 후원의 밤 행사 때마다 후원금을 내야 하고, 여름캠프에도 참가비 5만원을 낸다. 직원들은 월급 통장으로 목사 법인에 자동이체(CMS) 후원을 한다. 가장 적게 내는 직원이 3만원, 보통은 10만원씩 낸다. 종교 행사 참석 강요는 기본. 매주 교회에 가서 십일조를 내야 한다.

충청도의 또 다른 시설. “너만 일하냐? 입 찢어버리기 전에 그만해라. 너만 고집 있고 너만 일 다 하냐?” “한마디만 더 해봐, 죽여버릴 테니까.” “칼 어디 있어. 칼로 입 찢어버리겠다.” 원장 아들이 한 여직원에게 쏟아낸 말이었다. 분노에 휩싸인 아들은 주먹으로 자기 컴퓨터 화면을 때려 부쉈다. 생전에 겪지 못한 꼴을 당한 그는 불안장애, 수면장애, 식이장애, 불안, 공포, 급성 스트레스 진단을 받아 3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신앙의 힘과 봉사 정신으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종교인도 많다. 그런데 많은 사회복지시설 노동자가 직장갑질119를 찾아 원장의 횡포와 갑질을 신고한다. 무소불위 권력이 있는 원장은 직원들에게 제사 음식을 만들게 하고 이삿짐을 나르게 했다. 직원을 종 부리듯 하는 원장이 학생이나 장애인에게 자상할 리 만무하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생활하는 요양시설. 돈 아낀다고 한겨울에 난방을 꺼서 노인들이 추워 벌벌 떨고, 폭염에도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한다. 감독기관은 언론에 터질 때만 호들갑을 떨 뿐, 지역 토호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사회복지시설을 개혁할 생각이 없다.

지역 토호들 놀이터 된 시설

①후원 강요 금지 ②종교 행사 강요 금지 ③연장근로수당 지급. 사회복지노조의 3대 요구다. 전국 사회복지시설의 공통 갑질이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원장에 맞서 노조를 만들었지만 노조 가입률이 1%밖에 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들이 뭉쳐야 원장의 횡포를 막아내고, 시설을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부터 갑질을 근절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1년에 한두 번, 불시 점검을 나가 직원과 수용자들에게 익명 설문조사를 하면 된다. 갑질과 학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도, 지방정부도 손을 놓고 있다. 이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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