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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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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와 넌 학력이 달라”

보이지 않는‘고졸 전용구역’에 가둬 차별하고 구별하며 이익 남기는 사회… 학력이 역할 규정하고, 역할이 성과 제한하며, 저성과를 저학력 탓으로 돌리는 악순환
등록 2015-10-15 12:14 수정 2020-05-02 19:28



기획연재_고졸지옥


① 고졸 공시 바람의 이면
②‘고졸’이라는 낙인


‘잿빛 청춘’의 길을 연속 보도하고 있는 과 현장 취재를 맡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터넷 매체)가 협업해 외면받는 ‘고졸들의 노동 실태’를 연재한다.
지난 5월 중순 기자 10명(김다솜·문중현·박고은·박성희·박세라·배상철·오소영·이성훈·전광준·홍연)은 고졸 노동자들의 삶에 주목했다. 주간 교수(제정임 교수)의 조언을 받아 기획안을 발전시킨 뒤 5개의 주제·영역을 확정해 5월 말 취재를 시작했다. 두 달간의 취재와 집필을 거쳐 7월 말 초고를 만들었다. 보충 취재를 통해 8월 말 수정 원고를 완성했다. 의 이문영 기자와 협업하며 기사 보강에 다시 한 달을 썼다.
두 번째 기사에선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혹사당하면서도 신분제 사회에서처럼 차별받고 구별받는 고졸 노동자들의 삶을 전한다. 고졸 취업자·무직자들이 걷는 길은 시선 밖에서 외따롭고 황량하다. _편집자
지난 9월4일 ‘능력중심 창조인재를 위한 2015 고졸성공 취업 대박람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행사 참가를 위한 등록카드를 작성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지난 9월4일 ‘능력중심 창조인재를 위한 2015 고졸성공 취업 대박람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행사 참가를 위한 등록카드를 작성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고졸’은 낙인이다.

“점심시간이면 고졸과 대졸 출신들이 나뉘어서 따로 밥을 먹었어요. 구내식당에 대졸자들끼리만 몰려 앉는 구역이 있었거든요. 함께 앉아 어울리며 밥 먹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괜히 그쪽으로 갔다가 무슨 소리라도 들을까 눈치가 보여 저도 고졸 동기들하고만 밥을 먹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유리천장’이 가시적 여성 차별의 장벽으로 치솟듯, 눈에 보이지 않게 둘러쳐진 ‘고졸 존(zone)’이 고졸 노동자들을 배제와 구별의 동심원 안에 가둔다.

최윤수(21·가명)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마이스터고등학교 금형제작과에 진학했다. 지난해 졸업 직후 경북 경산에 있는 삼성전자 1차 협력기업에 공채로 취직했다. 그는 금형을 점검하고 수리하는 부서에 배속됐다.

고졸자에게만 시급 적용하는 회사

“쉬는 시간에 대졸 사원들이 담배를 피우려고 나갈 때도 우리는 그냥 멀뚱멀뚱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담배 피우러 나가려고 하면 대졸들이 ‘너희는 왜 따라 나오냐’고 쏘아붙였거든요.”

2천여 명의 사원 중 고졸은 20% 정도였다. “고졸은 대졸 사원들로부터 노골적인 차별을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야근도 대졸에겐 선택이었지만 고졸에겐 강요되는 분위기였다. 대졸 사원 선배들은 그에게 툭하면 고졸임을 상기시키며 “야간(근무) 하라”고 했다. “넌 고등학교만 졸업했으니까 돈 많이 벌어야지.”

야근이 없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뿐이었다. 밤 9시에 시작하는 야간 근무는 새벽 1시가 돼서야 끝났다. 고졸 노동자는 임금을 시급으로 받는다는 사실도 입사 뒤에야 알았다. 채용 공고에 난 급여 수준이 괜찮아 지원했는데 실제 받은 돈은 시간당 최저임금인 5210원이었다. 왜 고졸자에게만 시급 체계를 적용하는지 회사의 설명은 듣지 못했다. 대졸자보다 매일 3~4시간씩 잔업을 더 해야 한 달 월급이 그들과 비슷해졌다. 그는 결국 9개월 만에 퇴사했다.

현재 그는 한 통신회사 직영점에서 판매 영업사원으로 일한다. “기술 전공으로 마이스터고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고졸이란 벽은 넘기 힘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차별은 시스템이다. 저임금·미숙련 노동시장의 최저층은 청년 세대 중에서도 대학 미진학자들(2015년 교육기본통계 기준 전체 고졸자(61만5462명)의 29.2%인 17만9812명)로 채워진다. 고졸 노동자에겐 능력을 발휘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역할 자체가 잘 부여되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해도 고졸 학력을 이유로 임금과 승진 등에서 차별받는다. 시스템은 저임금·미숙련 노동과 그들에 대한 차별을 전제로 이익을 남기고 성장을 얻는다.

교육 대신 청소·심부름만

이지연(19·가명)양은 2013년 미술 계열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진 뒤 서울의 2년제 미용 특성화학교에 진학했다. 정규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데다 헤어·메이크업·네일아트 등의 전공과목이 미술과도 무관치 않아 보여서다. 그는 여러 가지 색을 다루는 네일아트에 흥미를 느꼈다. 네일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졸업을 앞두고 현장에서 일을 배우고 싶었다. 지난해 12월부터 한 프랜차이즈 네일숍에서 3개월 수습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가장 나이가 어린 그는 교육보다 청소나 심부름 등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오전 9시30분에 출근해 뜨거운 수건을 준비하는 것으로 그의 하루 일과는 시작됐다. 바닥에 떨어진 손발톱을 빗자루로 쓸고, 고객이 사용한 물을 버리고, 매장에 쌓인 쓰레기를 치웠다. 매니저의 개인 택배를 부치거나 찾아오는 일까지 도맡았다. 퇴근 시간은 저녁 8시30분이었지만 일주일에 사나흘은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마감 청소를 했다. “더럽고 힘든 일은 다 했다”고 그는 말했다.

네일아트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지만 교육 시간은 입사 뒤 5개월간 합쳐도 10시간이 되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거나 손님이 없을 때 매번 다른 직원에게 눈치껏 배웠다. 그마저 각질 관리, 마사지, 젤네일(젤 성분을 손발톱에 발라 자외선에 굳히는 것), 컬러링(매니큐어 바르기), 큐티클(각피) 제거 등 기본적 기술이 전부였다. 액체 아크릴과 가루를 섞어 인조 손톱을 만들거나 손톱을 장식하는 고급 기술을 실습할 기회는 없었다. 몸은 고됐고 마음은 다쳤다.

“너 손발이 느린 건 알고 있니. 그렇게 느려선 여기서 일 못해.” 아픈 몸으로 쓰레기봉투를 갈고 있던 그를 30대 선배가 불러 고객 앞에서 혼냈다. 그날 이후에도 “매장에선 어떻게 일하라고 했냐”며 선배의 다그침은 계속됐다. 그때마다 그는 큰 소리로 답해야 했다. “빨리빨리 일해야 합니다.”

3개월의 수습 기간에 하루 11~12시간씩 일해 받은 월급은 80만원이었다. 매장이 목표 수익을 초과 달성하면 10만원을 더 받았다. 발 각질 제거에 사용하는 독한 스크럽제 때문에 피부가 쩍쩍 갈라졌다. 피가 나면 일회용 밴드를 붙이고 일했다. 수습 기간을 마친 뒤 정직원이 됐으나, 그는 두 달 만에 그만뒀다. 현재 병원에 다니며 피부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네일숍에서 겪었던 일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고 했다.

고졸 여성 노동자 혹사하는 네일숍
지난 4월23일 열린 ‘헬스 앤 뷰티위크’(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네일 아티스트들이 행사 참가자들에게 네일 케어를 해주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23일 열린 ‘헬스 앤 뷰티위크’(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네일 아티스트들이 행사 참가자들에게 네일 케어를 해주고 있다. 연합뉴스

네일숍과 미용실 등은 고졸 여성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장시간 혹사당하는 대표적 업종이다. 청년유니온이 발표한 ‘2013년 미용업계 근로조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198개 매장 직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4.9시간(법정 기준 40시간)이었고 평균 시급은 2971원(당시 최저임금 4860원)이었다. 장시간 근무로 관절과 피부 질환을 앓고 있지만 자비를 들여 치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불고기버거, 치킨버거, 새우버거…. 노트북 컴퓨터만 한 전광판에 방금 들어온 주문이 6개씩 표시됐다. 주문받은 햄버거의 이름이 큰 글씨로 떴고, 그 옆에선 초시계가 돌며 햄버거 만드는 시간을 쟀다. 모든 햄버거는 25초 만에 만들어야 했다. 25초를 넘으면 초시계 숫자는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바뀌며 경고를 보냈다. 빵 굽는 데 7초, 패티 굽는 데만도 15초가 걸렸다. 25초를 넘기면 30대 후반의 매장 매니저가 “빨리 만들라”고 닦달했다.

‘맥잡’(맥도널드 잡·전망 없는 저임금 노동)은 고졸 노동자들의 블랙홀이다. 김태영(21·가명)씨는 서울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소설가를 꿈꿨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그는 스스로 대학 입시를 포기했다. 소설가가 되는 데 굳이 대학 교육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고 부모님 신세도 지기 싫었다. 기계처럼 햄버거를 굽는 동안 그는 소설가가 되는 것도,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도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업장엔 위험이 널려 있었다. 얼어붙은 패티를 15초 만에 구워내기 위해 400도 넘게 달궈진 철판을 다룰 때마다 화상 위험이 컸다. 감자나 치킨을 튀길 때는 170도 넘게 달아오른 기름이 얼굴에 튀었다. 얼굴 보호용 장비가 있지만 ‘오토바이 헬멧’처럼 크고 무거웠다. 매니저는 일하는 데 방해되니 보호장비를 쓰지 말라고 했다.

매일 뜨거운 기름 열기를 쐬며 일하던 그는 몸에 이상을 느꼈다. 전에 없던 편두통을 앓았다. 통증이 너무 심해 병원에 갔더니 고액의 자기공명혈관촬영(MRA)을 하라고 했다. 그는 큰돈을 감당할 수 없어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MRA를 찍고도 원인은 알 수 없었고, 병원에서는 두통약만 처방해줬다. 업무연관성을 입증할 길이 없으니 병원비는 모두 자비 처리했다. 평소 앓던 안구건조증도 심해졌다. 그가 일을 그만뒀을 때, 신기하게도 두통이 사라졌다.

고졸 노동자의 블랙홀 ‘맥잡’

학력이 역할을 규정하고, 역할이 성과를 제한하며, 저성과를 저학력 탓으로 돌리는 악순환 구조 속에 고졸 노동자는 갇혀 있다. “우리 매장 아르바이트생 대부분이 고졸이에요. 매장 연출(꾸미기)을 할 때 ‘아르바이트생들은 고졸이니 고객한테 인사나 하라’고 해요. 그들도 알아야 고객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데 어차피 말해줘도 모를 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고졸 아르바이트생을 관리하는 ‘매니저’ 이영호(25·가명)씨도 고졸이다. 경남 창원의 한 의류 매장에서 일하는 그는 대학을 1년 다니다 군대에 갔다 온 뒤 ‘영어 공부하고 취업하는 삶이 싫어’ 학교를 그만뒀다. 그는 일본에서 1년간 식당에서 요리사로 돈을 벌며 일본어를 배웠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아 온라인 쇼핑몰까지 운영했던 그는 2012년 한국에 돌아온 뒤 곧바로 의류 매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연봉 1800만원에 하루 8시간 근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고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쇼핑몰 운영 등 다양한 경험이 판매자로서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시급 연봉’ 생활이 지속되면서 ‘학력보다 현장 경력이 중요하다’는 믿음은 오래전에 깨졌다. 대졸자는 채용되자마자 매니저가 됐지만 고졸자는 그렇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에 일하던 고졸 스태프의 진급 기회를 가져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 자신도 3년이 넘어서야 가까스로 매니저가 될 수 있었다. 대학을 스스로 그만뒀던 그는 지난해부터 한 사이버대학의 경영학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고졸 학력 때문에 기회를 놓치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학력보다 경력이 중요하다는 헛된 믿음

윤석현(27·가명)씨는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중소 건설사에서 주상복합단지나 아파트의 도면을 그리는 일을 한다. 그의 회사는 고졸로 입사한 경우 사원부터, 4년제 대졸자는 대리부터 시작한다. 고졸자도 3년차가 되면 대리 진급 기회를 주지만, 3년차에 그는 대리 대신 주임이 됐다. 그는 “회사가 임금을 줄이려고 ‘주임’이란 직급을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과장과 주임은 연봉에서도 100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 전문대 출신인 입사 동료는 1년도 안 돼 대리로 승진했다. 동료는 사무 지원을 하는 경리직이었다. 전문 업무를 맡고 있는 자신이 고졸 학력 때문에 승진에서 밀리자 그는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항의하는 그에게 사장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 친구와 너는 학력이 달라.”

그는 억울한 마음에 올해 전문대 기계과에 입학했다. 4년차인 올해에도 윤석현씨는 아직 주임이다.

김다솜·박고은·박세라·배상철·오소영·이성훈·홍연 기자
법  바깥에  있는  ‘고졸  차별’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뭔가요?


고졸 노동자가 학력 때문에 직장에서 부당한 차별대우를 당해도 현행법엔 바로잡을 구체적 근거가 없다. 고용정책기본법과 근로기준법은 균등한 취업 기회 보장을 목표로 ‘모집·채용 단계’에 대한 학력 차별만을 금지하고 있다. 남녀 차별의 경우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을 통해 고용·임금·승진에서의 성차별에 대해 시정 명령, 과태료 부과 등의 처벌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과도 비교된다. 특히 남녀고용평등법은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는 “직장에서 부당한 학력 차별을 없애려면 노동자를 역할 및 성과 중심으로 평가하는 직무급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나 독일 등의 경우 학력별 직무의 구분은 두지만, 대졸자가 고졸자 직무에 종사한다면 고졸자와 같은 임금을 적용받는다.
국제물류기업인 DHL코리아는 2005년부터 직무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근무경력 등에 따른 호봉제를 직무강도와 기술등급에 따른 임금체계로 전환했다. DHL코리아가 직무급제로 전환한 뒤 배송직군에 있던 고졸 직원들이 금융 담당으로 자리를 옮겨 승진하는 사례도 나오기 시작했다. 박은정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등 산업화 초기부터 직무급제가 형성돼온 나라들의 밑바탕엔 직종별·산별 노동조합이 중심이 된 단체교섭 체제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노동위원회 산하 차별시정위원회가 비정규직 부당 처우 문제뿐 아니라 학력·성별 등에 따른 직장 내 차별까지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제안한다. 차별시정위원회는 차별 신고에 대한 시정 명령을 내리고 이에 응하지 않는 업체에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차별시정위원회 심판2과 권오현 위원은 “동종 업무의 학력 차별 문제가 접수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배상철·이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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