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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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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를 거부한 비주류의 혁신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 비즈니스 컨설팅으로

사회적 창업 성공한 와타나베 사야카
등록 2018-05-29 07:55 수정 2020-05-02 19:28

1980년 사회적기업가를 후원하는 아쇼카재단을 설립한 빌 드레이턴은 “물고기를 주거나, 어떻게 물고기를 잡느냐를 가르치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어업을 발전시킬 때까지 쉬지 않는 사람”이라고 사회적기업가를 정의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이윤’을 위해 일하는 사회적기업가의 특성을 포착한 말이다. 개인의 영달보다 사회 혁신에 몰두하는 ‘사회적 DNA’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일본 도쿄에서 만난 사회적 컨설팅 기업 ‘리테라’의 와타나베 사야카(31·사진) 대표를 주목받는 사회적기업가로 만든 것은 사회적 비주류, 소수자로서의 경험이었다.

‘사회적 DNA’의 뿌리

와타나베는 ‘개천에서 난 용’이다. 지난 5월16일 일본 도쿄도의 번화가인 롯폰기 미드타운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스스로에 대해 “확실히 비주류에서 주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교사라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가 초·중·고를 다닌 일본 나가노현은 “1시간씩 걸어서” 학교에 갈 정도로 외진 ‘개천’이었다. 나가노는 “여자는 대학 갈 필요 없다” “여자는 빨리 결혼해야 한다”는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라고 했다. “시골에서 초·중·고 모두 공립학교를 나왔고 대도시 아이들처럼 사교육도 받지 않았어요. 그런 점을 생각하면 비주류에서 주류가 된 부분이 있죠.”

일본 주류가 밟는 엘리트 코스에서 한참 벗어나 있던 와타나베가 주류에 든 것은 2007년 도쿄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외국계 기업 IBM에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입사하면서부터였다. 애초 3년만 일을 배우고 ‘BOP 비즈니스’ 분야 창업을 목표로 했던 그다. BOP(Bottom Of the Pyramid·피라미드의 밑바닥)는 소득분포의 최하위에 있는 빈곤층을 일컫는데, 개발도상국의 빈곤 해소를 기업의 이윤 창출로 연결하는 사업을 ‘BOP 비즈니스’라 한다. 2004년 미국의 한 교수가 주창한 이 모델이 일본의 대학생이던 와타나베를 사로잡았다. 많은 직장에서 “우리는 오래 일할 직원이 필요하다”고 퇴짜를 놓을 때 IBM은 “3년 안에 한 사람 몫을 하게 만들어줄 테니 같이 일하자”고 했다. 직원을 대하는 태도만큼이나 좋은 회사였고, 선망받는 직장의 정규직 일자리가 주는 ‘주류의 유혹’은 퇴사를 주저하게 할 정도로 달콤했다.

그는 결국 ‘사회적기업가’라는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2010년 사망하면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2011년 3월11일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은 그의 사회적 DNA를 일깨웠다. 지진 피해 수습이 채 완료되기도 전인 4월, 휴가를 내고 당시 쓰나미 피해가 극심한 산리쿠 해안의 후쿠시마현, 미야기현, 이와테현을 세 번 왕복했다. 일본 대기업 직원들이 휴가를 내고 지진 피해 수습 자원봉사를 떠나는 일이 흔했지만 와타나베는 ‘봉사’가 아닌 ‘비즈니스’를 했다.

“비즈니스 컨설턴트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찾으러 다녔죠. 피해 지역 주민을 많이 만났어요. 이와테현 게센 지역에선 ‘동백은 뿌리가 튼튼해서 쓰나미가 지나간 다음 찾아오는 봄에 반드시 꽃을 피운다’는 주민의 이야기를 들었죠. 일본에서 동백기름이 요리용으로 많이 쓰이는데 화장품으로 개발하면 부가가치가 생길 수 있다고 봤죠.”

2011년 6월 30살 생일이 있던 달 IBM을 퇴사한 와타나베는 그해 11월 ‘사단법인 리테라’를 세워 ‘게센 쓰바키’(KESEN TSUBAKI)라는 이름의 화장품을 출시했다. 판매가 늘면서 2013년 5월 게센 쓰바키 사업만을 전담하는 ‘주식회사 리테라’가 설립됐다. 리테라의 모토는 ‘산리쿠 쓰바키 드림 프로젝트’다. 끔찍한 재앙의 장소로 각인된 ‘산리쿠’가 리테라를 만나 지역주민에게 ‘꿈’이 됐다.

비주류 감수성으로

후쿠시마현에 바로 인접한 미야기현 센다이에 본사가 있는 휠체어 제작 업체(TESS)의 동남아시아 수출 판로를 뚫어준 것도 리테라였다. “간병인 도움 없이 환자 혼자 발로 운전이 가능한 휠체어인데, 베트남에서 이 휠체어를 활용하는 재활치료는 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어요.” 등 일본의 주요 언론이 와타나베의 활동에 주목했고, 그는 2013년 일본 경제신문 가 사회 혁신가들에게 수여하는 ‘제1회 닛케이 소셜 이니셔티브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와타나베는 리테라 이전 ‘소켓’이라는 사회적기업을 공동 창업한 경험이 있다. IBM에 다니던 2010년의 일이다. 국내보다 국제 일에 관심 많은 지인 10여 명이 주축이 돼 ‘글로벌 비영리법인(NPO)’을 만드는 방법을 모색했다. 핵심 멤버 가운데 IBM에 근무하던 직원은 아프리카에서 창업을 했고, 소니 직원은 헝가리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이른바 명문대 출신에 외국 유학파, 매킨지컨설팅이나 세계은행 등 안정적 기업의 정규직 일본 엘리트들은 일본에서 ‘주류’로 사는 일보다 일본 바깥에서 비주류로 살기를 원했고, 와타나베도 그중 하나였다.

가만히 있으면 주류가 될 수 있는데, 안전한 길을 가지 않은 이유로 와타나베는 ‘비주류 감수성’을 꼽았다. “나가노라는 시골에서 자라며 주류가 아닌 곳의 중요함을 일찍이 인식했던 것 같아요. 매킨지컨설팅에서 일했던 분은 미국 유학 중 분쟁 지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 글로벌 비영리법인에 관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아시아의 여성 사회적기업가들을 연결하는 ‘아시아여성사회적기업가네트워크’(ASWEN) 역시 와타나베가 뿌린 혁신의 씨앗이다. 2013년 시작했는데 어느새 아세안 국가의 여성 사회적기업가 200여 명이 소통한다.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일본에도 개발도상국 문제가 일부 있다고 생각했어요. 개도국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한 사회적기업가를 만나고 싶었죠.”

와타나베의 리테라는 최근 시리아 난민이 있는 요르단이나 가자지구에 일본 정보기술(IT) 기업 지사를 세워 난민을 직접 고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난민 문제를 잘 아는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 난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 벤처기업을 돌아다니며 제안했는데, 한 곳이 뜻을 보여 자이카(일본국제협력단) 지원으로 함께 시도하고 있어요. 자이카가 민간 기업과 협력하는 것은 드문 일이죠.” 자이카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를 주로 하는 공공기관으로 한국의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와 같은 곳이다. 인도적 지원이 주류였던 공적개발원조에 와타나베는 또 어떤 혁신을 가져올까.

7월 아시아청년사회혁신가포럼 연사로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연구하는 유명한 학자 아더 브룩스는 사회적기업가로 ‘사회적 가치를 위한 기회를 인식하고 끈질기게 이를 추구하는 사람’ ‘지속적인 혁신과 학습에 참여하는 사람’ ‘현재의 제한된 자원 또는 여건을 넘어서 행동하는 사람’ 등을 들었다. 사회적기업가의 면모를 두루 갖춘 와타나베는 7월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사회혁신가포럼에 연사로 나선다.

도쿄(일본)=글·사진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통역 도움 허원영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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