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를 뜻하는 인권과 노숙인들의 거리는 얼마만큼일까? 노숙 자체가 인권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부정하는 현실에서 노숙인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출발점은 어디일까?
“노숙인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라!” “노숙인의 건강권을 보장하라!” 우리는 그동안 노숙인들이 처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인권 항목을 들어 목소리를 높여왔다. 물론 이것이 지금도 게을리할 수 없는 중요한 활동임에는 틀림없으나 인권의 실현은 ‘구호로서 정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노숙인들의 일상에 개입하고 그곳에서 시작하는 인권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적 권리’를 화두로 삼기로 했다.
2005년 봄부터 진행된 ‘노숙인의 문화권 증진을 위한 월례 문화행동’을 시작으로 매주 ‘주말 배움터’가 진행되고 있다.
“하늘을 지붕 삼아 신문을 이불 삼아 거리에 둥지를 튼 나/ 멸시하는 시선 게으르다는 핀잔/ 억울한 내 목소리는 길바닥에 버려질 뿐/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는 걸 알아/ 그래 이제 노숙인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거리에 버려졌던 내 목소리로 힘차게 살아갈 거야.”
음악 수업 때 노숙인 학생들이 공동 작업으로 쓴 노랫말의 일부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교실 밖 수다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토론하며 조금씩 인권을 그들의 현실을 읽어내는 수단으로 삼아가고 있다.
올가을 학기부터는 민주적인 의사소통, 빈곤, 페미니즘, 장애인권 등으로 편성된 본격적인 ‘인권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적인 의사소통 교육을 통해 그동안 고통을 내면화하거나 자기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표현해왔던 문제를 성찰하게 했다. 또한 각자가 겪고 있는 빈곤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얘기하며, 빈곤에 맞선 권리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제부터는 성교육, 반성폭력에 대한 교육이 시작된다. 배움터의 학생들 중에는 과거 성폭력 가해자였던 이도 있고 피해자였던 이도 있기에 이 과정은 자신들의 아픈 경험과 만나는, 쉽지 않은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 스스로 주말 배움터란 공간을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소통할 수 있는 곳” “지금까지 살았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가는 곳”으로 인식하는 한, 분명 쓰지만 약이 되는 시간이 될 것이 틀림없다.
지금 주말 배움터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 교육과 함께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다. ‘노숙’이라는 극단의 인권침해 현장에서 시작된 인권 교육이 돌아갈 곳은 결국 다시 ‘노숙’이기 때문이다.
이동현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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