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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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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랑캐] 어떤 정치는 사람을 살리고, 어떤 정치는 죽이는가?

문재인 정부서 과거 경찰 폭력 밝히고 사과했으나…윤석열 정부서 점점 더 강경해지는 경찰 대응
등록 2023-06-09 23:27 수정 2024-02-13 02:50
2009년 8월5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조립3·4공장 옥상에서 파업 중이던 노조원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있다. 이 파업 진압 뒤 30명이 넘는 노동자와 사건 관계자들이 이 사건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2009년 8월5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조립3·4공장 옥상에서 파업 중이던 노조원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있다. 이 파업 진압 뒤 30명이 넘는 노동자와 사건 관계자들이 이 사건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2019년 7월26일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은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유남영, 이하 진상조사위)의 최종 보고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 경찰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남용되어서는 안 되며, 절제된 가운데 행사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확인됐고, 원칙과 기준이 흔들리기도 했으며, 인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족했던 점을 인정한다. 그로 인해 국민이 생명을 잃거나 다치는 등 고통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경찰관도 희생되는 등 아픔도 있었다.”

 

2019년 민갑룡 경찰청장, `경찰력 남용’ 사과

 

2017~2019년 활동한 진상조사위가 다룬 사건은 △쌍용차 노동자 파업 과잉 진압 사건 △용산 참사 과잉 진압 사건 △백남기 농민 과잉 진압 사망 사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관련 사건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관련 사건 등 10건이었다. 당시 경찰은 쌍용차 노동자에 대한 가압류를 모두 푸는 등 진상조사위의 권고 35개 가운데 27개를 이행했다. 또 민 청장은 경찰 인권 침해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을 만나 사과했다.

당시 경찰이 조사하고 사과한 사건은 주로 경찰이 집회나 시위, 농성, 파업, 반대 운동 등을 과잉 대응하거나 진압하다가 시민들의 피해가 생긴 것이었다. 예를 들어 용산 참사는 재개발 철거민 32명이 2009년 1월19일 서울 용산구 남일당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시작하자 불과 하루 만에 경찰이 특공대를 투입해 강제 진압하려다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특공대원 1명이 죽고, 철거민 9명과 특공대원 21명이 다친 사건이다.

쌍용차 파업은 회사 쪽의 해고 등 구조조정 계획에 반대해 2009년 5월21일 쌍용차 노조가 전면 파업에 들어가자, 8월4~5일 경찰이 특공대와 기동대를 동원해 진압한 사건이다. 이 진압으로 노조원 90여 명이 체포, 구속됐으며, 경찰관도 100명 이상 다쳤다. 파업이 진압된 뒤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 30명 이상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이 사건의 후유증으로 숨졌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은 2015년 11월14일 1차 민중 총궐기 시위에서 경찰이 농민 백남기씨의 얼굴에 물대포를 쏴서 백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사건이다. 2016년 무의식 상태였던 백씨가 10개월 만에 숨지자 경찰은 백씨의 사망 원인을 밝혀야 한다며 부검을 시도하다 유가족, 시민 활동가들과 충돌했다.

이들 사건에서 정부는 이른바 ‘경찰력’이라는 ‘합법적 국가폭력 수단’(공권력)을 무리하게 사용하다 시민과 사회에 큰 상처를 입혔다. 이들 사건 피해자들과 관계자들은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다행히 진상조사위가 2년 동안 활동하면서 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어느 정도 치유하는 듯했다.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4구역 철거민들이 용산구 한강로 3가 남일당 건물에 들어온 경찰의 강제 진압에 저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김명진 기자.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4구역 철거민들이 용산구 한강로 3가 남일당 건물에 들어온 경찰의 강제 진압에 저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김명진 기자.


 

밤과 출퇴근 시간 집회 금지라는 무리수 추진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경찰 폭력’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 최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2023년 5월16~17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노숙 집회’를 계기로 대통령과 여당, 경찰청에서 쏟아내는 강경한 집회·시위 대응이다. 5월18일 경찰은 전면 수사에 나섰고, 5월22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불법 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를 제한하고 야간 불법 집회를 해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여당인 국민의힘도 밤 12시~아침 6시와 출퇴근 시간에 도심에서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5월23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고 공공질서를 무너뜨린 민노총(민주노총)의 집회 행태는 국민이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정부는 그 어떤 불법 행위도 이를 방치 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과 관계 공무원들은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자 바로 그날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비경찰 동료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적극적 법 집행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본인의 신청이 없더라도 적극행정면책 심사위원회를 개최하고 적극행정으로 결정시 징계 요구 없이 즉시 면책하도록 하겠다.”

심지어 윤 청장은 5월31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열린 경비대책회의에 기동복(집회·시위 때 입는 진압복)을 입고 나타났다. 바로 이날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의 지상 7m 높이 농성장에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하던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이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머리가 찢어졌다.

대통령과 경찰청장이 강경 대응을 지시한다면 집회·시위 현장에선 경찰관이 더 강경한 대응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 경찰 간부는 “집회·시위 현장에선 상호 간에 기본적인 적대감이 있다. 이번처럼 지휘부의 메시지가 강하게 나오면 대응 수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그러다가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경찰의 무리한 대응은 비극적 사고로 이어졌다. 벌써 많은 이가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인한 또 다른 ‘사고’를 우려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용우 노동위원장은 “민주노총 강원건설지부 양회동 지대장도 윤석열 정부의 노동자 탄압에 맞서다가 분신했다. 추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3년 5월31일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의 7m 높이 구조물에서 농성을 벌이던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에게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고 있다. 한국노총 동영상 갈무리.

2023년 5월31일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의 7m 높이 구조물에서 농성을 벌이던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에게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고 있다. 한국노총 동영상 갈무리.


 

미국서도 보수 정부 때 살인과 자살 더 많아져

 

보수 정부가 사회를 이렇듯 위험하게 만드는 일은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미국 뉴욕대학 정신과 교수인 제임스 길리건은 책 <위험한 정치인>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1900~2007년 미국에서 공화당이 집권한 59년 동안 살인과 자살 사건이 10만 명당 19.9명 늘어났고, 민주당이 집권한 48년 동안 10만 명당 18.3명이 줄었다. 길리건은 그 이유로 보수 정부에서 불평등과 실업, 폭력이 더 많아지며 이것이 살인과 자살의 원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어떨까? 먼저 유엔마약범죄사무소가 발표한 한국의 살인 건수를 보면 김영삼 정부(1993~1997년) 때 1년 평균 256명이던 것이 김대중 정부(1998~2002년) 382명, 노무현 정부(2003~2007년) 413명, 이명박 정부(2008~2012년) 457명까지 올랐다. 그 뒤 박근혜 정부(2013~2016년) 365명, 문재인 정부(2017~2021년) 297명으로 다시 김대중 정부 이전 수준으로 내려갔다.

또 통계청의 10만 명당 자살률 통계를 보면, 김영삼 정부 시절 1년 평균 11.2명이었다가 김대중 정부 16.0명, 노무현 정부 23.7명, 이명박 정부 29.6명까지 올랐다. 그 뒤 박근혜 정부 27.0명, 문재인 정부 25.9명으로 조금 내려갔다. 한국은 살인과 자살 통계에서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외환위기가 본격화한 1998년부터 살인 건수와 자살률이 치솟았다. 둘째, 살인 건수와 자살률 모두 이명박 정부에서 최고점을 찍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일관되게 친기업, 반노조적 태도를 보여왔다. 이런 태도는 자칫 노동계와 불필요한 마찰과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기업에 대해 “정부가 기업이다”(2022년 6월16일), “(대통령이)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2023년 1월18일) 등 우호적 발언을 했다. 그러나 노조에 대해선 “건폭”(건설 현장의 노조 폭력, 2023년 2월21일), “귀족 강성 노조”(2023년 1월1일) 등 적대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는 바뀔 수 있을까?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반노조적 생각은 윤 대통령의 철학이다. 기업이나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노조라는 결사체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상호 서원대 교수(정치학)는 “윤 대통령은 영국의 마거릿 대처 같은 강한 우파 리더십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노조에 대한 반감을 선동해 지지율을 올리려는 우파 포퓰리즘 성격도 있다”고 평가했다.

 

“내년 총선까지 반노조 강경 태도 그대로 갈 것”

 

그렇다면 이런 태도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관후 건국대 교수(정치학)는 “내년 총선까지는 그대로 갈 것이다. 이런 태도가 윤 대통령의 이념이나 신념이고, 보수 유권자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나름 합리적 선택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2024년 4월 총선까지가 걱정된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오랑캐처럼 자유로운 눈으로 세상사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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