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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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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조작도 가능하다

페이스북 이용자 심리 분석해 기업에 제공

기업 경쟁 속 정보인권 우려도
등록 2017-06-02 05:36 수정 2020-05-02 19:28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페이스북은 먼저 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승민이 페이스북을 했다면 분명 CD플레이어 광고를 만났을 것이다. 한겨레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페이스북은 먼저 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승민이 페이스북을 했다면 분명 CD플레이어 광고를 만났을 것이다. 한겨레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 무언가를 열심히 구매한 경험이 있다.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내 친구들 중에는 무리하게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농구화를 열심히 사 모으던 녀석들이 있었다. 스마트폰이 익숙한 세대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워크맨’(소니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재생기)이나 그 뒤를 이은 ‘CD플레이어’만 가지고 있어도 주위에서 부러움의 시선을 한번에 받았던 시절이다. 제품을 파는 기업에 충동적인 시기의 아이들을 자극하는 건 참으로 매력적인 전략이다. 이는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자본주의의 황금률일 터이다.

5월 초 페이스북이 이 금맥을 캐낼 비밀의 나침반을 마련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물론 방법은 전세계 20억 명에 가까운 사용자를 보유한 이 기업이 가진 최강의 자산인 사용자 데이터를 이용한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데이터로부터 유용한 상관관계를 캐내는 기술)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일간지 은 페이스북의 23쪽짜리 비밀 내부 문서를 입수해, 이 회사가 14살 청소년을 표적으로 하는 타깃마케팅 기법을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 충격적인 내용은 단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할 뿐 아니라, 해당 청소년이 정확히 어떤 심리 상태인지 파악해서 적확한 시점에 마케팅할 능력이 있다고 홍보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청소년이나 청년이 올린 글·그림·동영상 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이 아이가 ‘불안한지, 화났는지, 당황했는지, 불만족한지’ 등을 알 수 있다. 이 지친 젊은이가 ‘내 자신감을 올려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 광고가 마법처럼 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창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에서 숫기 없는 승민이 서연을 향한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면 그 순간, 광고창에 소니의 CD플레이어가 슬쩍 뜨는 식이다. 이런 기술을 활용한다면 승민이 가난한 형편임에도 이 멋진 기기를 사기 위해 애쓸 확률이 매우 올라갔을 것이다.

페이스북이 이용자 심리를 확인하고, 조작하고, 실험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한 학술지에 페이스북 데이터 과학자들이 포함된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는 이 회사가 사용자 데이터를 이용해 70만 명 가까운 사람에게 ‘심리실험’을 해왔음을 보여주었다. 알고리즘을 조작해 실험군의 사람들에게 대조군보다 더 ‘슬픈’ 콘텐츠를 보여주면 이들이 더 슬퍼하는지 확인한 것이다. 논문은 실제 인위적인 감정 조작이 SNS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드러난 내부 문서도 데이터를 쥐고 알고리즘을 조절하는 힘의 무서움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심리실험 논란의 연장선에 있다. 페이스북은 의 보도에 대해 “(우리) 작업에서 실수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페이스북 이용자는 이미 1800만 명에 달했고 이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스토리나 네이버 밴드 같은 ‘토종’ SNS가 활발한 경쟁을 펼치는 탓에 페이스북의 영향력이 다른 나라만큼 절대적이진 않다. 카카오나 네이버가 개인정보 빅데이터를 이용한 심리실험 따위를 시도했다는 증거는 드러난 바가 없다. 하지만 두려운 점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미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더 쉬운 개인정보 분석과 정교한 광고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남기 어렵다’는 논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반면 유엔 인권위원회나 유럽연합 등은 기업 경쟁 속 정보인권의 마멸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

권오성 미래팀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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