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아름다운 섬이다.
대만은 포르모사(Formosa)라고도 불린다. 1590년 포르투갈인이 대만에 닻을 내렸을 때 붙인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이다. 언젠가 문화학자 엄기호씨에게 “지구에서 남한과 가장 비슷한 나라는 북조선이 아니라 타이완”이라고 떠들자 그는 “동고서저 지형도 같잖아”라고 답했다. 섬의 동쪽엔 깊고 푸른 산맥이 뻗었고, 서해안을 따라 평야가 펼쳐진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섬에서 온 아름다운 여성이 2016년 1월에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포르모사’ 출신 아이돌의 봉변</font></font>
“자랑스런 중국인” 양안관계 존중” 같은 16살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초췌한 얼굴로 되뇌는 영상을 보면서 ‘국가에 대한 맹세 강요’가 겹쳤다. 소속사 사장님이 시켜서 하는, 어쩌지 못하는 중국에 대한 맹세가 떠올랐다. 동영상에 맥락을 더해 “하나의 중국에 대한 충성을 다한다”로 번역하면 과할까?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는 단지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참혹한 봉변을 당했다.
“자기네 나라 국기를 흔들었는데 뭐가 문제야?” 상식을 가진 이들의 항변이 상식을 벗어난 논리에 부딪혀 당혹하는 경우가 적잖다. 1970년대 유엔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정부로 인정한 이래,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대만은 국제정치에서 대부분 나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2300만 명 인구가 정부를 구성하고 선거를 하고 일상을 사니 대만이 나라가 아닌 것도 아니다.
어쨌든 대만은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 영토의 일부인 타이완섬을 특정한 세력이 실효 지배하는(독도에 대해 일본은 ‘한국이 실효 지배하는’이라는 표현을 쓴다) 정치적 집합체다. 한편 쯔위를 통해 우리는 배웠다. 아시아가 긴밀히 연결돼 있을 뿐 아니라 뜻밖의 얼굴로 우리의 일상에 침범해 들어온다는 것을 말이다.
JYP 수장 박진영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황이 만든 문제다. 쯔위 사태에 대한 숱한 기사가 있으니, 자초지종을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 요컨대, 쯔위는 MBC 제작진이 주는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받았다. 제작진은 몰랐을 것이다. 이것이 대륙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심지어 논란의 씨앗이 되는 일인 줄을.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고 인터넷에만 올랐던 영상을 ‘대만 출신 중국 가수’ 황안이 발견해 문제 삼았다. 황안은 나중에 자신의 의도를 “언론이 왜곡했다”고 주장했지만, 어쨌든 중국 본토 대중은 이것을 ‘독립분자’ 고발로 보았다.
중국의 분노는 JYP의 ‘사업 문제’로 번졌다. 트와이스의 일정은 물론, JYP 소속 가수인 닉쿤, 찬성의 중국 일정도 취소됐다. 이에 화들짝 놀란 박진영씨가, 번역하면 “중국 손님들 죄송합니다”쯤 되는 사과를 했다. 한류 시장에서 중국은 가장 중요한, 도저히 버리지 못하는 시장이 됐으니, 그에겐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13억 중국 시장과 2300만 대만 시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을 그는 사업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만인’ 정체성의 급부상</font></font>그래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쯔위가 직접 유튜브 등에 동영상을 올려 사과했다. 사장님은 먼저 사과에서 “16살 소녀 쯔위에겐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다”고 했지만, 정작 사과엔 “하나의 중국” 등 매우 정치적 내용이 담겼다. JYP가 사태 수습에 급급해 균형을 잃은 것이다.
하필 이날은 대만 총통 선거일 직전이었다. 1월23일 총통 선거가 끝나고, 쯔위 논란 때문에 몇백만 표가 대만 독립파인 민진당에 쏠렸다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어디에도 쯔위는 없었다. 한국 기획사가 사과하는 과정에도, 중국 네티즌의 분노에도, 대만 정치인의 언급에도, 쯔위는 없었다. 오직 나라 없는 설움만 넘쳤다.
“타이완 이즈 타이완.”(Taiwan Is Taiwan)
몇 해 전 가을에 만난 대만 친구는 한국의 가을 날씨가 “쌀쌀하다”(Chilly)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중저가 의류 브랜드 하나를 콕 찍어 옷을 사고 싶다는 그를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 영플라자로 데려갔다. 가다가 ‘무려’ 정치적 견해를 물었다. 그는 문득 참았던 울분을 삼키듯 “남한은 남한이고 북한은 북한이지?” “중국은 중국이고 대만은 대만이야!”라고 목청을 높였다.
2015년 대만 총통 선거를 전후해 한국에 보도된 사진에 그의 말과 같은 펼침막이 자주 보였다. ‘대만은 대만’(Taiwan Is Taiwan)이라고 적힌, 펼침막은 독립파 입장에 가까운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 후보의 압승을 대변한다.
1월21일 방송된 한겨레 팟캐스트 에 출연한 장영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만연구센터 연구원은 말했다. “1992년부터 해마다 국립 정치대학이 1만 명 규모의 조사를 하는데, 최근 (조사 결과) ‘대만인’(Only Taiwanese)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60%, ‘대만인이면서 중국인’이 30%, ‘중국인’(Only Chinese)이 3% 정도”라며 “2007년만 해도 40%가 ‘대만인이면서 중국 사람’으로 답해서 다수였다는데 급격히 변했다”고 전했다.
상전벽해, 10여 년 사이 ‘대만인’ 정체성이 급부상했다. 인지상정, 서울에서 만났던 대만 친구는 대만에서 태어나 대만에서 교육받고 대만에서 일한다. 그에게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하나의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학교에서 민난어를 쓰면 선생님한테 매를 맞았어.”
역시 몇 해 전 만난 대만 친구에게 “너는 집에서 무슨 말을 써?”라고 물었다. 1949년 국민당 정부가 본토에서 중국공산당에 쫓겨나 대만으로 오기 전, 원래 대만에 살았던 이들을 본성인(本省人)이라고 한다. 이전에 대만에 살았던 폴리네시아계 주민은 ‘선주민’이라고 부른다.
대만은 디아스포라(유민)의 섬이다. 청나라 시대부터 기근, 전란, 박해 등을 피해 중국 본토에서 오랫동안 많이 이들이 이주했다. 이들이 본성인이다. 지금은 인구의 83%가 대만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1949년 국민당 정부와 함께 대만으로 이주한 사람은 200만 명에 이른다. 국민당 정부와 함께 이주한 이들은 외성인(外省人)이다. 거칠게 말하면 본성인은 민진당, 외성인은 국민당 지지 기반이 된다. 하여튼, 민난어를 써서 맞았다던 본성인 친구는 “할머니랑 얘기할 때는 대만 방언을 쓰지”라고 답했다. 그도 자신을 대만인이라고 생각했다.
대만을 점령한 국민당 정부는 표준 중국어(만다린)를 강요했다.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만 ‘국정교과서’는 온통 대륙에 대한 얘기로 채워졌다. 국민당 정부의 여전히 들끓는 본토 수복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지금도 타이베이의 주요 도로에는 ‘충징루’(重京路), ‘난징루’(南京路) 같은 이름이 붙어 있다. 지리 교과서도 본토 얘기로 채워져 어떤 한국 친구는 “대만 애들은 베이징에 내리면 어디로 가야 할지 대충 안대”라고 기막혀했다.
2000년대 천수이볜 민진당 정부 이후로는 대만의 역사와 문학과 지리를 다룬 부분이 늘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생이었던 대만 친구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방언을 쓰면 맞는” 곳이었다. 타이베이에서 호기심에 들어가본 초등학교는 교문 분위기, 건물 배치, 게시물 풍경까지 예전 한국의 ‘국민학교’과 흡사했다. 교문을 들어서자 ‘충’ ‘효’라는 글씨부터 보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국과 대만의 닮은 꼴 현대사</font></font>유교적 전통, 근대화 과정, 민주화 경로까지 대만과 한국은 닮았다. 중국과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유교 전통과 가파른 단절을 경험했다. 그러나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 대만과 한국에선 유교 전통이 상대적으로 극심한 단절을 겪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과 대만은 유교적 가부장제, 혹은 가족주의 전통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독재정권을 끝낸 시기도 1980년대 후반으로 같다. 비슷한 시기에 정권 교체도 경험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뒤인 2000년 야당 민진당이 오랜 집권당 국민당을 총통 선거에서 이겼다. 보수 정권의 교체 시기도 같았다. 2007년 말 한국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2008년 초 대만에서 마잉주 국민당 후보가 총통 선거에서 승리했다. 한류는 심지어 정치에도 있었다. 마잉주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을 벤치마킹한 ‘633(성장률 6%·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실업률 3% 이하)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이렇게 두 나라는 산업화외 민주화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겪었다.
한국을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21세기 아시아에 있었다. 세기가 바뀌어도 대만인들은 한국 하면 ‘1980년대 거리에서 화염병 던지는 청년들’을 기억했다. 그러나 2010년을 넘어서며 동아시아 사회운동 지형은 변하기 시작했다. 대만과 홍콩의 청년들이 급진화됐다.
2014년 대만의 국회인 입법원을 청년들이 점거한 ‘해바라기운동’은 떠오르는 사회운동의 상징이었다. 마잉주 정부는 당시 중국과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졸속 입법을 강행했다. 이에 반발한 대학생들이 입법원을 24일 동안 점거하고 입법 철회 등을 요구했다. 2014년 3월30일, 수십만 민중이 타이베이 중심에서 “민주 수호, 서비스무역 철회” 등을 외쳤다. 주최 쪽 추산으로 50만 명이 참석한 집회였다. 다음해 홍콩에서 ‘우산운동’이 벌어졌다. 그렇게 대만, 홍콩의 청년은 아시아 사회운동의 주목받는 집단이 됐다.
1% 경제성장률, 마잉주 국민당 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인 2015년에 받아든 성적표다. ‘633’을 내세웠던 마잉주 정권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착하며 초기에 6~7%에 이르는 경제성장률을 올렸다. 하지만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용적 양극화는 물론 지표마저 급격히 추락했다.
과 전자우편 인터뷰를 한 대만 청년주거운동단체 아워스(Ours)의 잔쥔제(詹竣傑) 활동가는 “1998년 이후 타이베이 집값은 3배로 뛰었지만, 월급은 제자리”라고 전했다(상자 기사 참조). 동아시아에서 청년 빈곤은 자주 주거 문제로 귀결된다. 홍콩 우산혁명의 중심에도 주거 불안이 있다. 최근 대만 등 동아시아의 청년 주거 문제를 취재해 르포로 담은 책 는 극심한 대만의 주거 문제를 이렇게 전한다.
“2015년 타이베이의 소득 대비 집값 지수, 즉 PIR(Price to Income Ratio)는 16에 다다랐다. 소득 중간층(소득순으로 5구간을 나누었을 때 3분위 구간의 연평균 소득)이 중간대 주택(집값을 5구간으로 나누었을 때 3분위 구간의 평균값)을 사려면. 16년치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유엔 인권정주위원회가 권고하는 적정 PIR는 3.0~5.0이다(2014년 기준 서울의 PIR는 8.4, 대한민국은 5.2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쯔위 사과는 대만인들의 현재 처지”</font></font>대만의 청년들은 ‘22K 세대’라고 불린다. 한국의 88만원 세대처럼 월급 2만2천(22K) 대만달러(약 73만원)를 받고 살아가는 세대란 것이다. 이렇게 본성인, 외성인 사이의 정체성 대립에 양극화 문제가 더해졌다. 양극화는 세대별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대만인 정체성이 강한 젊은 층은 더욱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됐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size="4"><i><font color="#991900">본성인, 외성인 사이의 정체성 대립에 양극화 문제가 더해졌다. 양극화는 세대별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나타났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중국과 경제적 밀착은 더해지는데, 중국인과 대만인을 구별짓는 양상은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 없는 중국에 대비되는 민주주의 대만, 반인권의 중국과 대립하는 인권의 대만은 2000년대 민진당 천수이볜 정권부터 강조돼왔다. 문화적·정치적으로 우월한 대만이 거대한 중국의 힘에 밀릴 뿐 아니라, 정치적 자유마저 위협받는다고 대만인들은 느낀다. 결국 중국의 경제적 침공은 신자유주의와 맞물려 양극화를 심화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대만인의 자부심은 무너지고, 본토와 경제관계에서 역전당한 아픔이 대만의 정권 교체에 반영돼 있다.
를 발간한 청년 언론 ‘미스핏츠’의 박진영씨는 “원래는 한국과 다른 상황을 알아보러 갔지만 막상 가보니 우리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며 “오히려 청년 주거 문제가 경제 개발에 성공한 국가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깨달음에 그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쯔위가 겪었던 논란은 구조화된 문제다. 한류 시장의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는 중국의 애국주의는 한류 기업이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이 됐다. 동북아 국제관계 속에서 홍길동이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듯, 한류 아이돌은 대만을 조국이라 부르지 못하고 그들의 국기를 들기도 어렵다. 그래서 아워스(Ours) 잔쥔제 활동가는 “쯔위의 사과는 대만 사람이 처한 진정한 상황을 보여준다”며 “‘우리는 대만 출신’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더욱 독립적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인이 지금껏 겪어온 일의 일부란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는 지금처럼 뜻밖의 얼굴로 다시 다가올 것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올해 29살로 ‘해바라기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그는 “나의 의견이 청년들을 대표하진 않는다”고 했지만, 질문에 꼼꼼한 답변을 보내왔다. 해바라기운동에서 출발한 정당인 ‘시대역량’은 청년들을 대표하며 민진당보다 강경한 대만 독립을 주장한다. 대만 역사상 최초로 이번 대만 선거에서 ‘대만 독립파’가 의회의 과반을 차지했다. 113석 의석 중에 민진당이 68석을 차지한 것은 물론, 시대역량이 5석을 차지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이 패배하고 시대역량이 5석을 차지한 결과를 어떻게 보나.
선거 결과는 국민당 정권의 무능에 대한 대만인의 분노를 의심 없이 보여준다. 내 견해로, 대만에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당과 민진당은 오직 ‘중국과 관계’에서만 입장 차이를 보인다. 국민당이 중국에 더 가깝고, 민진당이 반대인데, 스펙트럼상의 차이일 뿐이다. 시대역량은 2013년 군폭력 사건 반대운동, 2014년 해바라기운동에서 시작됐다. 이런 운동의 결과로 그들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대만은 유교적 전통이 강하고, 청년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대만의 청년이 이룬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맞다. 내가 자라는 동안 기성세대와 교과서는 젊은이들에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라”고 말했다. 사회·정치적 문제는 항상 ‘나쁜 것’으로 취급됐다. 우리는 주거·노동·환경·인권 같은 수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1987년 민주헌법 개정 이후에도 여전히 시민사회는 취약했다. 그러나 양극화가 점점 극심해지고 기성세대가 경제적 이득을 독점하면서 청년들이 정말 심하게 희망이 없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의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사회정책이 재분배와 사회정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엇이 청년들을 움직이게 했나.
청년 세대의 초봉은 1998년부터 지금까지 2만2천대만달러이지만 은퇴한 공무원은 7만~8만대만달러의 연금을 받는다. 그들은 ‘살찐 고양이’라고 불린다. 우리는 희망 없음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청년 스스로 이런 사회 체계를 바꿔야 했다.
부모 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자신을 ‘대만계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들었다. 두 세대 간 정체성 인식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부모 세대에서는 ‘우리는 대만인’ ‘우리는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경합했다. ‘본토에서 온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본토에서 이주한 국민당 정부와 관련 있다. 그러나 젊은 층은 우리 자신을 대만인으로 생각한다. 대만은 고유의 국기와 여권과 화폐를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서 있는 땅이 대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는 (중국과 달리) 민주주의 국가다.
부모 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자신을 ‘대만계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들었다. 두 세대 간 정체성 인식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부모 세대에서는 ‘우리는 대만인’ ‘우리는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경합했다. ‘본토에서 온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본토에서 이주한 국민당 정부와 관련 있다. 그러나 젊은 층은 우리 자신을 대만인으로 생각한다. 대만은 고유의 국기와 여권과 화폐를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서 있는 땅이 대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는 (중국과 달리) 민주주의 국가다.
쯔위의 사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는 ‘그녀야말로 이번 선거의 가장 훌륭한 조직원’이라고 농담한다. 선거 직전 사과 동영상이 나왔고, 그녀는 분명 사과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사과 영상을 보는 대만인은 국민당 정권의 무능에 화가 났다. 쯔위의 사과는 대만 사람이 처한 진정한 상황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대만을 인식하는 정도가 딱 거기에 멈춰 있다는 사실을 다시 정면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쯔위의 동영상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민진당에 투표했음은 비교적 분명하다.
차이잉원 정부에 무엇을 기대하나.
차이잉원이 약속한 공약을 완수하길 희망한다. 나는 우리가 과거보다 중국에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는 그것을 약속했다. 차이잉원이 국민당 후보보다 정치적 의지가 강하다고 본다. 그래서 전보다 더 관심을 가지려 한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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