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텅 빈 방, 기묘한 입성


정권 이양 기간에 컴퓨터부터 서랍까지 싹 비우는 대통령 집무실…
인수인계와 자료보존을 둘러싼 신경전
등록 2009-02-06 15:57 수정 2020-05-03 04:25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2009년 1월20일 아침 8시35분, 버락 오바마 새 대통령 부부가 백악관에 도착했다. 이제 곧 전직이 될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와 티타임을 가진 뒤 취임식이 열리는 의사당으로 함께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오바마는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Oval Office)에서 10분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집무실 책상에 놓인 부시의 편지를 읽었다. 봉투엔 ‘#43이 #44에게’(43대 대통령 조지 부시가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에게 쓴 편지라는 뜻)라고 적혀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이 1989년 백악관을 떠나며 후임 대통령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에게 짧은 편지를 남긴 이후, 전임이 후임에게 편지를 남기는 건 관례가 됐다. 편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새 대통령의 행운을 비는 내용일 것으로 언론은 추측했다.

책상 위엔 ‘부시의 편지’뿐

대통령 취임일인 1월20일 오전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새 대통령에게 남긴 편지가 놓여 있다. 이 편지는 부시가 오바마에게 인수인계한 유일한 ‘문서’다. REUTERS/  THE WHITE HOUSE

대통령 취임일인 1월20일 오전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새 대통령에게 남긴 편지가 놓여 있다. 이 편지는 부시가 오바마에게 인수인계한 유일한 ‘문서’다. REUTERS/ THE WHITE HOUSE

이 편지는 정권 이양 기간에 부시가 오바마에게 남긴 유일한 ‘문서’였다. 편지 외엔, 전임은 후임 대통령에게 어떤 문건도 넘겨주지 않는 게 백악관 인수인계의 전통이다. 8년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을 도왔던 조슈아 볼턴(부시의 마지막 백악관 비서실장)은 “백악관 입성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사무실엔) 종이도 없고, 책도 없고, 내용물이 완전히 빈 데스크톱 컴퓨터만 놓여 있다. 전화는 있지만 전화번호부는 찾을 수 없다”고 표현했다. 대통령이 바뀌는 순간, 백악관의 모든 문서와 기록은 지워진다. 국가안보회의(NSC)가 관장하는 일부 중요한 안보 문건만이 예외일 뿐이다. 부시 정권 8년간 생산된 수백만 건의 기록과 문서는 이미 부시 도서관이 세워질 텍사스 루이빌의 대형 창고로 옮겨졌다.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은 수백 대의 백악관 컴퓨터에서 자료를 복사해 텍사스로 옮긴 뒤 하드디스크를 새로 포맷했다. 사무실에 남아 있던 서류나 작은 메모종이까지도 NARA 직원들이 수거했다. 1978년 제정된 대통령기록물법(Presidential Records Act)에 따른 조치다.

이 법에 따르면, 전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자료와 기록을 모두 국가에 넘기고 백악관의 서랍과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깨끗이 비워야 한다. 재임 중 기록은 국민 재산이지, 대통령 개인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란 인식에서다. 백악관 컴퓨터를 깨끗이 비우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선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있다. 하지만 기록을 모두 국가에 넘기고 차기 행정부엔 넘겨주지 않는다는 규정은, 적어도 전임 정권과 후임 정권 간에 인수인계 범위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 여지를 없앤다는 장점은 있다. 후임 대통령으로선 아무것도 인계받지 않는 게 정상이고, 뭔가를 인계받으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텅 빈 컴퓨터와 서류함을 갖고 새 대통령은 어떻게 업무를 시작할 수 있을까. 번거롭지만, 각 부처에서 서류와 보고서를 다시 받으면 된다. 이건 한국과 미국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극히 일부 매뉴얼을 제외하곤 청와대 서류함과 컴퓨터는 텅텅 빈 채로 넘겨졌다. 현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2008년 2월25일 청와대에 들어와보니, 모든 게 깨끗했다. 사무실에서 발견한 유일한 책자는 해당 비서관실의 업무 목록을 다룬 매뉴얼 한 권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에서 내가 관리하던 파일을 고스란히 청와대로 옮겨서 그나마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권 교체가 아니라 재창출이 되더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노무현 청와대의 핵심 인사는 “김대중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건 청와대 비서실 업무규정집 단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그에 비하면 우리는 많은 걸 (이명박 청와대에) 넘겨줬다. (청와대의 온라인 업무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 관리 매뉴얼과 5만여 건의 문서, 77권의 정책보고서를 넘겼다. 이지원 관리 매뉴얼은 대통령용과 수석비서관용, 일반 행정관용으로 각각 나눠 수십 부씩 만들어 인계했다. 대통령용 매뉴얼은 눈이 피로하지 않게 다른 매뉴얼보다 크게 작성했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인 전직 대통령 자료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인 전직 대통령 자료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전부 삭제되는 청와대 전자우편

청와대든 백악관이든 깨끗이 비워진 컴퓨터와 서랍을 순식간에 다시 채우는 건 관료의 몫이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의 박진우 정책운영과장은 “청와대 기록물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부처에서 올라온 보고서와 청와대에서 직접 생산한 보고서다. 직접 생산한 보고서는 대개 부처 보고서를 요점 정리하거나 해당 비서관실 의견을 첨가한 것들이다. 이들 자료는 모두 부처에 원보고서가 보관돼 있기 때문에 다시 보충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쨌든 번거로운 작업을 다시 해야 하는 문제는 남는다. 미국의 대통령학 연구자인 마사 조인트 쿠마르 교수(메릴랜드 타우슨대학)는 “새로 백악관에 입성하는 대통령이 일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일부 자료들은 신임 행정부에 직접 넘겨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미국 NARA에 넘겨야 하는 문서 목록엔 백악관 도메인을 사용하는 전자우편도 포함된다. 2001년 백악관 주인이 빌 클린턴에서 조지 부시로 바뀔 때엔, 클린턴 백악관 8년의 전자우편 4천만 통이 NARA으로 넘겨졌다. 백악관 시스템을 거친 전자우편은 비록 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국가 재산으로 본다는 뜻이다. 조지 부시 백악관의 고위관리들은 이 규정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사적 전자우편은 물론이고 업무용 전자우편까지 백악관 도메인이 아닌 공화당 도메인을 활용해 주고받았다. 부시의 최측근이던 칼 로브가 주고받은 전자우편의 95%는 공화당 도메인을 사용한 것이었다. 나중에 혹시 문제가 될 때 NARA의 전자우편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식으로 사라진 백악관 전자우편이 500만 통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시민단체들은 “백악관 관리들이 업무 전자우편을 민간 도메인을 사용해 주고받은 건 대통령 기록물을 임의로 폐기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워싱턴 연방법원의 강제 명령으로, 부시 대통령 퇴임 일주일 전에 사라진 전자우편은 모두 복구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청와대 전자우편은 그냥 삭제될 뿐 대통령기록관에 보존되지 않는다. “전자우편을 제외하는 건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라는 게 대통령기록관 쪽 설명이다.

미국 대통령의 재임 중 기록은 대통령 개인 도서관에 보관된다. 도서관 건립(대개 도서관과 기념관이 함께 지어진다)은 대통령 후원자들의 모금으로 이뤄지지만, 운영과 관리는 국가가 맡아서 한다. 기록관은 대통령 개인의 것이지만, 거기에 소장된 자료는 국가 재산이란 인식의 발현이다. 이런 전통은 1939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서부터 시작됐다. 루스벨트는 뉴욕 하이드파크의 자기 땅에, 친구들의 재정적 도움으로 기념관과 도서관을 지었다. 그리고 재임 중 기록들을 전부 여기로 옮긴 뒤 국가에 기증했다. 루스벨트 이전의 대통령들은 퇴임할 때 재임 중 기록을 사적으로 가지고 나갔다. 공공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지만 때론 돈을 벌기 위해 팔기도 했다. 고의로 귀중한 자료들을 없애는 일도 적지 않았다. 루스벨트가 세운 새 전통은 1978년 대통령기록물법 제정으로 법제화됐다. 이젠 재임 중 기록을 개인적으로 가지고 나가는 건 범죄에 해당한다.

청와대 기록물을 둘러싼 전·현 정권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7월19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의 김경수 비서관이 봉하마을 사저에 있던 기록물을 반납하기 위해 경기 성남시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다. 연합

청와대 기록물을 둘러싼 전·현 정권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7월19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의 김경수 비서관이 봉하마을 사저에 있던 기록물을 반납하기 위해 경기 성남시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다. 연합

우리나라에선 노무현 정부 들어 비로소 모든 청와대 기록들을 대통령기록원으로 넘기는 게 법제화됐다. 2007년 제정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청와대에 통치사료비서관을 둔 건 전두환 대통령 때부터지만, ‘통치사료’는 국가기록원에도 후임 정권에도 넘겨지지 않았다. 중요 자료들은 퇴임 때 가지고 나가거나 고의로 폐기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제정된 공공기록물관리법이 ‘대통령 기록물’의 개념을 새로 정립했다. 이 법을 만든 뒤 당시 청와대는 과거 대통령 사료들까지 수집해 정리하려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통치사료비서관을 지낸 정은성씨는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에 들어가니 전임 대통령 기록이라곤 마이크를 사용해 녹음된 공식 연설 외엔 남은 게 하나도 없었다. 대통령 주재 회의나 외부 인사 면담 자료조차 사라졌다. 그래서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세 전직 대통령의 비서관을 만나 ‘대통령 관련 자료를 넘겨달라. 넘겨주면 디지털화해 원본과 복사본을 다시 보내주겠다’고 했다. 세 전직 대통령 모두 ‘남아 있는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정씨는 “전직 대통령들이 자료를 일부러 감추는 측면도 있겠지만, 정부의 관리 부실로 숱한 자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측면이 더 크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육성 녹음’도 적극적

현재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김대중 대통령 자료는 20만여 건. 이전 대통령 자료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분량이다. 대통령기록관 박진우 정책운영과장은 “비공개 회의 등에서 이뤄진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자료’(대통령의 육성 발언)도 상당히 넘어왔다. 그 이전 대통령의 발언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통령 육성 발언이 중요한 건, 정책이나 주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판단 근거와 내적 심리를 솔직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청와대 참모들의 입을 빌려 ‘대통령은 이러저러한 판단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식의 보도를 하지만, 그 보도가 얼마나 사실에 근접하는지는 알 수 없다. 참모들은 대개 좋은 표현만 골라 대통령 결정의 합리성을 치장하려 애쓴다. 대통령 육성 발언은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키를 제공한다. 공개 발언 이외의 대통령 발언이 모두 ‘지정기록물’로 분류돼 일정 기간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건 이런 민감성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식 행사뿐 아니라 비공식 행사의 발언까지 거의 모두 대통령기록관에 넘겼다. 스스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만들 정도로 자료 보존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그는 육성 녹음 자료들을 넘기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박진우 과장은 “관저와 집무실에서의 발언은 일부 사적 영역이 있어 제외된 것 같지만 그래도 분량이 워낙 방대하다. 정리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넘긴 자료 중엔 주요 정책 보고서와 인사 관련 기록도 포함됐다. 박진우 과장은 “매일매일 청와대에 올라온 국정원과 경찰청 보고서도 많은 양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민감한 정책 보고서는 일부를 제외하곤 남기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는 “국정기록비서관실(과거의 통치사료비서관실)에 대형 금고가 하나 있었는데, 이 금고에 김대중 정부 시절의 국가안보 관련 사안이나 중요 정책 보고서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아마 이런 방식으로 차기 정부에 필요한 내용들을 넘긴 것 같았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과 함께 이 자료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됐다”고 밝혔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관에 넘긴 자료는 825만여 건에 이른다. 그런 그가 퇴임 이후, 자료를 사적으로 활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건 아이로니컬하다. 이 중 일정 기간이 지나야 볼 수 있는 ‘지정기록물’ 비율은 5%. 이 5%를 둘러싼 전·현직 정권의 공방이 지난해 초 뜨겁게 달아올랐다. 미국에선 1978년 대통령기록물법이 제정된 뒤 후임 정권이 전임 정권의 비공개 자료를 열람한 사례가 없다. 우리는 지난해에만 법원 영장과 국회의 요구로 두 차례나 비공개 자료가 누군가에게 보여졌다. 조선시대 사초(史草)처럼 먼 훗날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민의 알 권리 및 정부 업무의 연속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 사이에서 청와대 기록물 논란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pc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