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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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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파도 오니 천지...파묘보다 무서운 부남호 수질

[죽이는 정치, 사는 갯벌-상]
모두가 바라는 부남호 역간척, 왜 멈췄나
물 방류할 때면 ‘흙내’ 진동…어민들도 “역간척 필요”
등록 2024-03-16 01:05 수정 2024-03-22 11:11
태안군과 서산시 사이 천수만에 설치된 방조제. 위쪽 밝은 부분이 천수만 바다, 아래쪽 어두운 부분은 부남호다.

태안군과 서산시 사이 천수만에 설치된 방조제. 위쪽 밝은 부분이 천수만 바다, 아래쪽 어두운 부분은 부남호다.


퀴퀴한 냄새가 났다. 깊게 숨을 들이켜니 비린 흙내였다. 물이 가까워질수록 냄새는 짙어졌다. 충남 서산과 태안반도로 둘러싸인 천수만, 그 안쪽에 토끼 귀처럼 길게 뻗은 두 개의 호수가 있다. 태안군과 서산시 사이에 있는 왼쪽이 부남호, 오른쪽이 간월호다. 1980년대 방조제를 쌓아 이 두 개의 호수를 막았다. 이후 수질이 나빠졌다. 규모가 더 작은 부남호의 오염이 더 심하다.

<한겨레21>은 2024년 3월8일과 12일 두 차례 부남호를 찾았다. 8일 부남호 외곽을 돌았고, 12일엔 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충남연구원의 윤종주 기후변화대응연구센터장과 이상우 연구원이 동행했다. 이들은 2017년부터 주기적으로 부남호의 수질을 체크하고 있다. 이날 조사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처음 진행되는 것이었다.

40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오니’

약 1560㏊(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5배) 크기의 부남호는 세 구역으로 나뉜다. 가장 바깥쪽 천수만을 막는 방조제가 1982년 만들어졌고 이후 중간중간에 물관리를 위해 둑을 쌓았다. 방조제로부터 약 3㎞ 지점에 1차 둑이 있었다. 이 지점에서 보트를 탔다. 5분쯤 달려 방조제 수문 앞쪽에 도착했다. 보트가 멈추자 더욱 퀴퀴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상우 연구원이 표면의 물을 떴다. 투명한 컵에 누르스름한 물이 담겼다. 곧이어 채수기를 물속 깊숙이 넣었다. 수심 10m 깊이에서 끌어올린 물을 담자, 보트 위에 냄새가 확 퍼졌다. 이번엔 비리고 퀴퀴한 냄새가 아닌, 달걀 썩은내였다.

“유기물이 많으면 생물이 호흡하면서 저층 산소 농도가 줄어들거든요. 그런데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도 황산염을 환원하는 박테리아가 있어요. 이런 미생물에 의해 황이 수소와 만나 황화수소가 나오는데, 거기서 이런 냄새가 나요.” 이 연구원이 말했다. 황화수소는 흡입하면 질식할 수 있는 유독한 기체다. 부남호가 천수만에 방류되는 날이면 이 냄새가 인근 동네에 쫙 퍼진다.

이 연구원이 이번엔 채니기(강바닥을 떠내는 장치)를 넣었다. 10m 수심의 강바닥에서 퍼 올린 퇴적물이 채니기에 가득 담겼다. 새까만 오니(오염물질을 포함한 진흙)였다. 숟가락으로 휘젓자 더 까만 오니가 나왔다. 산소가 유입되지 않아 계속 썩었을 테다. 그 안에 생물은 없었다. “여기에 중금속 이런 게 있는 게 아니고요. 고농도의 오염 집약체라고 보면 돼요. 원래 밑에 모래나 자갈이 있어야 정상이죠. 이런 오니가 최대 1m는 쌓여 있어요.” 윤 센터장이 말했다.

방조제로부터 약 3㎞ 떨어진 곳에 있는 1차 둑을 넘어 부남호의 두 번째 구간으로 향했다. 표층과 저층 물에서 이전처럼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바닥에선 똑같이 새까만 오니가 올라왔다. “이런 것들(오니)은 다 깔려 있다고 보면 돼요. 이걸 파면서 1m 이상 내려가면 그때 흔히 아는 황토색 자갈층이 나와요.” 윤 센터장은 매년 오니의 깊이가 늘어난다고 했다. “바닥에 있는 오염원을 처리하지 않는 이상 1급수가 들어와도 결국 이런 물이 돼요. 파낸다고 해도 썩거든요. 결국엔 물이 흘러야 해요. 그래야 서서히 씻겨 내려갈 수 있어요.” 부남호 수질 개선에 매년 약 110억원(충남도 추산)이 투입되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

2024년 3월12일 충남 서산 부남호의 수질조사를 위해 충남연구원 연구진과 <한겨레21> 취재진이 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2024년 3월12일 충남 서산 부남호의 수질조사를 위해 충남연구원 연구진과 <한겨레21> 취재진이 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충남도에 따르면 부남호는 현재 8m까지는 담수, 8~16m는 밀물 때 수압으로 서서히 유입되는 해수가 정체돼 산소가 없는 해수층을 이룬다. 이 해수는 상층의 담수와 섞이지 않는다. 충남연구원이 2017년부터 수질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부남호의 수질은 화학적산소요구량(COD) 기준 6등급(매우 나쁨) 이상, 총유기탄소(TOC) 기준 5~6등급을 매번 기록했다. 농업용수는커녕 공업용수로도 쓰기 어려운 수질이다. 2020년 긴 장마로 부남호의 방류량이 많았을 때만 등급이 약간 내려갔다. 퇴적물 내 유기물 오염도도 준설사업 기준치인 4등급 수준이었다.

부남호 방조제 끝에 수문이 있지만, 수위 관리를 위해 부남호 내 물을 방류할 때만 열린다. 문이 열려도 밑바닥에 쌓인 오니가 흘러나가진 않는다. “부남호는 수문을 위에서 밑으로 내려서 작동하는 방식이거든요. 밑에서 빼면 퇴적물도 같이 나갈 텐데 그나마 덜 오염된 물이 나가는 거예요. 밑의 퇴적물은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이죠. 이 밑바닥의 오니는 40년 동안 쌓인 거라고 보면 돼요.”(윤종주 센터장)

이날 수집한 부남호 물과 바닥 퇴적물의 정밀조사 결과는 한 달여 뒤에 나올 예정이다. 다만 윤 센터장은 “부남호 수질은 이미 (나쁜) 수준을 넘어선 상태이고, 바닥에 있는 오니도 변함이 없다”며 “더 나빠졌는지는 지금 알 순 없지만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은 똑같다”고 덧붙였다.


물이 순환되는 최소 3년간 어민 보상해야

어민들은 부남호의 물이 빠져나올 때마다 진한 흙내가 난다고 토로한다. “여름에 진짜 비 많이 올 때 민물을 빼면 붕어도 많이 나오거든요. 그럼 흙내라고 있어요. 민물고기에서 나는 냄새거든요. 물 뺐을 때는 (천수만에서) 양식하는 숭어나 우럭에서 그 냄새가 나요.” 태안군 남면 당암리 어촌계장 김명순(67)씨가 말했다. 물로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흙내가 빠지지 않아 결국 관광객이나 손님이 피해를 본다는 게 어민들의 주장이다.

이곳 어민들은 주로 숭어와 우럭, 바지락 양식장을 한다. 처음부터 양식장이 활발하던 곳은 아니었다. 방조제가 생기면서 조류가 약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어민들이 양식을 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낚시꾼이 몰리는 곳이라 낚시터를 운영하는 어민도 꽤 된다. 부남호 방조제와 맞닿은 당암리와 서산시 부석면 창리에서 어업을 하는 이는 1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인근 간월도까지 더하면 150여 명이다. 이들의 걱정은 오로지 부남호 방류다.

부남호 방류는 비가 많이 오거나 수위가 높아지면 이뤄진다. 어촌계에 사전 통보를 하지만, 방류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김현진(52) 창리 어촌계장은 “방류된 물이 몰려와도 막을 방법은 없다”며 “그러려니 하면서 고기를 조금씩 죽여가며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어민들은 방조제 인근에서 때때로 발생하는 물고기 드의 집단폐사도 부남호 방류 때문이라고 본다. 특히 2020년 장마가 길었을 때 부남호의 방류량도 늘었는데 당시 양식하던 굴과 바지락이 집단폐사를 했다. 김명순씨는 “2020년에 물을 많이 빼서 피해가 컸다. 몇몇 어촌계에서 소송을 걸었는데 2024년 2월 (부남호 간척사업자이자 관리주체인) 현대로부터 약 40억원의 보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근방 어민들이 방류로 인한 보상을 받은 건 이 사례가 처음이다.

다만 매년 더 나빠지는 부남호 수질을 받아안아야 하는 처지라, 이들도 근본적으로는 부남호 수질 개선을 간절히 원한다. “제일 좋은 건 역간척을 하는 게 맞아요. 물이 순환되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몇 년 동안 오염이 개선되겠죠. 다만 그에 맞게 어민들에게 보상해줘야 해요. 이 앞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이 그래야 수긍하죠. 양식하는 사람들 최소한 3년은 못할 거 아닙니까. 그 많은 슬러지(침전물)가 내려오는데 고기가 남아나겠어요.” 인근에서 12년 동안 어업을 해온 박태욱(38)씨가 말했다.

사실 부남호 수질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지적된 문제다. 충남도도 이를 인지해 2015년부터 역간척을 추진했고, 양승조 충남도지사 시절인 2019년 부남호 역간척 기본계획을 세웠다. 2030년까지 2937억원을 투입해 하구 복원 사업을 벌이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2021년 역간척에 따른 해양환경영향을 분석하고, 정부의 국가계획에도 역간척 사업이 반영됐지만 정권이 바뀌고 도지사가 바뀐 이후 진행이 잘 되지 않고 있다. 

2024년 3월12일 충남연구원 이상우 연구원이 부남호에 쌓인 퇴적물을 채니기를 통해 끌어올리고 있다. 이 퇴적물에선 산소가 없어 달걀 썩은내가 난다.

2024년 3월12일 충남연구원 이상우 연구원이 부남호에 쌓인 퇴적물을 채니기를 통해 끌어올리고 있다. 이 퇴적물에선 산소가 없어 달걀 썩은내가 난다.


어민 설득·분석까지 마쳤는데 계속 타당성조사만

역간척 사업의 핵심은 네덜란드의 휘어스호 사례처럼 방조제에 터널을 뚫어 해수를 조금씩 유통해 수질을 개선하고, 통선문을 설치해 배가 안쪽으로 드나들도록 하는 것이다. 충남도는 당시 환경단체나 군, 정부와 함께 논의해 사업을 발전시켰고 역간척에 따른 영향분석 용역도 맡겼다. 2020년엔 생태지평연구소와 함께 역간척 추진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도 열었다. 서산시와 태안군, 환경단체도 한데 모였다. 생태지평연구소와 연이 있는 독일의 갯벌 전문가 아돌프 켈러만 박사가 해안선 복원과 관련한 발표를 한 것도 이때다.

부남호 역간척 논의에 참여했던 전승수 전남대 명예교수(현 생태지평연구소 이사장)는 이렇게 말했다. “부남호 계획을 3년으로 잡았거든요. 해수 유통을 2천 번 정도 하는 거예요. 조금씩 해수 유통을 늘리면 수질은 개선되면서 인근에 피해를 안 줄 수 있어요. 통선문을 만들면 태풍 때 어선을 부남호 안쪽으로 대피시킬 수도 있고요. 당시 어민들도 많이 반대했는데 이런 것을 설명해서 다 동의했어요.” 그는 실제 충남도의 부탁을 받아 여러 차례 어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도 직접 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2021년 7월 펴낸 ‘부남호 역간척에 따른 해양환경 영향분석 및 대응방안 마련 연구’ 보고서에도 비슷한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는 “부남호는 30년 이상 누적 오염에 의하여 저층수는 COD가 약 200㎎/ℓ로 심하게 오염이 진행된 상태이고, 이는 전체 부남호 전체 물량의 4분의 1 수준인 2500만t 정도”라며 “최대 100m×3m 해수 유통 터널을 설치해 부남호 저층수를 하루 5만t으로 유출시킬 경우, 천수만 최내측 영향은 없다. 배출시 빠르게 희석되어 천수만 배경농도로 유지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부남호 역간척은 타당성조사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22년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엔 반영됐지만 같은 해 타당성 기술 검토회의만 열렸고, 이후 관련 토론회만 한 번 열린 게 전부다. 충남도는 2024년 정부 차원의 생태복원 타당성조사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논의에 참여했던 어민들이나 환경단체 쪽에선 도지사가 바뀐 뒤 확실히 태도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충남도 해양수산정책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는 박태욱씨는 “안 그래도 도지사가 바뀌고 나서 역간척을 알아봤는데 전혀 언급이 없는 상태”라며 “2023년 회의할 때도 공무원들에게 (역간척 사업 추진 현황을) 물었는데 들은 게 없다고 했다. 양승조 도지사 때 추진하던 담당 공무원들도 인사가 나서 다 바뀐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민들 입장에서도 역간척을 하면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아쉽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얘기가 쏙 들어갈 수 있느냐”고 덧붙였다.

다만 충남도 입장에선 중앙정부가 좀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윤 센터장은 “충남도도 분명 역간척을 할 의지는 있다. 그런데 솔직히 해양수산부가 좀더 강하게 나가줘야 한다. 우리 입장에선 역간척 계획을 올려도 결국 사업주체는 국가이기 때문”이라며 “해수부가 전방위로 지원해줘야 하는데 전례 없는 사업이다보니 부남호 역간척 같은 큰 사업을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둑으로 막힌 하구 생태계는 부남호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규모를 더 넓혀보면 낙동강과 금강, 영산강 등 우리나라의 대형 하구들도 둑이 생기면서 생태계가 점차 파괴됐다. 다른 하구의 상황은 어떨까. 해수 유통이 전혀 되지 않는 부남호와 달리 적은 양이나마 유통을 시작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여기도 정권이 바뀌고 해수 유통 확대가 막힌 건 마찬가지였다.

서산(충남)=글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죽이는 정치, 사는 갯벌-하]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52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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