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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야마 유시(37)는 이른바 ‘금수저’다. 외할아버지가 설립하고 아버지를 거쳐 2013년부터 가타야마가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신토요주식회사는 영국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랜드로버’의 공식 딜러 업체다. 신토요주식회사에는 기업가 3세의 ‘뻔한’ 스토리를 뒤집는 독특한 부서가 있다. ‘해치코워크 플러스키즈’(HATCH Cowork+KIDs·이하 해치코키즈) 사업 부문이다. 회사 누리집은 재규어랜드로버와 나란히 이 사업 부문을 소개한다. 가타야마가 미국 방송 《CNN》을 비롯한 일본 국내외 언론에 흔한 기업가 3세가 아니라 ‘사회적기업가’로 소개되는 이유다.
지난 5월15일 오전 일본 도쿄의 아카사카 지역에 있는 신토요주식회사 소유 빌딩 5층에 있는 해치코키즈를 찾았다. 사무실이 없는 프리랜서나 1인 기업, 소셜벤처, 창업 준비 청년들이 사용료를 내고 사무공간을 공유하는 ‘코워킹플레이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국에도 이런 코워킹플레이스는 적지않다. 기업가가 앞장선다는 점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 정경선씨가 만든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헤이그라운드’나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 이재웅씨가 같은 지역에 세운 ‘카우앤독’이 유사하다.
프리랜서의 직장어린이집일본의 가타야마가 한국의 정경선이나 이재웅과 다른 점, 일본의 해치코키즈가 한국의 헤이그라운드 또는 카우앤독과 다른 점은 바로 업무에 열중하는 어른들의 공간을 지나 투명한 창 너머에 있는 ‘보육 공간’에 있었다. 해치코워크라는 이름 뒤 ‘플러스키즈’가 가리키는 공간이다.
해치코키즈는 육아를 해야 하는 부모들에게 보육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회사에 설치돼 부모와 아이가 출퇴근을 같이 할 수 있는 한국의 ‘직장어린이집’과 같은 개념이다. 한 달에 코워킹플레이스 이용비 2만엔(약 19만7천원)에 3만엔(약 29만5천원)을 추가로 내면 주 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시간 동안 아이를 맡기고 일할 수 있다.
5월15일 해치코키즈를 찾았을 때 11시가 되자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미국인 아빠와 일본인 아빠 2명이 나란히 들어왔다. 만 2살인 아이를 보육공간에 내려놓은 일본인 아빠는 기자에게 “아이가 조산이라 보육소에 맡기는 것은 맞벌이를 하는 아내가 꺼렸다. 아이와 함께 집에서 일하는 것은 어렵다. 해치코키즈는 아이를 돌봐주니 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해치코키즈의 홍보 책자에는 부동산 기업에 다니다 아이를 낳은 뒤 퇴사하고, 1인 기업을 세운 엄마 아키모토 미키의 먹먹한 사용 소감이 나와 있다. “창업가이자 엄마로서 내가 나중에 어느 한쪽만 선택하지 않고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장소가 해치코키즈다.”
5월15일 해치코키즈에서 만난 가타야마는 금수저 아빠가 사회적기업가로 변신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2011년 7월에 아이가 태어났어요. 프리랜서로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아내는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일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결국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일본 여성이 매우 우수한데, 여전히 아이를 낳으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일본의 사회문화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느껴졌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갖는 경제적 가치를 뜻하는 ‘위미노믹스’(Womenomics) 개념이 창안된 곳이 일본이다. 일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0.4%) 수준이던 2005년 이런 내용의 보고서가 골드만삭스 일본 지사에서 나왔다. 그때 한국(54.5%)은 일본에 한참 못 미쳤고, 10년이 지나도 60%를 못 넘고 있다.
경력단절 늪에서 살아남기경력단절의 늪에 빠졌던 가타야마의 한국인 아내도 해치코키즈의 보육 서비스를 이용했다. “아내가 집에서 일할 때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 해치코키즈에 온다”고 말하는 가타야마는 일본의 ‘이쿠맨’(육아하는 아빠)이었다. 일본에는 한국의 ‘이모님 문화’가 없다. 가타야마는 “육아 도우미로 일하려는 일본 중년 여성이 드물고, 필리핀이나 타이 여성들을 부르려면 사용자(아기 부모)가 그분들의 비자 발급을 신청해줘야 하는데, 사용자가 외국인이 아니면 비자 발급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가타야마는 “해치코키즈 이후에 비슷한 콘셉트의 코워킹플레이스가 생겼는데, 주객이 전도돼 사무공간이 아니라 보육소처럼 운영된다. 그런 사무공간은 아이가 없으면 갈 수 없다. 해치코키즈는 사무공간이 주력”이라고 강조했다. 2017년 12월 기준으로 해치코키즈를 이용하는 30명 가운데 대다수인 24명(80%)은 사무공간만 이용한다.
해치코키즈는 2013년 일본의 경기 활성화와 위미노믹스가 본격화하면서 생긴 공공보육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보육정책을 오래 연구해온 장경희 신성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일본의 유아교육은 보육소(만 0~5살)와 유치원(만 3~5살)으로 나뉘는데, 만 0~2살 영아 보육시설이 부족하다. 보육소는 시설이나 인건비 등 지방자치단체가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 때문에 전일제 맞벌이나 질병, 조부모 간병, 지진 등 풍수해로 인한 복구 등 집에서 부모가 양육할 수 없는 사유가 명백해야 들어갈 수 있다. 맞벌이라도 프리랜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해치코키즈가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연령대가 바로 만 0~2살이다.
2013년 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시정 방침 연설에서 ‘여성이 빛나는 일본’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15~64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0% 초반에 머물던 2014년 이후 가파르게 올라 2016년 2월 66%까지 됐다. 한국은행 도쿄사무소에 따르면 이 수치는 2018년 3월 기준 69.1%로 70%에 가까워졌다. 같은 시기 한국(56.6%)에 견주면 여성 고용에 관한 한 일본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된 것이다.
여성 경제활동 비율 껑충 [%%IMAGE4%%]‘마마보노’는 위미노믹스에서 일본이 한국을 앞서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각 분야 전문가가 사회적 약자를 돕는 프로보노(재능기부) 활동을 매개하는 일본 비영리법인(NPO) ‘서비스그랜트’가 운영하는 마마보노는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중인 엄마들이 전문적 역량으로 NPO를 지원한다. 2001년 일본 도쿄 시부야의 지역화폐 ‘어스데이 머니’를 만든 일본의 사회적경제 1세대 이쿠마 사가가 2013년 창립했다.
한국에도 일부 지자체에서 경력단절여성을 마마보노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어린이집 같은 보육시설에 한정돼 있는 등 재능기부 성격에 그칠 때가 많다. ‘엠(M)자형 곡선’을 보이는 30대 출산·양육기 여성의 고용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막는 일과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지난 5월14일 도쿄의 마마보노 사무실에서 만난 시바오카 구미코(35)는 30대 출산·양육기 여성으로 경력단절이 되기 쉬운 시기이지만 안정적인 워킹맘의 삶을 살고 있었다. 2012년과 2016년에 아이를 낳은 시바오카는 프리랜서 휴업 기간이 끝나자마자 마마보노 정규직으로 5월부터 출근했다.
시바오카도 육아를 위해 1년 이상 프리랜서 웹디렉터 일을 중단할 때는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2016년 마마보노를 알게 돼 ‘파더링재팬’이라는 NPO의 회원 조사를 맡았다. 시바오카는 파더링재팬과 만날 때나 회원들을 면접 조사를 할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는 2013년부터 도쿄와 오사카 등지에서 마마보노 프로그램으로 육아휴직 기간에 ‘전문가’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워킹맘 200여 명이 아이와 함께 일한 가슴 벅찬 경험을 털어놓는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며 그들을 대신해 말했다. “마마보노에서 아이를 안고 아이와 함께 일하면서, 아이가 있어도 대등한 관계에서 프로답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일본에서는 육아휴직을 하고 복직 뒤 퇴사하는 워킹맘들의 경력단절 문제를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에서 들여다본다. 마마보노 자료를 보면, 육아휴직 중인 여성의 80%가 복직 뒤 ‘일·가정 양립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통계(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여성의 계속 취업에 관한 설문조사’)가 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육아휴직 기간 마마보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지금은 마마보노의 홍보를 담당하는 나오미 가시오(48)는 “아이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남편과 가사 분담이 잘될까, 직장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예전보다 일을 못하네 같은 나쁜 평판이 두렵다는 이유로 불안해한다. 그런데 마마보노에서의 경험으로 불안감이 줄었다고 응답한 비율이 72%에 이르렀다”고 했다.
육아휴직 여성 80%가 복직 불안같은 날 마마보노 사무실에서 만난 마마보노 설립자 이쿠마 사가도 ‘이쿠맨’이었다. “2007년부터 누구의 아빠로 불리면서,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자기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죠. 그러다 2012년 서비스그랜트에서 지원하는 NPO에 수요조사를 했는데, 대부분 평일 낮 시간에 프로보노를 지원받고 싶어 했어요. 대다수 프로보노는 직업이 있고,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지원을 할 수 있잖아요. 평일 낮 시간에 누가 가능할까 고민하다, 엄마 전문가들을 떠올렸죠.”
도쿄(일본)=글·사진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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