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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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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노예계약 택배기사가 봉인가?

‘조선 시대 노비문서’로 돈 뜯어내는 택배회사들…

근로계약 인정받아야 불공정행위로 제소 가능
등록 2018-05-03 05:45 수정 2020-05-03 04:28
차량에 배송물품을 싣는 택배기사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차량에 배송물품을 싣는 택배기사들. 한겨레 신소영 기자

[벼룩시장 구인구직] (주)신세계물류: [월급제] 택배 배송사원 모집(차량지원/월350만원이상 가능) (주)신세계물류 사업내용 롯데택배직영

집이 멀어 쿠팡 배송기사를 그만둔 그는 인터넷을 뒤지다 롯데택배 광고를 봤다. 알바천국에도 같은 구인광고가 올라와 있었다. 쿠팡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와 면접을 보러 갔다. 팀장은 한 달에 3600개 정도 배달하면 월 270만원 넘게 받을 수 있고 별도로 유류비(기름값) 20만원을 준다고 했다. 첫 두 달은 배달 개수와 관계없이 월 25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전임자를 따라 2박3일 일을 배운 후 정식으로 일을 하겠다고 했더니 계약서를 내밀었다. 무슨 문서냐고 물었더니 “너희는 봐도 모르는 내용”이라며 월급을 받으려면 일단 서명하라고 했다. 일을 하고 싶어 서명했다. 롯데택배 서울 성북지역을 담당하는 신세계물류에는 회사 차량으로 운행하는 정규직 기사 5명, 본인 차량으로 배달하는 도급(위탁) 기사 35명이 일했고, 일용직 기사도 30명 넘게 있었다.

회사의 약관 협박에 퇴사도 못해

아침 6시50분 대리점으로 출근한다. 물류차가 쏟아낸 택배가 레일을 따라 돌고 있다. 공항에서 짐을 찾듯 그의 담당 구역인 상월곡동쪽 물건을 들어 쌓아놓는다. 분류가 끝나는 오전 11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택배 물건을 트럭에 싣고,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고 배송을 시작한다. 신입에게 배정 된 지역은 단독주택이 70%로 배달이 힘든 곳이다. 일찍 끝나면 저녁 8시, 물건이 많은 날은 밤 11시에 마친다. 트럭을 대리점에 주차하고, 반품 받은 물건을 차에 실어놓고 퇴근한다. 배달은 토요일까지 이어졌고, 일요일에 출근해 배송한 적도 있었다. 그는 “두 달 동안 물량이 비교적 적은 월요일을 빼고 점심을 먹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고 했다.

물건이 많아 1톤 트럭에 싣기 어려웠다. 팀장은 어떻게든 실으라고 했다. 남겨놓고 가면 퀵서비스로 보내고, 물건 한 개당 1만5천원을 물어내라고 했다. 1분만 지각해도 5만원, 차량 사고는 건당 100만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한 직원은 보험으로 처리해 월 30만원씩 분할해 내고 있었다. 다른 직원은 트럭 상단이 찌그러졌는데, 100만원을 물까봐 본인 돈으로 50만원을 주고 고쳤다고 했다. 한 달 일한 월급이 찍혔다. 138만원. 250만원을 주기로 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팀장은 자기도 모르겠다며 책임을 위로 떠넘겼다.

기름값도 30만원 넘게 들었다. 도저히 먹고살 수가 없어 그만두겠다고 했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팀장은 그가 서명한 계약서 때문에 90일 동안은 다쳐도,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갈 수 없다, 나가면 하루 15만원씩 물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서명한 ‘집배송 위수탁 용역 계약서’를 살펴봤다. 제8조 “‘을’의 임의로 기간을 정하여 통보시 계약기간 만료(90일) 내 용차 및 퀵처리를 할 수 있으며, 그 비용에 대해서는 ‘을’의 운송수수료에서 차감 후 지급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그냥 협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차례 팀장에게 사직 의사를 밝혔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급여 270만원을 달라고 했더니, 회사는 하루 15만원씩 까고 있다고 했다. 며칠 뒤 내용증명이 집으로 날아왔다. “수신인은 계약기간 내 집배송 업무를 성실히 이행하여야 하나 무단결근(퇴사)을 하여 막대한 손해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였다”며 1095만원을 물어내라고 했다.

“저와 같은 직원이 4명 더 있는데, 회사의 약관 협박 때문에 퇴사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건 진짜 현대판 노예 계약과도 같습니다. 식사는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습니다. 아침 6시에 출근해 매일 밤 10시까지 일했습니다. 이러고도 약관 때문에 급여도 못 받고, 되레 회사에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니, 이거야말로 적반하장 아닙니까? 공정위 관할인지, 고용노동부 관할인지, 이건 대체 어디 도움을 받아야 할까요?”

근로계약이냐, 도급계약이냐

법원은 △택배 차량의 실질적 소유권 △회사의 구체적인 지휘 감독 △출근시 지각에 따른 제재 등을 고려해 근로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를 판단한다. 그는 회사 차량으로 회사 지휘·감독 아래 일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며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는 진정서를 냈다.

“알바몬 사이트를 보고 월급 450만원, 대기업 배송직의 복리후생 조건이 좋아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진택배 배송기사로 일하고 싶었다. 회사는 1톤 탑차를 사야 한다고 했다. 태광물류라는 회사의 택배 담당 소장은 차를 사는 데 필요한 서류를 떼오라고 했다. 차 가격은 시세보다 700만원쯤 비싼 2730만원, 이상했지만 벌어서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루 15시간 토요일까지 일했다. 한 달 보름 만에 허리를 다쳐 일을 못하게 됐다. 그런데 대리점 소장은 계약을 해지하려면 2개월 이전에 통보해야 하고, 출근하지 못하면 다른 용차(용달차)를 써서 물건 1개당 2천원씩 물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배달할 때 받은 건당 운송료는 770원이었다. 그는 손해배상 비용으로 2400만원을 내야 했다. 월급은 한 푼도 만져보지 못했는데 한 달 만에 5천만원이 넘는 돈이 날아갔고, 살고 있는 집을 내놓아야 할 형편이다.

“채용공고만 봤을 때는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가보니까 지입차였습니다. ①취업 사기가 아닌가요? ②손해배상금이 과도하지 않은가요? ③형식은 지입인데 근로자가 아닌가요?” 그는 직장갑질119에 전자우편을 보냈다.

‘알바몬’ 광고가 근로자 채용인 것처럼 작성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지입 차주라면 직업안정법 제34조(거짓 구인광고를 하거나 거짓 구인조건을 제시하여서는 안 된다) 위반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법원은 도급(위탁)계약이 아닌 근로계약에만 이 법을 적용한다.

결국 근로계약이냐 도급계약이냐를 다툴 수밖에 없다. 채용공고를 보고 가서 차량을 계약했고, 한진택배로 차량을 도색하고 유니폼을 입고 출근시간과 배송 지역에 대해 지휘·감독을 받기 때문에 근로계약이라는 점을 주장해볼 여지가 있다.

설령 근로계약을 인정받지 못했더라도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업자가 그 지위를 이용해 자기는 부당한 이득을 얻고 상대방에게는 과도한 반대급부 또는 기타의 부당한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 질서에 위반한 법률행위로서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거래행위’로 제소할 수 있다.

사기 광고 싣고 돈 버는 ‘취업 포털’

그런데 전국 5만 명의 택배기사 중 이런 판례를 알고 있는 노동자가 몇이나 될까? 고용노동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택배기사 노예계약’에 관심을 가졌다면, 21세기 문재인 대통령 시대에 조선 시대 노비 문서가 활개 치고 다녔을까? 아 참, ‘취업 사기’ 구인광고를 버젓이 싣고 돈을 받는 벼룩시장, 알바천국, 알바몬의 잘못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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