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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 그가 바라는 단 한 가지

등록 2014-12-25 15:15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 김성광 기자

한겨레 김성광 기자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 2013년 2월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다 간첩으로 몰려 검찰에 구속 기소된 유우성(34)씨에게 2013년이 거짓으로 점철된 한 해라면 2014년은 거짓 아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 한 해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안 당국에 의해 ‘제조’된 숱한 조작간첩 사건 가운데, 재판 진행 중 조작 사건임이 밝혀진 경우는 유씨가 유일하다(제1003호 참조). 지난 4월 서울고등법원은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뒤이어 10월 서울중앙지법은 유씨 사건에서 증거 조작에 가담한 국가정보원 직원 4명과 협조자 2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개입한 ‘막장 드라마’의 전모가 드러나자 온 나라가 황망함을 금치 못했다.

진실이 밝혀져도 삶은 복구되지 못했다. “압박과 스트레스는 여전해요. 제 모든 일상이 재판에 맞춰져 있어요.” 지난 12월17일 서울 교대역에서 만난 유씨의 얼굴은 그늘져 있었다. 아직 한 달에 한두 번은 재판에 참석해야 한다. 기약 없는 대법원 재판뿐 아니라, 검찰의 ‘보복성’ 기소 사건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1심에서 유씨가 무죄로 밝혀지자 지난 5월 유씨를 탈북자들의 부탁을 받아 중국을 거쳐 북한에 송금을 해주는 무등록 외환거래를 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 등)로 다시 재판에 넘겼다. 이미 2010년 수사한 뒤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던 사안이다.

유씨의 재판을 맡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앞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자주 시위를 벌인다. 자신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인까지 ‘분풀이’를 당하는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검찰은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지난 11월 민변 소속 장경욱(46)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대한변호사협회에 신청했다.

“억울한 일의 진실이 밝혀졌으니 검찰은 이제라도 사과하고 미안한 기색을 보여야 하는데 망신당한 것에 대해 보복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수언론은 진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주장만 고집하고 있고요. 권력기관이 힘없는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힘을 행사하는데 힘없는 개인은 스스로 보호할 수단과 방법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유씨는 35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을 만났다. “저를 보고 그분들 스스로 겪었던 고통을 기억하고 제 아픔을 공감한다면서 만남을 청하셨어요. 수십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에 고통스러워하셨지요.”

최근 유씨는 사회복지대학원에 복학했다. 민변 등에서 등록금을 보태주었다. ‘간첩’으로 얼굴이 알려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인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다. 아직 보름에 한 번은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전 아주 활동적인 편이었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꺼려져요. 혹시나 나 때문에 화를 입진 않을까, 통화 내용이 도청되는 건 아닐까…. 많이 부담되지요.”

그가 바라는 건 한 가지다. “전 무슨 보상을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하루빨리 모든 게 명백히 밝혀져 끝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게 소원이에요. 언제쯤 ‘피고인’이라는 말을 제게서 떼어낼 수 있을까요. 다시는 저처럼 무고하게 고통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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