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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의 태도’를 가르치다

기업 교육기관은 불안정 노동자 양산하는 센터 되고 공적 교육 프로그램은 내용·시스템 부실… 구직과 무관한 강의 다수, 교육기관의 지역 편중 심각, 과정 수료 후 정규직 채용은 꿈
등록 2015-11-05 09:28 수정 2020-05-02 19:28



기획연재_고졸지옥


③ 고졸 직업교육의 수렁
▶지난 연재 보러가기(아래)
① 고졸 공시 바람의 이면
②‘고졸’이라는 낙인


‘잿빛 청춘’의 길을 연속 보도하고 있는 과 현장 취재를 맡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터넷 매체)가 협업해 외면받는 ‘고졸들의 노동 실태’를 연재한다. 지난 5월 중순부터 기자 10명(김다솜·문중현·박고은·박성희·박세라·배상철·오소영·이성훈·전광준·홍연)은 고졸 노동자들의 삶을 기획·취재했다. 주간 교수(제정임 교수)의 조언을 받아 두 달간의 취재와 집필을 거쳐 7월 말 초고를 만들었다. 취재를 보충하고 기사를 수정하며 8월 말 2차 원고를 완성했고 이문영 기자와 협업하며 기사 보강에 다시 한 달을 썼다. 세 번째 기사에선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를 맴도는 고졸 노동자들을 더 나은 고용 환경으로 이끌지 못하는 교육 현실을 전한다. _편집자
쇠를 다루는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쇠를 다루는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김준수(26·가명)씨는 대학을 자퇴했다.

건축학을 전공했으나 적성과 맞지 않았다. 기술을 배워 빨리 취직하고 싶었다. 대학교는 2학년 1학기까지만 다녔다. 그는 배를 만드는 용접공이 됐다. 한 대기업 조선소의 기술교육원에 지원했다. 이 조선소에선 용접과 선체 조립 등의 기술을 최장 2개월까지 가르쳤다. 기술교육원 홈페이지는 교육 성적 우수자에게 ‘생산직 직영 선발’이나 ‘협력사 취업 알선’ 등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공지했다. 교육비용 및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교육수당(월 20만원)을 지급한다고도 했다.

‘생산직 직영 선발’ 꿈꾸며 지원했으나

본사 정직원으로 채용될 수 있다는 안내문구에 김준수씨는 희망을 가졌다. 그의 교육원 동기들도 그와 같은 꿈을 꾸며 기술학교에 지원했다. 그는 2013년 교육원 과정을 마쳤다. 수료와 함께 그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됐다. 2년간 시간당 4860원의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했다.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하면서도 ‘직영회사 정직원’을 기대하며 버텼다. 직영 정규직원이 되려면 협력사 대표에게 추천서를 받아야 했다. 협력사 대표는 그를 추천하지 않았다. 그의 동기들 중 누구도 추천서를 손에 쥐지 못했다.

“2년 동안 아파도 결근은 물론 조퇴도 하지 않았어요. 결근율이 낮아야 선발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소용없었어요. 지역 출신이거나 직영 회사에 인맥이 있어야 가능했어요.”

하청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그의 용접 기술은 나아지지 않았다. 교육원에서 배운 기능과 조선소 현장 실무의 괴리가 크다며 회사는 제대로 된 일을 맡기지 않았다. 현장에서 기술자로 자리잡고 싶었지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선배 용접공의 작업을 보조하는 일뿐이었다.

기업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는 ‘대중소상생형 공동훈련센터’는 이 조선소를 포함해 모두 46곳(2015년 5월 말 기준)이다. 이 조선소엔 올해 2억3천여만원(인건비 포함 운영비)의 지원금이 배정됐다. 고용노동부는 훈련센터 운영을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위탁하고 있으며, 회계감사와 지도점검을 통해 지원금의 적정 사용 여부를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규직 채용 여부는 기업의 재량에 맡길 뿐 의무 사항이 아니다. 수료생 대부분이 해당 기업의 정규직이 아닌 하청업체에 고용되고 있지만 정부가 제재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인적자원개발과 관계자는 “기업에 정규직 채용을 권고하기란 쉽지 않다. 국가가 강제한다고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김준수씨는 이제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지 않는다.

돈은 지원해도 고용의 질은 강제 못해
‘2015 고졸성공취업대박람회’가 열린 9월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금융권 채용 부스를 찾아 상담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2015 고졸성공취업대박람회’가 열린 9월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금융권 채용 부스를 찾아 상담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는 고졸 노동자들이 전문 인력으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다.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단순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고, 미숙련 노동을 맴도는 사이 고용의 질은 나아질 기회를 얻지 못한다. 정부가 운영비를 지원하는 기업 교육기관은 불안정 노동자를 양산하는 센터가 되고, 고졸 노동자들이 기댈 수 있는 공적 교육 프로그램은 제한돼 있다.

#역할극① 인사담당자 (입사지원서를 보며) 학력이 고졸이시네요? 구직자 (얼굴이 굳은 상태로) 네. 그런데 무슨 문제 있나요? 학벌은 상관없다고 하던데.인사담당자 장기간 실직 상태로 계셨는데, 취업을 못한 이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구직자 요즘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경제도 어렵고, 계속 계약직만 늘어나고, 조건이 별로 맞지 않더라고요. (※고용노동부 취업희망 프로그램 중 ‘인사담당자의 질문에 비효과적으로 답변하는 상황’)

#역할극② 인사담당자 학력이 고졸이시네요? 구직자 (미소를 지으며) 네, 그렇습니다. 지원 자격에 학력 무관이라 돼 있어서, 용기 내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인사담당자 취업을 못한 이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구직자 (미소를 잃지 않으며) 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업무에 필요한 기술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취업희망프로그램 중 ‘효과적 의사소통의 예’)

역할극을 하며 박인상(29·가명)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고졸의 태도’를 가르치는 역할극에서 그는 모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해 5월 그는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취업성공 패키지’의 첫 단계 중 ‘취업희망프로그램’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개인별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집중 상담’이라고 소개받았지만 어떤 특성에 집중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강사는 “긍정적 태도가 중요하다”거나 “다른 수강생의 좋은 성격을 배우라”는 등 뻔한 이야기만 했다. 잡지에서 잘라낸 사진과 단어를 종이에 붙여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의 별명을 짓게 하거나, 인생 곡선 그리기도 시켰다. 그런 교육이 구직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그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초등학생 때 이후 해보지 않았던 빙고 게임도 했다.

“당신은 열등감이 많은 편입니까?”

“윗사람이나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는 면이 있습니까?”

질문을 듣다보면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박인상씨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또래보다 일찍 병역을 마친 뒤 음식점에서 서빙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초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일하고 120만원을 받았다. 조선소, 휴대전화 판매직, 주유소 등을 거치다보니 어느덧 20대가 다 지나갔다. 더 늦기 전에 안정된 직업을 갖고 싶었지만 무력감만 커졌다. 공무원인 누나가 알려준 취업성공 패키지 프로그램은 그에겐 지푸라기와도 같았다.

“학력이 고졸이시네요?”

‘집중 프로그램’을 마친 그는 수료증을 받았다. 수료증은 그가 고용촉진지원 대상자가 됐으며, 취업이 되면 고용주에게 1년 동안 600만~900만원의 임금 지원금이 제공된다는 의미였다. 프로그램을 수료한 사람은 6개월의 직업 실무 훈련이나 취업 알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의 거주지인 광주광역시에서 수강할 수 있는 교육과정은 워드프로세서와 캐드(CAD) 등의 컴퓨터 실무나 바리스타, 미용 등이었다. 그가 수강을 원하는 타일 관련 강좌는 서울이나 경기도에 가야 배울 수 있었다. ‘원정 취업 준비’까지 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그는 취업 알선을 받는 쪽을 택했다.

그는 매주 1차례, 20분씩, 총 3주간 취업 알선 위탁기관을 방문했다. 전문상담사가 구직 활동을 도왔다. 워크넷을 통해 정부 지원을 받는 회사를 추천하고 함께 이력서를 써보는 식이었다. 3주가 지나자 기관 방문 없이 상담사의 전화로 구직 관리가 이어졌다. 그는 6개월 동안 5~6개 회사의 이력서를 썼고 두 군데에서 면접 볼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취업은 하지 못했다.

“추천받은 회사들 대부분이 지역 정보지만 봐도 찾을 수 있는 생산직이거나, 교육 전에 일하던 직장과 노동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그동안 받은 교육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자괴감만 더 커졌다.” 현재 그는 다시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다.

취업성공 패키지는 훈련 지원 기간이 6개월로 제한된다. 6개월 동안은 생활비 격인 훈련 참여 수당이 하루 1만8천원, 월 최고 28만4천원이 지원된다. 간호조무사처럼 훈련 기간이 6개월이 넘는 경우 7개월째부터 훈련 참여 수당이 끊긴다. 직업훈련 기간 동안에는 원칙적으로 다른 수익 활동을 할 수 없다. 서울 관악 고용센터에서 취업성공 패키지로 6주째 보석 세공 교육을 받고 있는 이미선(21·가명)씨는 “6개월이 넘으면 훈련 수당이 끊겨 부담스럽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수당 수급 목적의 ‘직업훈련 유랑자’가 나올 수 있어 최초 훈련 개시일 기준으로 6개월까지만 지급한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고 있다.

‘원정 직업훈련’ 떠미는 교육

기술 교육 기회의 ‘지역 편중’도 심각하다. 직업능력지식포털(HRD-Net)을 검색해보면, 박인상씨가 원했던 타일 교육의 경우 2015년 10월 현재 정부보조금을 받아 강의하는 학원이 전국에 모두 16곳이다. 그중 12군데가 수도권에 있다. 비수도권엔 부산 2곳과 울산, 충남에 1곳씩 있을 뿐이다. 다른 지역(광주·전남·전북·대전·충북·경남·경북·강원)엔 아예 수강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없다. 한국고용정보원 관계자는 “서울 등 수도권에 (해당) 학원이 집중돼 있는 것은 그쪽에 수요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정적 수입이 없는 구직자들이 먼 지역으로 원정 직업훈련을 받으러 가는 경우 월 30만원 정도의 훈련 참여 지원 수당으로 주거비, 교통비, 생활비 등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고졸 노동자들이 발 디딜 땅은 멀고 좁고 거칠다.

외국의  직업교육


교육·실습  병행하며  1400~2800시간


일본은 20~34살 청년 실업자를 대상으로 ‘이원화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의 이원화 직업교육은 주중 3일은 전문교육센터에서 이론 교육을, 나머지 2일은 기업 작업장에서 실무훈련을 받는 제도다. 이원화 직업훈련은 2004년부터 시작됐으며 ‘1~2년 동안 1400시간’ 혹은 ‘2~3년 동안 2800시간’ 과정으로 나눠져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대기업은 훈련 경비의 3분의 1을, 중소기업은 2분의 1을 지원받는다. 훈련 참가자들에게는 직업훈련 경비와 급여가 별도로 지원된다.
2011년 이후 영국이 민관 협력으로 운영하고 있는 ‘워크 프로그램’은 청년 실업자 등을 대상으로 2년 동안 상담과 직업훈련, 취업, 사후관리 등의 서비스를 지원한다. 훈련기관이 참여자의 고용을 26주 동안 유지하면 정부가 1200파운드(약 220만원)의 취업 성공금을 훈련기관에 제공하기도 한다. 2년 프로그램을 마친 뒤에도 구직자가 취업에 실패하면 전국에 1500여 개가 있는 국영 직업알선기관인 잡센터플러스에서 고용 연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문중현·박성희·박세라·이성훈·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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