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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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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죽음 상품화’

디지털 자아 팔고 디지털 프로필 유산 남기고…

AI의 새로운 응용 분야로 떠오른 죽음
등록 2018-01-16 17:18 수정 2020-05-03 04:28
사후 세계를 그린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네이버 무비

사후 세계를 그린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네이버 무비

2018년 새해 정보통신 기기의 동향을 가늠할 소비자가전전시회(CES)가 1월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회에서 중요한 열쇳말을 꼽으라면 아마 ‘인공지능’(AI)일 것이다. 음성인식형 비서, 상호작용(인터랙티브) 로봇, 스마트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이번에 선보인 각종 신제품들을 아우르는 범용 기술은 인공지능이다. 올해에도 인공지능은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확산될 전망이다.

새해 극장가에선 사후 세계를 그린 영화 이 흥행하고 있다. 이 영화의 인기 비결은 원작 웹툰에 대한 팬들의 높은 관심이었다. 주호민 작가의 원작 은 잦은 접대로 얻은 술병으로 39살에 죽은 직장인 김자홍이 서로 다른 죄를 묻는 7개의 저승 관문을 차례차례 통과하는 내용으로, 삶의 가치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

죽음은 인공지능의 흥미로운 응용 분야 가운데 하나다. 영국 일간지 은 1월9일 죽은 이를 ‘되살린’ 인공지능의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인공지능 스타트업 ‘레플리카’(Replika)의 대표 유지니아 쿠이다는 2015년 인생의 동반자 로만 마주렌코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마주렌코를 그리워하던 쿠이다는 지인들로부터 글, 전자우편, 소셜네트워크 메시지 등 그와 관련된 텍스트를 모아 이를 레플리카 기술자에게 맡겨 인공지능을 학습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인공지능 마주렌코’는 쿠이다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환생했다. 쿠이다는 과 한 인터뷰에서 “심지어 그가 살아 있을 때 하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이 앱과) 나누게 되었다”고 말했다. 마주렌코의 육신은 부서졌지만 의식 또는 의식의 그림자는 살아남은 이와 영원히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누군가는 인공지능 마주렌코를 맞춤형 채팅봇(사람과 채팅할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을 사이버 세계에 복사하는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면 이런 모조품이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미래를 그리는 TV 드라마 시리즈 에서 단골로 나오는 소재다. 최근 시즌 ‘블랙 뮤지엄’ 편에서 한 사형수는 자신이 형을 당한 뒤에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 나머지, 디지털 자아를 다른 이에게 판다. 형 집행 직전에 그의 의식을 디지털로 전송받은 구매인은 이를 홀로그램 감옥에 가둬 전시한 뒤 누구나 돈을 내면 전기고문을 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든다. 끝나지 않는 고통에 괴로워하는 그의 의식을 보는 가족의 심정은 어떨까?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의외로 멀지 않은 미래에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이다. ‘최고의 혁신가’로 칭송받는 일론 머스크도 이런 미래를 예측해, 지난해 인간의 뇌와 디지털 세계를 전기회로로 연결하는 스타트업 ‘뉴럴링크’를 만들었다.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영국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의 연구원 칼 외만에 의하면, 앞으로 30년간 세계 인구 30억 명이 죽고 그 대부분이 자신의 디지털 프로필을 유산으로 남길 것이라고 한다. 이 데이터의 대부분은 자동적으로 서비스 업체의 수중에 들어간다. 외만은 인터뷰에서 “데이터 저장 비용이 점차 만만치 않게 되면 (기업들은) 이 데이터로 돈벌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데이터를 후손이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유산으로 만들지, ‘디지털 장기 매매’ 상품으로 만들지는 인류 앞에 분명히 닥쳐올 질문이다.

권오성 미래팀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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