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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랑캐] 윤석열 정부는 더이상 청와대에 손대지 마라

윤석열 대통령 용산으로 대통령실 옮기고도 이틀에 한 번씩 영빈관이나 상춘재 사용
등록 2023-10-21 03:18 수정 2024-02-13 02:42
2022년 5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열린 개방 행사에서 시민들이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년 5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열린 개방 행사에서 시민들이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년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긴 이유는 아직까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역대 정부에서 청와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은 많았지만, 어떤 대통령도 이렇게 무리하고 성급하게 대통령실 이전을 추진하진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통령실이 갖는 무게와 대통령실 옮기기의 어려움을 모두 고려했다.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긴 이유는 무엇?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일단 청와대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 국방부 청사로 들어갔다. 검토와 결정, 준비, 집행에 최소한 몇 년을 들여야 할 일을 불과 두 달 만에 결정하고 집행해버렸다. 지난 74년 동안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가꿔온 청와대의 인프라와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버려졌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통령실 이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이유로 눈을 돌렸다. 예를 들어 윤 대통령의 지인인 역술인 천공이 유튜브에서 “용산은 수도 서울의 최고의 땅이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와야 한다”고 말한 것이 주목받았다. 또 대통령 관저 후보지였던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방문한 백재권 풍수학자가 <중앙일보> 칼럼에서 “남산의 철탑(N서울타워)이 살기를 분출해 청와대 주인이 큰 화를 입는다”고 쓴 것이 숨겨진 이유가 아닐까 의심했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옮긴 뒤 청와대는 관광지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이병훈 의원이 공개한 문화체육관광부 자료를 보면, 청와대를 방문한 사람은 2022년 228만 명, 2023년 8월까지 123만 명이었다. 국내 관광지 가운데 꽤 많은 편이다. 다만 관광객 수는 2022년 5월 57만 명에서 2022년 8월 11만 명으로 줄었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청와대는 대통령이 일하기 위한 공간이고, 청와대의 매력은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없는 청와대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대통령실 이전의 명분을 찾다보니 애초 용도에 맞지 않는 일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74년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실과 관저로 사용된 청와대를 하루아침에 관광지로 만든 결정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대통령실을 옮기려면 이유가 무엇인지, 어디로 옮길지, 청와대는 어떻게 재활용할지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도 대통령실은 청와대에 있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지난 70년 동안 대통령실로 쓰기 위해 모든 시스템을 갖춰왔다. 집무실과 비서실, 경호실, 영빈관, 춘추관, 관저뿐 아니라 국군서울지구병원도 바로 옆에 있다. 북악산이나 인왕산 등 천혜의 방어벽이 있고 주변 건물이 낮아서 군사적으로도 매우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대통령실 이전은 이런 필수적인 검토 과정을 모두 건너뛰었다. 대통령 당선 열흘 만에 이전 지역을 결정했고, 그 뒤 50일 만에 수리와 이사를 마쳤다. 역사상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날림 결정과 집행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2022년 5월1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현관 이마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무늬가 설치돼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2022년 5월1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현관 이마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무늬가 설치돼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민에게 돌려준다면서 대통령실은 맘대로 쓰도록 개정

 

그리고 1년5개월이 지났다. 현재 청와대엔 많은 문제가 쌓여 있다. 먼저 청와대의 일부 공간은 여전히 대통령실에서 사용한다. 이병훈 의원이 공개한 문체부 자료를 보면, 2022년 12월부터 2023년 8월 말까지 대통령실의 영빈관·상춘재 사용일수는 110일이었다. 이는 윤 대통령이 국내에 있었던 236일 중 46.6%에 이른다. 이틀에 한 번씩 영빈관이나 상춘재를 사용한 것이다.

이병훈 의원은 “청와대를 완전 개방해서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했지만, 이렇게 자주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2023년 5월 ‘청와대 관람 운영 규정’을 개정해서 대통령실은 사전 신청과 허가 없이도 청와대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럴 거면 왜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도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영빈관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하다. 대통령이 길에서 시간과 비용을 버리니 얼마나 아까운가. 청와대는 대통령이 업무를 보기 위한 모든 시설이 완벽히 갖춰져 있었다”고 말했다.

둘째 문제는 기존 청와대에 계속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한병도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문화재청은 2022~2023년 청와대 관리와 운영 등에 314억3200만원, 문체부는 2023년 청와대 활용 예산으로 227억5500만원을 편성했다. 또 문체부는 2024년 예산으로 330억원을 편성했다. 이것만 해도 이미 871억원이다. 여기엔 아직 손대지 않은 비서동, 경호동을 리모델링하기 위한 2024~2025년 예산 176억원도 포함됐다. 이 밖에 문체부는 청와대 재단도 새로 만들겠다고 한다.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데 든 517억~864억원은 별도다. 예산 먹는 하마다.

더 늦기 전에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먼저 정부는 청와대와 용산 대통령실의 시설에 대한 투자를 중단해야 한다. 민주당은 2024년 예산 심의에서 관련 예산을 모두 삭감해야 한다. 이와 함께 여야는 장래의 대통령실을 어디에 둘지 논의해야 한다. 지금 여야 간에 논의하기 어렵다면 이 문제를 다음 대통령에게 넘기는 게 타당하다.

윤건영 의원은 “대통령실 이전 문제에 대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공론 조사도 하고 위치도 검토하고 백년대계를 함께 세우면 좋겠다. 그게 어렵다면 다음 대선에서 후보들이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민주당 후보들은 당연히 제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용산 이전 재검토 아직도 늦지 않아

 

윤 대통령의 실패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부터 시작됐다는 의견이 많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재검토한다면 그동안의 여러 잘못을 바로잡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게 윤 대통령이나, 다음 대통령이나, 대한민국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그게 퇴임 뒤 다른 대통령에 의해 자신의 잘못이 바로잡히는 일보다 훨씬 더 나을 것이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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