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웨스트월드의 안드로이드는 누구?

미국 시러큐스에서 직감한 사이버 세상의 미래
등록 2017-07-13 09:16 수정 2020-05-02 19:28
미국 드라마 <웨스트월드>의 한 장면. HBO 갈무리

미국 드라마 <웨스트월드>의 한 장면. HBO 갈무리

개인 신상의 변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현재 아내와 함께 미국 동부 도시 시러큐스에 와 있다. 늦깎이로 컴퓨터 기술과 저널리즘의 접목에 대해 공부하러 휴직계를 내고 만릿길을 건너왔다. 앞으로 ‘미래수첩’은 이곳에서 겪는 일상과 그와 접목한 미래의 단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이곳의 첫인상을 결정한 가장 큰 요소는 깨끗한 공기였다.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밤을 창문 열고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며 잠들기 원했던가! 서울 도심에서 그런 일은 사치다. 특히 최근 몇 년은 더욱 그랬다. 이곳 자연은 우리 부부에게 그런 호사를 선사해줬다.

그런데 둘째 요소가 이를 위협했다. 바로 안전이다. 내가 등록한 시러큐스대학의 국제학생예비교육(오리엔테이션)은 학사 일정부터 건강생활까지 학교생활에 필요한 온갖 규칙에 대한 꼼꼼한 설명으로 이루어진다. 그중 안전수칙 부분은 특별한 관심을 일깨웠다.

“밖에서 돌아왔는데 집에 낯선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뒤돌아 나가세요. 안전한 곳에서 911에 전화를 거십시오. 위층에서 자는데 아래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에는 베란다 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쳐서 안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좋겠죠.”

아내 혼자 집에 있고 나는 늦게까지 학교에 있는 날이 많을 것 같아 질문했다. “이 동네에 그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납니까?” 안전 담당 교직원이 답했다. “여러분에게 겁을 주려는 건 아닙니다. 거의 일어나지 않겠죠. 하지만 이것이 현명한 행동이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귀에 이어폰을 꼽고 땅만 보며 걷는 사람은 나쁜 사람에게 ‘덮쳐도 괜찮다’는 신호를 주는 겁니다. 스스로 조심할 것은 조심해야지요.” 그날 밤 우리 부부는 총을 마련하는 게 어떨지 진지한 얘기를 나눴다.

미국에서 시러큐스는 특별히 치안이 나쁜 도시는 아니다. 한 민간 부동산 사이트에 따르면, 오히려 미국 내에서 안전한 도시로 높은 순위에 오를 정도다. 문제가 있다면 미국 사회에 널리 퍼진 공통적 불안이다. 총기 소지도 한 요소이고, 경제적 양극화에 따라 불안한 가정의 증가나 커뮤니티 약화도 이유일 터이다. 관심을 끈 건, 그것의 대응 방식이었다. ‘스스로 지켜라!’ 물론 문제의 근원을 고치는 일은 워낙 어려워서 당장 유용한 팁을 주는 게 최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불안은 한국에서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광활하고 거친 서부’(wild wild west).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묘사할 때 자주 등장했던 은유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흥분과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공존하는 인터넷은 골드러시와 권총강도가 공존하던 개척시대 미국 서부를 닮았다. 미국에서 처음 개발된 인터넷이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할 때, 미국의 ‘거친 세상과 자기방어’ 개념이 그 구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어떤 정보든 자유롭게 유통되는 야생의 인터넷에서 자기 정보와 프라이버시 따위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규칙으로서 말이다.

미래에도 이런 메타포가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기술전문지 는 지난 4월 “인터넷은 더 이상 거친 서부가 아니며 ‘웨스트월드’(Westworld)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웨스트월드는 주인 입맛대로 쓰이고 버려지는 안드로이드로 가득 찬 가상의 서부 세계를 그린 공상과학(SF) 드라마의 제목이다. 이는 정부와 대기업의 통제가 점차 강해지는 사이버공간에서 우리가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경고다.

권오성 미래팀 기자 sage5th@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