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991900">① 고졸 공시 바람의 이면</font>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기자들이 취재했다. 지난 5월 중순 의 ‘청년팀’ 기자 10명(김다솜·문중현·박고은·박성희·박세라·배상철·오소영·이성훈·전광준·홍연)은 청년 세대의 삶을 들여다보는 취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들은 고졸 노동자들의 삶에 주목했다.
그들은 취재원들과 만나 사연을 듣고, 현황을 파악하며, 사례를 모으고, 취재 계획을 고쳐잡았다. 주간 교수(제정임 교수)의 조언을 받아 기획안을 발전시킨 뒤 5개의 주제·영역을 확정해 5월 말 취재를 시작했다. 두 달간의 취재와 집필을 거쳐 7월 말 초고를 만들었다. 보충 취재를 통해 8월 말 수정 원고를 완성했다. 의 이문영 기자와 협업하며 기사 보강에 다시 한 달을 썼다. 기획 4개월 만에 첫 기사를 내보낸다. 잿빛의 두께에 짓눌리지 않으려 ‘고졸 공시’에 매달리는 청춘들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연다. _편집자</font>
“60점 이상 맞힌 사람?”
교사의 물음에 학생 7명이 손을 들었다. 지난 9월17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공업계열 특성화고등학교 건설정보 3A반에서 물리 문제풀이가 한창이었다. 이날 수업은 내신을 위한 것도 수능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기술 토목직을 지원하는 3학년 학생 대상의 9급 공무원 시험 대비가 목적이었다.
교사는 문제를 풀 때마다 답을 틀린 학생들을 확인했다. 오답률이 높은 문제를 골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학생들은 칠판을 보며 열심히 받아적었다. 교실 뒤쪽에 있던 학생은 앞자리로 옮겨 앉으며 수업에 집중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2015년 고교 졸업자 11만여 명 ‘미취업 상태’</font></font>이 학교의 공무원 시험 준비반은 2012년 방과 후 수업 형태로 개설됐다. 고졸자 대상의 ‘공시’ 제도가 도입된 첫해였다. 처음엔 역학·측량·물리 등 5과목만 운영했다. 건설정보과와 목조건축과를 합쳐 25명의 학생이 수강했다. 올해 들어 학교는 강좌 수를 11개로 확대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졸업반 학생도 35명으로 늘어났다. 9급 토목직에 응시할 예정인 김명진(18·가명)군은 “방과 후 수업으로 시험 준비를 할 수 있어 별도의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자격증을 따서 취업해야지 생각했는데 2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공무원으로 진로를 틀었다”고도 했다.
이 학교는 지난해 서울시 9급 기술직 공무원 채용시험에 26명을 합격시켰다. 서울시 특성화고 중 최다 인원이다. 학교의 위상도 달라졌다. “건설정보과 학생들의 합격률이 특히 높아 이 학과에 지망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중학교에서 성적이 높은 학생도 많이 지원해 입학 경쟁도 치열하다.”(진로상담부장 교사)
인문계고가 대입 수능 준비로 치달을 때 특성화고에선 공무원 시험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2015년 전국 2344개 고등학교에서 61만5462명(교육기본통계)이 졸업했다. 43만5650명(70.8%)은 대학생이 됐고, 6만1370명(9.9%)은 노동자가 됐다. 972명(0.2%)이 군에 입대했다. 11만7470명(19.1%)은 무직자나 취업·입대 미상자로 분류됐다(표1 참조).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적게는 15.4%(2010년 9만9861명)에서 많게는 20.9%(2011년 13만5510명)의 고졸자들이 취업을 못했거나 취업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표2 참조). 취업자의 2배 규모(2013년 취업 5만5443명에 무직·미상 12만7891명, 2014년 취업 6만1268명에 무직·미상 12만1695명)가 노동시장으로 편입하지 못했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size="4"><i><font color="#991900">고졸 취업자의 2배 규모가 노동시장으로 편입하지 못했다. 대학생이 되지 못한 졸업생 3분의 1은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를 떠돌고, 3분의 2는 노동자도 되지 못한 채 한국 사회의 밑변으로 가라앉고 있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대학생이 되지 못한 졸업생 3분의 1은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를 떠돌고, 3분의 2는 노동자도 되지 못한 채 한국 사회의 밑변으로 가라앉고 있다. 그들의 세계는 대졸 미취업자의 세계와도 다르다. 고등학교 교문을 나선 그들에게 스물의 나이는 그 냉혹한 세계와 함께 왔다.
‘고졸 공시’ 바람은 ‘고졸자들의 지옥’에서 발원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과 학력 차별의 ‘예고된 길’을 우회하려는 고졸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과 공기업 공채에 몰리고 있다.
길은 좁다. 공기업의 고졸 공채도 최근 모집 인원이 줄어 고졸자가 통과할 수 있는 길은 ‘병목’이 되고 있다. 2012년 ‘288개’ 공공기관에서 ‘2274명’을 뽑았던 고졸 공채의 두 수치가 박근혜 정부 출범 뒤엔 등을 돌려 반대로 향하고 있다. 채용 기관은 증가(2013년 295곳→2014년 302곳)한 반면 채용 인원은 거꾸로 감소(2013년 2118명→2014년 1849명)했다. “과거엔 공기업이 직접 고졸자를 채용하도록 했던 고용 정책이 현 정부 들어 훈련생(청년인턴제와 일·학습병행제 등) 신분으로 뽑아 업무능력을 평가한 뒤 채용하는 방식으로 바뀐 탓”이라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오호영 선임연구위원은 설명했다.
고졸자들은 대졸자 이상으로 공무원을 열망한다. 학력 차별과 불안정 노동을 전전하는 과정에서 공무원이 접근 가능한 최고의 직업 중 하나라는 생각을 체득하면서다. 특성화고 학생 강윤성(18·가명)양도 차별이 덜할 것이란 믿음으로 9급 우정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적은 월급에 과도한 노동으로 혹사당하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2~3년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절실하다.”
절실한 사람들은 모인다. 인터넷엔 ‘고졸 공시생들’이 만든 카페가 적지 않다. 고졸 공무원 지망자들이 찾아와 시·도별 채용 정보를 올리고, 시험 준비 노하우를 나누며, 스터디를 조직하고, 강의·공부 자료를 공유한다. 합격기를 들려주는 고졸 합격자도 있다.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 분위기가 확산된 것은 2012년부터였다. 고졸자에 한해 지원 가능한 2가지 전형이 도입·시행됐다. ‘고졸 채용을 활성화하고 우수한 고졸 출신 인재가 공직에 진입하도록 길을 열어준다’는 취지가 따랐다.
‘지역인재추천채용제’는 마이스터고·특성화고 등 비인문계 학교 3학년생이나 졸업한 지 1년이 안 된 이들 중에서 선발 직군에 해당하는 학과를 이수한 사람이 지원할 수 있다. 학과별 성적 상위 30% 이내(내신 등급 3.0 이내)의 졸업자 중 학교장 추천을 받아야 시험을 치를 수 있다.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합격한 뒤 6개월간 견습근무를 마치면 일반직 9급 공무원이 된다.
‘경력경쟁임용시험’은 계열과 무관하게 최종 학력이 고졸이면 지원 가능하다. 고교 졸업 예정자와 졸업자끼리만 치르는 경력경쟁임용시험은 1·2차 필기시험에 통과한 사람에 한해 3차 서류심사와 면접으로 채용한다.
특성화고는 공무원 시험 대비의 최전선이다. 학교가 적극적으로 시험 준비반을 꾸려 뒤를 받친다. 공무원 시험 지원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놓아줄 수 있는 최선의 다리이자 학교가 생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서울의 의료정보기술 분야 특성화고 졸업반인 배미영(18·가명)양도 지역인재 9급 행정직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학교도 공무원 준비반을 운영한다. “다른 학교에선 1학년 때부터 공무원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학교는 3학년 때부터 가능하다. 공무원 준비반 학생들에겐 자습실이 별도로 제공되고 선생님이 감독한다. 공무원반에 들어가려면 내신이 3등급 이내여야 한다. 전공과목을 절반 이상 A를 받아야 가능하다.”
경쟁은 치열하다. 배미영양이 다니는 학교의 경우, 지역인재추천채용제가 시작된 2012년 이후 매년 4명씩 학교장 추천을 받았지만 12명(2015년은 진행 중) 가운데 합격한 학생은 2명뿐이다. 지난 5년간 이 시험에 4060명이 지원했으나 선발 배정 인원은 510명(2012년 100명→2013년 120명→2014년 140명→2015년 150명)이었다.
고졸 공시 응시 자격을 얻기 위해 인문계고에서 특성화고로 전학하는 경우도 있다. 함정화(47·가명)씨의 딸(17)은 인문계고 학생이었다.
“1학년 2학기까지 다니다 지난해 10월 자퇴했다. 당시 성적으로는 좋은 대학에 진학해 취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기업 고졸 채용도 대부분 정직원으로 채용하지 않고 인턴으로 뽑는다. 특성화고로 보내 내신을 올리면 학교장 추천으로 지역인재 9급 공무원 시험을 칠 수 있다고 봤다.”
특성화고로 옮겨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엄마와 딸은 마음을 졸인다. 지역인재전형의 제한된 응시 자격 탓이다. 재학 기간 중 학교장 추천을 못 받거나 졸업 1년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특성화고로의 전학이 ‘열매 없는 모험’으로 끝날 수도 있다.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공무원을 준비하면서도 공무원만 준비하는 게 맞나 싶어 딸도 나도 불안하다.”
평생 한두 차례만 부여되는 응시 기회는 고졸 공시를 빈부 격차의 현장으로 만들기도 한다. 함정화씨는 딸의 내신 대비 및 자격증(기능사나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있으면 0.4~4%의 가산점 부여) 취득에 매달 100여만원을 쓴다. 영어와 수학은 별도로 서울 강남의 학원에 보내 대비한다. 그는 “내신과 자격증 모두 준비하다보니 인문계를 다닐 때(40여만원)보다 사교육비가 더 많이 든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수험생들은 애가 탄다. 양경희(18·가명)양은 서울의 한 디자인계열 특성화고 학생이다. 9급 경력경쟁임용시험 시설직(건축)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1학년 때만 해도 그는 대학 진학을 꿈꿨다. 국·영·수 수업 시수가 적고 모의고사도 보지 않는 학교 특성상 수능 준비가 쉽지 않았다. 2학년이 되면서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그의 학교에선 현재 15명이 시험을 대비(졸업생 5명 포함)하고 있다. ‘학교장 추천’이란 산부터 먼저 넘어야 한다.
그에겐 물리 과목이 장벽이다. 시험 과목에 포함되지만 학교에선 가르치지 않는다. “방과 후 수업으로 물리를 배우고 싶다고 학교에 건의했으나 학교에선 가르칠 선생님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 그는 한 달간 물리 전공 대학생에게 과외를 받았다. 과외 알선업체에서 소개받은 사람에겐 다섯 달 동안 배웠다. 서울 신림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공부했다. 6개월 동안 과외비로 모두 170만원을 썼다. 4개월간 건축계획과 건축구조, 물리 등 인터넷 강의도 들었다. 23만원의 수강료는 공시 준비생 5명이 4만여원씩 나눠 부담했다. 돈을 모아 아이디 하나를 산 뒤 공유했다.
‘공무원반’이 없는 학교 학생들은 시험 준비가 쉽지 않다. 충북의 한 상업계열 학교에 다니는 김준영(18·가명)군은 지역인재 9급 회계직을 지망한다. 그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고 있다. 김군은 “학교 차원에서 시험 대비반을 운영하지 않는데다 인문계열 과목의 수업 시수도 적다. 국어·영어·한국사 인터넷 강의를 듣는 데 50만원 이상이 들어 부담이 크다.”
고졸 공시 ‘시장’도 예외 없이 돈을 요구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고졸 공시 시장도 빈부 격차 </font></font>노량진 공시촌에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고졸’과 위태롭고 차별받는 삶을 겪어본 ‘연륜 있는 고졸들’이 뒤섞여 대졸자와 경쟁하고 있다.
김재호(29·가명)씨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집을 나선다. 노량진 공시촌(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그의 집은 고시원이다. “집이 아니라 잠을 자는 공간일 뿐”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월세 35만원짜리 한 뼘 방에서 수를 알 수 없는 바퀴벌레들이 그와 동거한다. 바퀴벌레에 쫓기듯 고시원을 나서는 그는 바퀴벌레가 기다리는 방으로 돌아갈 때마다 턱밑에서부터 숨이 차오른다.
부산 출신인 그는 나이 서른을 앞두고 노량진으로 상경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겪은 10여 년의 ‘쉽지 않았던 시간’이 그를 늦깎이 공시생으로 만들었다. 그에게 “전쟁터 같은 노량진”조차 고향의 친구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지방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서울에서 공부하는 내가 부럽다고 한다. 노량진 생활이 힘들긴 해도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학원비를 제외하고도 한 달 100여만원의 생활비를 부모님께 의지하며 죄스러운 마음에 시달린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size="4"><i><font color="#991900">경남 창녕에서 부모님 농사를 돕던 그는 28살에 노량진으로 올라왔다. 공시생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그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 같은 사실을 상기해야 했다. “나는 고졸이었다. 대졸 수험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겠단 사실을 학원 수업 첫날 알아버렸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정해진 응시 기간에 합격하지 못했거나 뒤늦게 시험 준비를 시작한 공시생들은 ‘개방형 시험’에 도전해야 한다. 9급 일반행정직과 9급 경찰공무원(순경) 전형은 학력 구분 없이 필기시험을 거쳐 성적순으로 합격자를 추린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어·수학·사회·과학이 시험 선택과목에 추가(형법·형사소송법·경찰학개론과 합쳐 총 6과목)됐다. 학교에서 법학을 배운 대졸자에 비해 고졸자가 불리하다는 이유였다. 현재 고졸자를 배려한 시험과목 확대가 대졸자에게 역이용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4년제 대학 경찰행정학과 출신 수험생이 일반채용에 뛰어드는 경우가 늘어나면서다. 경찰행정학과 출신들은 그들에게만 부여된 특채전형(경찰학개론·수사·행정법·형법·형사소송법)과 비전공자가 지원 가능한 일반전형(한국사·영어+선택 3과목) 중 골라 응시할 수 있다. 일반전형으로 전환하는 경찰행정학과 대졸자와 9급 경찰직 시험을 ‘보험 삼아’ 치르는 대졸자가 증가했다.
김재호씨는 “법 과목엔 문외한”이었다. “죄형법정주의를 처음 배웠을 때 멘털이 붕괴됐다. 시험과목 확대 뒤엔 좀 수월해질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고졸 지원자의 필기시험 합격이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실제로 2013년 8월 치러진 일반전형 순경 공채시험의 경쟁률은 11.4 대 1이었으나, 시험과목 확대 뒤 처음 치러진 2014년 8월 공채에선 경쟁률이 19.6 대 1로 뛰었다.
노량진에서도 고졸들은 “서럽다”고 했다. 2년째 경찰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오기현(30·가명)씨는 스스로를 ‘노량진의 이방인’이라고 여긴다. 그에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다른 고졸 공시생 한 명밖에 없다. 50명이 넘는 반에서 고졸인 사람은 그들 두 사람뿐이다.
그가 보기에 대학생·대졸 공시생들은 대학을 연결고리로 친해지고 어울렸다. 그 속에서 오기현씨는 어울릴 틈을 발견하지 못했다. 대화 도중 고졸임을 드러내야 할 때마다 그는 열등감을 느끼며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자신을 책망했다. “혼자 밥 먹을 때가 가장 외롭다. 법 과목이 너무 어려워 스터디를 구하려 해도 아는 사람이 없어 혼자 꾸역꾸역 수업을 따라가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노량진의 이방인’ 고졸 수험생 </font></font>공무원 사회가 학력 차별이 적을 것이란 믿음은 신화에 가깝다. 9급 고졸 공무원에서 중앙부처 1급까지 오른 박현숙 여성가족부 기획조정실장의 승진 인사가 지난 1월 화제를 모았다. 고졸 출신 공직자의 ‘입지전’이 성공 스토리로 회자되는 사회는 그만큼 장벽이 높다는 뜻이다. 그 장벽 안에서라도 따뜻할 수 있길 꿈꾸는 고졸 공시생들은 오늘도 그들을 막아선 겹겹의 장벽 앞에서 좌절한다.
오기현씨가 대학을 포기한 이유는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부족한 형편에도 대학 진학을 권하는 부모님을 “필요할 때 언제든 가면 된다”며 거꾸로 설득했다. 고졸로서 맞닥뜨린 사회는 예상 이상으로 싸늘했다. 그는 늘 ‘찬밥 신세’였다.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이 계속됐다. 경남 창녕에서 부모님 농사를 돕던 그는 28살에 노량진으로 올라왔다. 공시생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그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 같은 사실을 다시 상기해야 했다.
“나는 고졸이었다. 대졸 수험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겠단 사실을 학원 수업 첫날 알아버렸다.”
<font color="#008ABD">글</font> 김다솜 기자 uniqueds@nate.com·박고은 기자 szaaa@hanmail.net·오소영 기자pangkykr@naver.com·<font color="#008ABD">사진</font>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독일에서는 고졸 공무원 응시자가 4년제 대졸자와 경쟁하는 일이 거의 없다. ‘계급군 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공무원의 계급군은 고위직·상급직·중급직·단순직 4단계로 구분된다. 각 계급군은 요구하는 학력 조건이 다르다. 한국 학제에 대입해보면, 고등학교 졸업자가 중급직까지 지원할 수 있고 중학교만 졸업해도 단순직 공무원에 지원할 수 있다. 응시자가 학력이 부족해도 해당 계급군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경력이나 능력을 증명할 경우 상위 직군으로 특채되거나 승진하기도 한다. 한국행정연구원 양현모 행정관리연구부장은 “독일은 각 계급군에 지정된 학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경쟁하기 때문에 중졸·고졸 응시자들이 크게 위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교육에 의존해야 할 만큼 필기시험에 중점을 두는 한국과 달리, 독일 공무원 시험은 서류전형이나 면접을 통해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자질만 판단한다. 독일에서 중급직은 주로 필기시험 없이 면접만으로, 단순직은 대부분 서류전형으로만 공무원을 선발한다. 종합적 사고, 주요 시사 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응 능력 등을 서류전형과 면접 과정에서 검증한다.
부처별로 선발된 합격자들은 ‘교육생 공무원 과정’을 통해 업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연수를 받는다. 한국의 공무원 필기시험에 해당하는 일반행정과 경찰행정 등을 이 시기에 배운다. 대학 교육과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시험을 치르기 어려운 한국의 채용 시스템과 비교된다.
공무원 채용을 각 부처가 독립적으로 진행하는데도 인사 비리가 많지 않은 것은 연방내무부와 연방인사위원회의 엄격한 감시 때문이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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