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요즘 잠을 못 이룬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누군가 입을 틀어막은 듯 답답하다. 밥맛도 없다. 새벽녘에 간신히 잠이 들었다가 누군가 지르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깬다. 억울하고 분하다는 말은 사치다.
직장생활 30년, 지금까지 회사에서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다. 6년째 계산원으로 일하는 홈플러스에서도 성실하고 모범적이란 칭찬을 들어왔다. 몸은 고되지만 직장생활은 평온했고,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일상은 평화로웠다. 예순 가까운 인생을 살며 산전수전 다 겪었고, 별별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갈등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아이 나무라듯 호통치는 30대 관리자2년 전 점장과 관리자들이 바뀐 뒤 평화로웠던 직장 풍경이 달라졌다. 12월 마지막 날, 상사가 휴게실로 와 그녀를 불렀다. 직원들의 근무표를 짜는 정규직 주임이었다. 평소에도 공격적이고, 말을 잘 바꿔서 다들 말 섞기를 꺼리는 사람이었다. 그녀도 몇 번 당한 적이 있어 녹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임은 근무스케줄을 추가로 체크한 적 있느냐며 취조하듯 물었다. 목소리에 불만이 담겨 있었다. 다음달 보건휴가를 포함해 휴무 4개를 쓴 때문인 듯했다. 그런 적 없다고, 왜 화난 목소리로 말씀을 하느냐고 했더니 그가 소리를 치며 말을 쏟아냈다.
“내가 화를 냈대잖아요! 지가 화난 목소리지.” “스케줄 변경하면 화를 내서 말도 못하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거예요?” “지가 이게 화내는 목소리지.”
점장이 와서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30대 중반 관리자가 부모뻘 계산원에게 아이 나무라듯 호통쳤다. 점장 앞에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다니,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울음이 터졌다. 직장생활 하면서 누구랑 싸워본 적도, 혼나본 적도 없었다. 불만이 있어도 그냥 참았다. 병가를 쓴 적도, 조퇴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자신에게 굽실거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동료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말자고 했다. ‘그냥 조용히 넘어갔으면 별문제가 없었을 텐데, 나 때문에 미안하다’고 카카오톡 단체방에 올렸더니, ‘아니라’며 ‘이번에 잘 터졌다’고 했다. 그들도 자신들이 당했던 일들을 쏟아냈다. 새달 근무표를 전날까지 알려주지 않아 집안 행사도, 여행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보건휴가 쓰는 걸 싫어했고, 명절에 붙여 연차를 신청하면 임의로 다른 날로 바꿨다. 조금 한가할 때면 물어보지도 않고 연차를 집어넣었다. 손님들이 물건을 담아가는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로스(손실)가 많이 난다고, 개인에게 하루 20장씩 주고 퇴근할 때 반납하게 했다. 퇴근 시간에 40분 동안 붙잡혀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노조에 가입한 직원과 말다툼을 한 뒤 안경을 집어던지며 “×팔, 노조원이면 다야”라고 혼잣말하는 것을 들은 동료도 있었다. 관리자들이 해야 할 일을 SV(슈퍼바이저) 직원들에게 떠넘겼고, 아르바이트를 써야 할 신한카드 발급 업무까지 시키다 반발하자, 며칠 청소를 강요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잘못이 없었고, 주임이 책임을 뒤집어씌운 것이라는 내용에 동료들이 서명을 했다. 비식품 코너 부서원들도 동참했다. 점장과 면담을 했다. 직원들 증언과 녹음한 내용을 들려줬다. 평소에도 막말을 입에 달고 살고, 직원들 원성이 높아 함께 일하기 힘들다고 했다.
면담이 끝나고 모두들 주임이 다른 곳으로 발령 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점장은 업무상 잘못이 없지 않느냐고 했다. 감정싸움 때문에 다른 곳으로 보내기 어렵다고 했다. 주임과 관계가 좋은 몇 명을 불러 면담하더니, 폭언을 당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누군가 본사에 알려 주임이 사과했지만 주임은 징계도 당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고, 주임은 근무표라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갑질과 횡포는 더 심해질 것이 분명했다. 한 동료가 근무 끝나고 피켓 시위라도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글을 올렸다. 식품 코너 직원들도 동참하겠다고 했다. 비굴하게 살지 않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직장생활 30년 만에 깨달았다.
욕하고, 때리고, 탈락시키고지난 연말 한 사내를 만났다. 머리를 짧게 깎았고 운동선수처럼 덩치가 컸다. 이야기를 털어놓다 말고 그가 훌쩍거렸다. 순박한 얼굴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버스 운전기사다. 2003년 대형버스 면허를 땄고, 2014년엔 시내버스를, 2016년부터 고속버스를 몰았다. 지난해 7월 금호고속 승무사원 모집에 서류·면접 전형을 통과했다. 하지만 큰 회사에 합격했다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7주간의 역량평가 교육을 받기 위해 경기도 부천의 자동차 정비공장에 입소한 신입사원들에게 종이 한 장이 건네졌다. “교육 도중 탈락하더라도 일체의 민형사상 소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었다. 서명이 끝나자 교관의 태도가 돌변했다. 기름투성이 바닥에서 ‘좌로 굴러, 우로 굴러’가 시작됐다. “니네들 지금 놀러왔어?” “○○고속에서 그따위로 운전했냐?” “개나리씹장생, 야! 너는 불안해서 운전 못 시키겠다. 나가!” “야, 썅놈의 새끼야! 발모가지 힘 안 줄래? 어디서 운전을 그따구로 하고 있어!” “야 이 새끼야! 똑바로 안 할래? 핸들 뭐야 새끼야!” 폭언만이 아니었다. 무릎으로 허벅지를 가격하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때렸다. 교관이 50km, 100km, 300km를 외치면 그 속도로 머리를 교관 주먹에 박아야 했다. 명찰 옷핀이 망가져 사무실로 갔더니, “야 인마! 그냥 가면 돼?”라며 팔굽혀펴기를 시켰다. 3주차에 그는 탈락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왜 3주 동안 그 많은 치욕을 당하면서 살았는지 후회됩니다. 말이라도 하고, 멱살이라도 잡을걸. 6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치욕감이 느껴집니다. 제 몸은 소중한데, 교도소 죄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온 게 정말 억울합니다. 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지금 대전지방법원에서 회사와 교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고 있다.
모독이 폐부를 찌른다애완견도 때리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 시대, 직장인들이 개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직장 내 괴롭힘’ 제보가 석 달 동안 825건, 전체의 15%에 이른다. 폭언과 인격 모독이 폐부를 깊숙이 찌른다. 사장만이 아니다. 정규직이 파견직을 모욕하고, 대리가 계약직을 능멸한다. 취직이 어려운 시대, 비정규직이 많아진 시절 직장의 풍경이다. 죽고 싶다는 절규가 오늘도 ‘직장갑질119’를 두드린다.(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박점규의 갑돌이와 갑순이’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3주에 한 번 세상의 온갖 갑질을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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