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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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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는 월급이다?

등록 2005-11-24 00:00 수정 2020-05-03 04:24

[조계완의 노동시대]

영화배우 등 특수직업 제외하고 취업과 임금에서 외모 따지는 건 차별
미국에서도 외모가 좋은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나쁜 노동자보다 임금 높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외모는 경제다!” 어느 성형외과 의사의 주장이다. 그는 외모 성형은 사치가 아니라 절박한 삶의 요구라고 말한다. 얘기인즉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유연화가 지배하는 노동시장에서는 일생 동안 직장을 여러 번 옮기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처럼 재취업을 반복해야 하는 시대에 외모는 경쟁력 있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유난히 ‘외모 콤플렉스’에 빠져드는 나라

‘키 160cm 이상 몸무게 50kg 이하 용모단정한 여성’이라고 쓴 취업공고판 앞에서 수차례 좌절하기 일쑤인 현실에서, 대졸 여성들의 성형 유행을 비뚤어진 사치라거나 ‘의식이 부패한 지성인’이라고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는 여성 근로자를 모집·채용함에 있어서 직무 수행에 필요로 하지 않는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등을 제시하거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만큼 외모 차별이 극심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외모 콤플렉스’에 빠져드는 나라도 드물다. 외모 가꾸기 열풍 속에서 ‘얼짱 현상’이 나타나고, 좀 덜 생긴 사람이나 ‘그런대로 견딜 만한’ 얼굴은 금세 주눅 든다.

외모는 콤플렉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력 및 생산성과 무관하게 취업과 임금에서 차별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동등한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임금·고용 기회에서 불평등 대우를 받는 것으로, 차별은 투명한 ‘유리천장’ 같은 것이어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좋은 외모를 갖지 못한 노동자는 임금도 적게 받고 승진 길도 막혀 있다.

물론 불합리한 차별이 아닌 ‘합리적 이유’로 외모에 따른 임금 격차가 있을 수도 있다. 외모가 생산성의 차이를 낳는 것인데, 영화배우의 좋은 외모는 관객을 몰리게 하고 고액 연봉을 약속하는 무형자산이 된다. 이처럼 영화배우·판매영업직·식당 종업원처럼 일반 대중을 상대하는 직종의 경우 좋은 외모를 가질수록 생산성이 더 높을 수 있다. 식당 손님들이 외모가 좋은 종업원한테 서비스를 받고 싶어할 경우, 주인은 “외모가 좋은 종업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건 단지 손님들의 선호를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일부 직업은 그 특성상 외모 차별이 어쩔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국에서 어느 텔레비전 뉴스 진행자는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시청자 조사결과 때문에 해고되기도 했다. 뉴스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꼭 아름다운 외모가 필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영화나 모델 시장 등 ‘글래머 산업’에서는 외모가 생산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외모 프리미엄’(Beauty Premium)이 지배한다. 외모 프리미엄은 좋은 외모가 생산성과 임금을 결정짓는 타고난 능력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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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좋은 외모가 주는 경제적 혜택은 얼마나 될까? 어느 직업에서나 젊고 예쁜 여성은 월급도 많이 받는 것일까? 미국의 하머메시 교수가 캐나다와 미국의 노동자들에 대한 소득·외모 설문조사 자료를 이용해 외모 프리미엄과 외모의 생산성을 분석한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응답자들의 외모를 아주 잘생긴 외모·평균 이상의 외모·평균적 외모·평균 이하의 외모·못생긴 외모 등 5개 랭킹으로 나눴는데, 학력·경력·나이 등 다른 조건은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평균 이상의 좋은 외모를 지녔다고 평가된 사람들은 평균적 외모를 지닌 사람들보다 대체로 5% 정도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평균적 외모를 지닌 사람들은 평균 이하의 외모를 지닌 사람들보다 5∼10% 정도 높은 소득을 얻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 노동자도 외모 차별 무시 못해

주목할 만한 건 이런 결과가 남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미국 남자 중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졌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평균적 외모를 가진 사람에 비해 4% 높은 임금을, 외모가 못생긴 사람은 평균 대비 9% 낮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모에 따른 임금 차별이 남성 노동자한테도 무시 못할 만큼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여자의 경우에는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진 경우 8%의 임금을 더 받고, 평균 이하의 외모를 지닌 여성은 4%가량 적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좋은 외모를 가진 사람일수록 외모가 생산성에 직접 영향을 주는 직업에 주로 고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외모가 생산성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은 직업·직종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로 외모에 따른 소득 차이가 있었다. 과연 관리직 종사자가 자신의 직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아름다운 외모가 필요한 것일까? 이 경우에는 생산성과 무관한 ‘순수한 외모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외모라는 타고난 재능은 공급은 제한돼 있는 반면 수요는 과잉이라서 발생하는 ‘경제적 지대’의 한 가지 형태일 수 있다. 아름다운 외모에 소비가 집중되면 그 외모를 지닌 노동자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특수한 직업들을 제외할 경우 외모에 따른 임금·고용 격차는 사회적 차별임이 분명하다. 소비자들이 매력 있는 외모를 지닌 종업원한테 서비스를 받고 싶어한다고 해서 외모에 따른 차별을 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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