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습니꺼?” 남보라색 등산복 상의에 빨간 트레이닝 바지, 흙 묻은 낡은 작업화 차림의 그가 건넨 첫 인사였다. 대안기술센터(atcenter.org) 김대규 간사(34). 아무리 ‘대안’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해도 ‘기술센터’인데…. 하얀 위생복에 마스크 차림까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옷차림이 너무 ‘대안적’이었다. 실망은 잠시. 우리는 곧 그 대안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서울에서 버스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경남 산청군 신안면 원지 버스 정류소. 달랑 의자 몇 개가 놓인 간이 정류소였다. 여기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민들레 공동체’와 대안기술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대안기술센터는 첨단기술이 아닌, 환경을 생각하고 이웃을 돕는 기술을 전달하고 공동체 속에서 실천하는 곳이다. 지금은 에너지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대안기술센터가 보급하려는 대안에너지는 태양열에너지와 풍력에너지, 바이오디젤이다. 볏짚주택 보급 운동도 한다. 태양열에너지와 풍력에너지라고 해서 사막 위의 거대한 태양전지판이나 굉음을 내고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를 상상해선 안 된다. 이 에너지들은 오히려 ‘값비싼’ 에너지들이다. 서민들이나 제3세계에선 상상도 못할. 대안기술센터가 추구하는 대안에너지는 ‘착한 에너지’다. 값싸고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환경을 해치지 않는. 이런 착한 에너지를 전문용어로 ‘적정기술’이라고 한다. 대안기술센터의 목표는 적정기술의 보급인 셈이다.
대표적인 예가 ‘태양열 오븐’이다. 위성안테나처럼 생긴 반구형 집광판으로 태양열을 모아 밥도 짓고 요리도 한다. 집광판의 빛이 모이는 초점에 밥솥이나 냄비를 올려놓으면 된다. 오염도 없고 돈도 들지 않는 100% 청정·대안 에너지다. 문제는 시간. 밥을 지으려면 2시간은 걸린다. 시간이 유일한 비용이다. 대안기술센터에서는 버려진 종이상자와 알루미늄 포일로 만들 수 있는 태양열 오븐을 보급하고 있다.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교실도 연다. “우리나라에는 ㎡당 하루 3211kcal의 햇빛이 쏟아집니다. 이를 석유로 환산하면 116억t에 맞먹는 에너지입니다.” 김 간사의 말이다. 대안기술센터에서는 ‘하루에 한 끼 태양열로 밥 짓기’를 제안한다. 버려진 자전거를 재활용한 자전거발전기, 대안기술센터 지붕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등이 ‘적정기술’로 탄생한 제품들이다.
대안기술센터를 만든 이는 이동근 소장이다. 그는 ‘에너지 자립’ 문제를 고민하다 영국 대안기술센터(CAT·Center of Alternative Technology)에서 생태건축을 공부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만든 것이 이 센터다. 센터 출범 초기에 김대규 간사가 동참했다.
이동근 소장은 아프리카 선교를 갔다가 길에서 굶어 죽어가는 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죽어가는 노인의 눈을 보며 “다음에 내가 돌아오면 당신들을 도울 수 있는 뭔가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그 뭔가를 찾기 위해 만든 게 대안기술센터였다. 김대규 간사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때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였다. 2004년께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을 갔다 만난 한 여성의 질문이 그의 삶을 바꿨다. “당신이 삶에서 가장 열망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김대규 간사는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 이후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그 대답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하루하루의 삶. 그는 ‘나누는 삶’을 위해 네팔에 학교를 세우기로 마음먹게 된다. 학교 설립을 위해 네팔과 한국을 오가다가 이동근 소장을 만났다. “방법은 달라도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큰 맥락은 같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대안기술센터를 택한 김 간사의 대답이다.
TV 1 시간 보려면 자전거 3시간 타야대안적 삶은 쉽지 않다. 밥을 할 때도 2시간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직접 손으로 만든 풍력발전기는 수시로 손봐야 한다. 김 간사는 “현대인은 에너지 중독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하루 1시간 쓰는 컴퓨터를 대여섯 시간 켜두는 일이 다반사 아닙니까. 이런 습관을 변화시키려면 ‘목숨을 건’ 노력 없이는 안 돼요.”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 그만큼 에너지 절약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2시간씩 걸려 태양열로 밥을 짓고, 자전거를 타면서 만든 전기로 텔레비전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 간사는 실질적 대안으로 ‘에너지 디자인’을 추천한다. 자신이 하루에 쓰는 에너지를 계산해 이를 대안에너지 기술로 대체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가령 텔레비전을 1시간 보려면 자전거발전기를 몇 시간이나 타야 하는지 계산해보는 것이다. 답은 3시간이다. 이렇게 체험하고 계산해보면 에너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는 얘기다.
현재 대안기술센터는 4명의 인원이 꾸려나간다. 그래도 일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인터뷰 중에도 김 간사는 틈틈이 작업장에서 일을 계속해야 했다. “부족한 노동력은 어떤 방법으로 충당하냐”고 물었다. 답은 간단 명쾌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죠.”
이렇게 일을 하지만, 월급은 없다. 대신 ‘에너지 팜’이라는 사업체에서 월급을 받는다. 대안에너지와 기술에 관심 있는 단체에 관련 제품을 납품하는 1인 사회혁신기업이다. 직원은 김 간사 1명. 월급은 100만원가량이다. 남는 수익의 70%는 사회에 환원한다. 고아원 장학금으로, 해외 구호 비정부기구(NGO) 지원금으로 나간다. 금전적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만든 기업이 다시 사회에 기여하게 된 셈이다.
대안기술센터가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졌다. 어떤 이들은 풍력발전기 몇 대, 태양열발전기 몇 대면 엄청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찾아오기도 한다. 이들에게 할 말이 있다. “우리가 만드는 자전거발전기라든가 태양광 발전판, 풍력발전기 등은 가정에서 몇 시간 정도 쓸 수 있는 전기를 제공할 뿐이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전기를 전부 감당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대안에너지 기술이 주목하는 대상은 전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면서도 적은 전기로도 살아갈 수 있는 저개발국의 빈곤층 지역, 말하자면 이동근 소장이 찾아갔던 아프리카의 마을과 같은 곳이다.
아침에 싸워도 저녁에 같이 밥 먹는 공동체성대안기술센터가 최근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 ‘에너지 제로 하우스’의 설립이다. 그간 대안기술센터는 볏짚주택에 주력해왔다. 시멘트에 자갈을 넣어 강화하듯, 황토에 볏짚을 넣어 보온력과 내구력을 높인 것이 볏짚주택이다. 에너지 제로 하우스는 ‘업그레이드 볏짚주택’이다. 보온재는 물이다. 낮에는 태양열로 물을 데워 내부 온도를 높인다. 밤이 되면 벽에 설치한 커튼을 통해 열의 방출을 막는다. 조리할 때도 태양열 조리기를 쓴다. 난방과 조리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0으로 만든다는 것이 목표다. 이런 주택이 실용화된다면, 농촌 주택으로는 최고이지 않을까.
김 간사는 “어려울 때마다 맨 처음 원지행 버스표를 끊었을 때의 심정을 다시 되새겨본다”고 말했다. 그가 꿈꾸는 대안적 세계는 거창하지 않다. “김씨 아저씨와 옆집 이씨 아저씨가 아침에 싸웠다가 오후에는 화해하고 저녁에는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공동체성. 그리고 그 공동체성을 지켜줄 수 있는 따뜻한 에너지 기술이 함께하는 겁니다.”
인터뷰 내내 느낀 한 가지. 그는 늘 웃는 표정이었다. 행복해 보였다. 돈 대신 찾은 행복이다.
산청=글 임다희 인턴기자 dahee9928@hotmail.com·사진 이미선 인턴기자 i796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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