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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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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시민사회 지지받은 0~15살 어린이 입원진료비

국가 책임 법안 국회에서 보류 중, 2017년 봄 본격 논의 예정
등록 2016-12-29 09:15 수정 2020-05-02 19:28
연재  순서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프롤로그 -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1부 부모
① 엄마의 어깨
② 재활난민
③ 희망 긷는 법
④ 할머니의 마음

2부 아이
① 꿈 그리고 학교
② 형제자매
③ 아픈 아이의 학습권
3부 병동
① 무균실 24시간
② 두 개의 법안-마지막 회

*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영광이가 언어치료를 받으러 의료진과 치료실로 들어가고 있다. 아이가 아프면 가정이, 사회가 무너진다.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만큼은 국가가 책임지자는 여론은 이미 공고하다. 박승화 기자

영광이가 언어치료를 받으러 의료진과 치료실로 들어가고 있다. 아이가 아프면 가정이, 사회가 무너진다.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만큼은 국가가 책임지자는 여론은 이미 공고하다. 박승화 기자

제왕절개수술을 앞두고 엄마와 아빠는 수술실 앞에서 손을 붙들고 엉엉 울었다. “새벽에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사망할 거라고, 우리 앞에서 설명을 쫙 하는데….” 부산에 사는 영광(9)이 아빠 김창배씨는 2007년 아이가 태어난 날만 생각하면 눈빛이 아득해진다. 그날 아빠는 아이 화장비로 16만원을 준비해뒀다.

영광이는 청색증, 치사성이형성증, 폐형성부전증 등의 병명을 줄줄이 달고 태어났다. 이 가운데 치사성이형성증은 사산되거나 출생 직후 사망할 확률이 매우 높은 병이다. “살아 있는 사례조차 찾기 힘들다면서, 살아나더라도 결국 뇌가 위축돼 잘못될 거라고 확정하듯 말했어요.”

아이는 7살이 될 때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다행히 아이가 숨을 못 쉬어 파랗게 질릴 때마다 부모가 곁에 있어서 바로 응급실로 데리고 갈 수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

“아이가 아프면 그 아이만 아픈 것 같죠? 사실은 온 가족이 무너져요.” 급성 마비성 질환인 길랭바레증후군을 앓는 신애(12) 엄마 홍순금씨의 말처럼(제1110호 표지이야기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참조), 영광이네도 지난 10년 동안 가정 붕괴를 겪었다. 아빠는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는 하던 공부를 멈추고 아이를 살리는 데 모든 것을 쏟았다. 가정경제에 빨간불이 가장 먼저 켜졌다. 영광이 아빠는 낮에 아이를 데리고 헐레벌떡 병원에 갔다가 밤에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았다. 민간 복지재단, 모금방송 홈페이지 등에 글을 올렸다.

영광이 아빠뿐만 아니다. ‘아이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다’ 기획을 이어가면서 만난 부산의 박건우(12·카무라티엥겔만증후군) 엄마도, 청주의 공은준(11·신증후군) 아빠도 비슷한 상황에서 발을 굴렀다. 어떤 때는 간절해서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때는 내밀한 사생활을 만천하에 공개한다는 것이 치욕스러웠다. 아이가 아프면 가정은 절망의 굴레에 빠진다. 경제적 어려움, 다른 형제자매 돌봄의 곤란함, 훼손된 자존감 등 전방위적 문제에 직면한 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20대 국회에서 아픈 아이와 관련한 두 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먼저 2016년 6월28일 상정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국민건강보험 흑자분 17조원의 일부를 헐어 0~15살 어린이 입원진료비의 본인부담금을 해결하자는 내용이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정의당 윤소하 의원 등은 통계청 자료(2014년)에 근거해 건강보험 급여 진료비가 연간 1천만원 이상인 아동이 1만7242명이고, 1억원 이상인 경우는 1008명에 이른다며 보통의 가정경제로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강조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제안했다. 2016년 7월5일 어린이입원비 국가책임제 도입을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 개정법률안과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도 0~15살 어린이 입원비를 국가가 책임지자는 것인데, 윤소하 의원 등의 법안보다 국가 책임 범위가 조금 더 넓다. 설 의원 쪽은 입원 아동의 건강보험급여와 의료급여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국가가 보전하자고 주장한다. 입원진료비 외에 들어가는 비급여 항목의 환자 부담을 강제하는 아동복지법도 일부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도덕적 해이, 재정 문제 등 반대 의견 부딪혀

이 법안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민사회 움직임도 활발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정의당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2016년 9월부터 진행해왔다.

하지만 두 법안 모두 2016년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진 못했다. 먼저 발의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내부에서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11월2일 제346회 제2차 보건복지위원회 회의 현장의 한 대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김승기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 만 16세 미만의 아동이 입원하여 진료를 받는 경우에는 건보공단(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의료급여에서 부담하는 비용을 제외한 금액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는 안이 되겠습니다. 아동 성장과 발달을 위해서는 필요한 측면이 있겠습니다마는 이것은 입원진료비에 대해서 지원하는 것이고, 그래서 비입원진료와의 형평성 문제, 과한 입원진료 선호가 우려됩니다. 사실은 2006년에 만 6세 미만 아동에 대해서 입원진료 본인부담금 면제제도를 시행했는데 입원진료의 급격한 증가가 문제된 바가 있었습니다.
이강호 보건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 정부에서도 이런 규정이 신설되면 (중략) 도덕적 해이 현상이 있고 재정적 부담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송석준 새누리당 의원 이것은 절대 반대합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저는 찬성하는 입장이고요. 또 다른 법안이 있다고 하니까 병합해서 다시 한번 검토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성일종 새누리당 의원 있는 집안 아이들도 이 혜택 다 받게 돼요.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제가 그때 경험을 했거든요. 현장에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이것이 아이들을 위하는 것은 맞지만 방법이 좀…. 이런 방법이 부작용이 참 많았고요. 이것을 또다시 반복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상훈 새누리당 의원 건보 재정의 안정성을 먼저 진단하고 논의해야 할 사안인 것 같아서 다음에….

이에 윤소하 의원 쪽은 2017년 봄을 목표로 다시 분위기를 만들 예정이라고 전해왔다. 윤소하 의원실은 “반대 명분은 장애나 특정 희귀병 부분에서 보장성을 더 강화하는 게 낫지 않냐, (재정적으로) 더 시급한 것들이 있지 않느냐는 것인데 그런 논란을 종식시키려면 외곽의 분위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쟁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목소리를 꾸려나갈 것”이라고 계획을 전했다.

정의당 쪽은 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늦어질 경우 지자체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현실화 할 계획도 밝혔다. 12살 이하 어린이 예방접종 국가 책임, 무상급식 등 전국 단위로 확산된 어린이 복지 이슈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실험해볼 수 있는 지역부터 시행돼 범위를 넓혀왔기 때문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설훈 의원 쪽은 윤소하 의원 발의안과 함께 2017년 정기국회 때 보건복지위원들을 설득할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린이 병원비 국가 책임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밑그림도 마련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라는 아이들

다시 영광이의 얘기로 돌아가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포기하려 했던 아이는 늦게나마 벽을 잡고 일어서고 더디게 입을 뗀 말은 3살 수준까지 도달했다. 여전히 숨이 버거워 코줄을 달고, 또래보다 키는 한참 작지만 9살 영광이는 반짝이는 눈을 가진, 웃음 많은 아이로 자라고 있다.

조금 작고, 느리고, 약한 아이들이 세상에 있다. 아픈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발을 구르는 가족들이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는 박수봉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 복지사업팀장은 “결국 새로운 나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뜻으로 촛불을 들지 않았나. 아이들 생명만큼은 우리 사회가 함께 지키자는 목소리가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국가만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후원 계좌: 농협중앙회 10573964784416 (예금주 어린이재단)
후원 문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1588-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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