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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이 담배 끊은 비결은?


금연부터 임신·성병·우울증 예방 등 건강서비스 내세운 영국 약국들
등록 2008-11-21 09:22 수정 2020-05-02 19:25

“담배를 끊고 싶은데, 약국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왔어요.”
런던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스티븐 제라드는 불규칙적인 생활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자 11월 초 8년 동안 매일같이 피워온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다. 금연을 결심하고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주치의가 처방해준 약을 사거나 간단한 생활용품을 구입하러 한 달에 한두번 들렀던 동네 약국이다. 약국의 문 앞에 쓰여 있던 ‘국민건강서비스 금연 상담 약국’이라는 문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런던 뉴크로스 지역에서 ‘NHS 금연 서비스’를 하고 있는 약국 모습. 금연 상담교육을 받은 약사가 정부에서 마련한 지침에 따라 전문적인 금연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런던 뉴크로스 지역에서 ‘NHS 금연 서비스’를 하고 있는 약국 모습. 금연 상담교육을 받은 약사가 정부에서 마련한 지침에 따라 전문적인 금연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치료 의지 확인하고 30분간 상담

스티븐은 약국에 들어가 나이가 지긋한 약사에게 금연에 대한 의지를 설명했다. 약사는 간단한 상담을 시작했다. “어떻게 금연을 결심하게 됐나요? 흡연으로 인해 특별히 생겨난 건강 문제는 없나요?” 약사는 이렇게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고 나서 스티븐에게 구체적인 금연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스티븐이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자 전문적인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은 금연에 대한 의지를 재차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해 금연 시작 날짜 정하기, 금단현상에 대한 설명, 니코틴 의존도 및 일산화탄소 측정 등으로 이어졌다. 약사와 함께 금연에 대한 계획을 세운 다음 금연을 시작하고 다시 약국을 찾기로 약속했다. 스티븐은 이렇게 몇 주 동안 계속될 금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스티븐이 받게 될 금연 서비스는 영국 약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건강관리 서비스다. 2004년 영국 킬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1만 개에 이르는 영국 전체 지역 약국의 절반이 넘는 56%가 전문적인 금연 서비스를 포함한 금연 상담을 하고 있으며, 그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금연 상담을 포함한 모든 상담은 3분 정도의 간단한 상담으로 시작한다. 치료에 대한 환자의 의지가 확고할 경우 30분 정도의 세부 상담이 이어지고, 국가건강서비스(NHS·National Health Service)가 보조하는 각종 건강관리 프로그램이 개인에 맞게 진행된다. 전문적인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NHS 지역 건강관리 약국’을 신청한 약국의 약사는 일정한 상담 교육을 받고, 정부가 세부적으로 정해놓은 치료 지침에 따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물론 약국은 언제든 지역 의료기관이나 지역 주치의에 협조를 구할 수 있다. 영국 보건국은 2005년 발행한 백서에서 “약국에서 금연 상담을 받은 사람들의 4주 뒤 금연 성공률은 68%로 평균 금연 성공률보다 약 16%가 높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약국에서는 금연 상담뿐 아니라 체중 관리, 청소년 임신 예방, 성병 예방, 약물 오·남용 방지, 우울증 예방 등의 건강관리 서비스가 이뤄진다. 한 가지 이상의 전문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약국은 전체 약국의 30%에 이른다. 처방전에 따른 약 제조와 경미한 질병에 대한 처방 등 약국이 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 외에 이렇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는 영국의 의료 체계인 국가건강서비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를 중심으로 기초 건강보호 기관과 2차 건강보호 기관 등으로 구성된 국가건강서비스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의료의 공공성이다. 그리고 주치의와 간호사, 약사 등이 포함된 기초 건강보호 기관의 가장 중요한 책임과 의무는 공공건강(Public Health)이다.

보건부에서 약국과 함께 실시하고 있는 각종 상담 서비스 안내 포스터. 약국은 처방된 약의 조제 외에도 금연이나 알코올 문제, 체중 조절 등에 대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건부에서 약국과 함께 실시하고 있는 각종 상담 서비스 안내 포스터. 약국은 처방된 약의 조제 외에도 금연이나 알코올 문제, 체중 조절 등에 대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초 질병을 예방하고 수명을 연장해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 것을 뜻하는 공공건강에서 약국이 담당하는 부분은 꽤 크다. 영국에서 약국은 크게 지역 약국(Community Pharmacy)와 병원 약국(Hospital Pharmacy)으로 나뉘는데, 지역 약국은 전체 약국의 70%를 넘게 차지한다. 지역 약국은 지역 주치의가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는 경미한 질병의 치료나 금연 등 건강과 관련된 정보 제공 및 상담 역할을 한다. 누구나 언제든 쉽게 찾아갈 수 있고, 사소한 건강 문제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으며, 다른 의료기관에 준하는 수준의 치료와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공공건강 영역에서 약국의 중요성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영국의 약국은 지역사회의 축이자 기초 의료기관의 중심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약국은 지역사회 중심에 위치”

영국의 대형 약국 체인인 로이드 약국은 영국 전역에서 12개의 약국에 채트(CHAT) 센터를 운영한다. 로이드 약국은 “채트(CHAT)란 커뮤니티(Community)와 건강(Health), 조언(Advise), 숙련된 전문가(Training Professional)의 약자로 채트 센터는 건강에 대한 정보 교환과 프로그램 운영 등 ‘지역사회 약국’ 개념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셰필드의 한 약국도 ‘지역사회 약국’의 긍정적인 예를 잘 보여준다. 티나 쿡 약사가 18년 동안 운영해온 이 약국은 심장질환과 폐질환의 발병률이 다른 지역보다 높고 약물 남용 문제가 심각한 이 지역의 특성에 맞게 심장 기능 검사실과 약물 관련 상담실 등을 따로 마련했다. 그 결과 이 약국은 지역 주민의 건강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내고, 그에 따른 치료와 처방을 제안하는 지역 의료기관의 중심이 됐다.

약국은 지역에 따른 건강 불평등 해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건부가 지난 4월 발행한 백서에 따르면, 전 국민의 99%가 자동차로 2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약국이 위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부가 나서서 의료 서비스 제공이 쉽지 않은 지역에 약국을 열도록 권유하는 방법으로 약국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건강 불평등 관련 담당관인 피오나 애드셰드는 백서에서 “약국은 지역사회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며 “점점 커지고 있는 약국의 공공건강 기여도의 한 부분으로서 약국이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영국 약국의 공공건강 기여도 증가에 발맞춰 약국의 역할을 넓히는 다양한 시도와 연구가 영국 전역의 약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버밍엄 지역의 24개 약국은 지역 기초 건강보호 기관과 협력해 40대 이상 남성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혈관 및 심장 질환의 검진 서비스를 생활습관 개선 상담과 병행하는 서비스를 시범 운영한다. 런던의 일부 약국은 독감 예방주사 등 주사 서비스도 진행한다. 천식과 당뇨 등 만성 질환에 대한 관리 서비스를 비롯해 양로원 노인 건강관리 서비스 등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약국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동네의 작은 약국에서부터 시작되는 영국 약국의 공공건강 관리 체계의 핵심은 ‘소통’이다. 사소한 문제부터 만성 질환까지 모든 건강 문제에 대해 약사와 주민이 함께 얘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약국과 지역사회가 대화하고, 국가건강서비스 체계가 지역의 공공건강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소통’이야말로 지금 영국 약국이 조제하는 가장 좋은 약이 아닐까.

런던(영국)=안인용 기자 한겨레 ESC팀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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