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취임식을 앞두고 고향 조지아에서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에어포스원에 탑승했을 때”를 꼽았다. 대다수 대통령들의 대답은 똑같다. 에어포스원에 처음 오르면서 대통령이 됐다는 걸 실감하고, 마지막 비행에서 에어포스원을 내려서면서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감을 깨닫는다. 대통령 전용기를 가리키는 ‘에어포스원’(Air Force One)은 단순한 이동수단을 뛰어넘었다. 할리우드가 영화 에서 보여준 건, 미국의 ‘힘’이었다. 1998년 과거 대통령들이 타던 에어포스원(보잉 707-353B) 퇴역식에서,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은 “만약 역사가 날개를 갖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이 비행기의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에어포스원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비행 실패를 한 적이 없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처럼 테러 공격을 받는 건 아직까진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웬만한 악천후에도 에어포스원은 예정지에 그대로 내려앉는다. 조지 부시(아버지) 대통령은 “에어포스원은 연착도, 취소도 없다. 언제 어디서나 정확하게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준다”고 말했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때 기착지는 앤드루스 공군기지였다. 당시 앤드루스 기지엔 초속 13~14m의 강풍이 불었다. 김 대통령을 태운 보잉 747 전세기는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우회하려 했다. 그러나 기지 관제탑은 우리 전세기가 덜레스로 방향을 돌리는 걸 불허했다. ‘곧 부시 대통령을 태운 에어포스원도 여기에 내린다. 부시도 내리는데, 한국 대통령은 왜 못 내리느냐.’ 결국 우리 민항기는 바람을 비스듬히 받으면서 무사히 착륙했고, 몇 시간 뒤 미국 에어포스원도 똑같은 지점에 내려앉았다.
실패는 없지만, 에어포스원은 두 차례 아픈 역사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1960년 11월 텍사스 달라스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싣고 간 건 에어포스원 보잉 707-353B였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 에어포스원은 그의 관을 싣고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워싱턴 귀환 도중에 기내에선 린든 B. 존슨 부통령이 헌법에 손을 얹고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전직 대통령의 주검과 현직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에 같이 탄 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에어포스원은 관제탑에서 대통령이 탄 비행기를 부르는 ‘콜사인’(Call Sign)이다. 대개 전용기가 에어포스원이 되지만, 때로 대통령이 다른 비행기로 옮겨타면 에어포스원 콜사인은 바뀐다. 1974년 8월9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을 사임한 리처드 닉슨은 에어포스원을 타고 고향인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조종사 랠프 앨버타치 대령은 미주리주의 3만9천 피트 상공에서 새 대통령 제럴드 포드의 취임선서를 들었다. 그는 곧바로 무전기를 잡고 캔자스시티 공항 관제센터와 통화했다. “이제 이 비행기의 콜사인을 ‘에어포스원’에서 ‘SAM 27000’으로 변경한다.” “알았다. SAM 27000.” 비행 중 에어포스원의 자격을 잃은 첫 사례였다.
핵폭발 충격에도 끄덕 없어지금 미국 대통령이 타는 에어포스원은 보잉 747-200B 2대. 한 대가 대통령을 싣고 가면, 다른 한 대는 보조인력과 기자단을 싣고 ‘백업 비행기’로 따라간다. 에어포스원은 일반 보잉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에어포스원을 특별하게 하는 건 수많은 특수 기능들이다. 에어포스원에 장착된 특수 장비들은 미 공군의 1급 비밀이다. 열추적 미사일을 피할 수 있는 특수 엔진과 미사일 회피 시스템(Anti-Missile System), 핵폭발의 전자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기능, 전세계 어디와도 즉각 통신이 가능한 커뮤니케이션 센터,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장비 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 상황에선 착륙하지 않고 계속 상공에 떠 있을 수 있도록, 공중급유를 받을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미 공군은 영화 이 개봉된 뒤 “영화처럼 대통령이 비상탈출할 수 있는 캡슐을 장착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이 전세계 누구와도 도청당하지 않고 통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에어포스원 3층의 커뮤니케이션 센터엔 87대의 일반 전화와 28대의 비선 전화가 놓여 있다. 미 공군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휴대전화에도 전화를 걸 수 있다. 통화 감도는 바로 옆방에서 전화를 거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선거 때마다 에어포스원은 논란에 휩싸인다. 현직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을 훌륭한 선거운동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 연방선거위원회 규정엔 공무가 아닌 개인의 정치적 활동을 위해 에어포스원을 사용하면, 대통령과 동승한 정치권 인사들은 탑승료를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Official Trip)와 정치적 활동(Political Trip)의 경계는 극히 모호하다. 2004년 대선 때 조지 부시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이 에어포스원을 정치 활동에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백악관은 “연방선거위원회 규정과 과거 관례에 따라 공무 여행과 정치적 여행을 명확히 구분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분류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정치적 활동’으로 분류한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이 경우엔 대통령을 비롯한 탑승자들은 1등석에 준하는 요금을 내야 한다. 대통령과 십수 명의 선거참모들이 에어포스원을 타고 가더라도, 이들이 국가에 내는 돈은 수천달러에 불과하다. 미 공군이 에어포스원을 1시간 상공에 띄우는 데는 5만6800달러가 든다. 현직 대통령은 아주 헐값에 에어포스원을 선거운동에 이용하는 셈이다. 비싼 값에 전세기를 빌려야 하는 야당 후보와 비교하면, 엄청난 프리미엄이다.
우리나라에도 ‘공군 1호기’가 있다. 1985년에 도입한 40인승 보잉 737 기종으로, 미국과 마찬가지로 조종사는 공군의 ‘톱건’(최고조종사를 뜻하는 말)이 맡는다. 공군 1호기를 부르는 콜사인은 ‘코드원’(Code One)이다. 크기가 작아 운항거리도 짧다. 연료를 꽉 채우면 최대 3700km 정도를 날 수 있다. 서울에서 베트남까지의 거리지만, 실제로는 제주도나 중국·일본을 갈 때만 이 비행기를 이용한다. 대통령 탑승기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항상 출발지로 회항할 수 있는 연료를 확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동일 기종이라도 대통령 탑승기의 운항거리는 일반 민항기보다 훨씬 짧다. 전직 청와대 경호실 관계자는 “우리 대통령이 남미를 방문하고 돌아올 때 항상 로스앤젤레스나 시애틀에서 한 번 쉬는 건, 휴식보다는 비상 연료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말했다.
3일 동안 전세기 내부 구조 변경미국이나 유럽 등 장거리 해외순방 때 청와대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의 보잉 747-400 민간 여객기를 빌려서 이용한다. 일종의 전세기인 셈이다. 과거엔 기내 구조변경과 보안검색을 위해 출발 2주 전부터 전세기를 빌렸는데, 이 기간은 일주일로, 요즘은 3일로 다시 줄었다. 예산 감축을 위해서다. 항공기를 빌리는 그 순간부터 평균 1억원 안팎의 임차료를 매일 지불해야 한다. 3일 동안 여객기 내부 구조를 변경해 대통령 침실과 집무실 겸 회의실을 만들고 통신시설도 갖춘다. 내부 구조 변경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작업은 의외로 만만치가 않다. 전세기 객실층의 맨 앞부분에 대통령 전용공간을 만들고, 바로 뒤에 집무실 겸 회의실을 꾸민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통령 전용공간에 놓을 가습기 등을 위해 전기선을 기체에서 새로 뽑는 것도 쉽지 않다. 비행기 내부 시설은 극히 효율적으로 콤팩트하게 배치돼 있어 구조 변경이 상당히 까다롭다”고 말했다.
전세기 스튜어디스들은 모두 항공사의 에이스들로 뽑는다. 항공사에서 선정한 뒤 청와대 경호실의 신원조회를 거친다. 일은 일반 민항기보다 훨씬 고되지만 별도의 금전적 보상은 없다. 외국 방문이 끝나면 청와대에서 내려보내는 수천달러 정도의 격려금으로 부장과 부기장, 스튜어디스 30여 명이 회식을 하는 게 전부다. 다만, 승진이나 인사에선 아무래도 유리할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의 한 간부는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스튜어디스는 에이스 중에서도 에이스를 뽑는다. 미모보다는 센스가 있고 상황 판단력이 빠른 게 우선이다. 대통령이 만족해하면 임기 5년 내내 계속 대통령실을 담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군 1호기’를 미국처럼 보잉 747급으로 바꾸고 싶어했다. 발주해서 들여오는 데 4~5년 걸리므로 자신은 타지 못하지만, 후임 대통령을 위해선 새 전용기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도 지금의 에어포스원을 발주한 건 로널드 레이건이었고, 그 혜택은 후임인 조지 부시(아버지)가 입었다. 부시는 새 에어포스원을 타고는 내부 첨단시설과 안락함에 깜짝 놀랐다. 그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레이건)이 5년 전 새 전용기 도입 서류에 서명한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기뻐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새 전용기 도입 사업 예산으로 299억9100만원을 국회에 요청했으나 한나라당 반대로 전액 삭감됐다. 이명박 정부 역시 전용기 도입을 추진했다. 집권당으로 탈바꿈한 한나라당이 찬성으로 돌아섰지만, 이번엔 전례없는 경제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국회는 12월10일 국방부 예산에 편성된 142억원의 내년분 전용기 도입 예산을 삭감했다. 청와대의 새 전용기 도입 꿈은 또다시 물거품이 됐다.
정부가 새 전용기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비용이다. 보름 정도 해외순방을 간다고 치면, 민항기 임차료만 15억~18억원 정도가 든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임차비용으로 715억원 이상을 항공사에 지불했다. 청와대가 유력하게 검토하는 보잉 787기를 들여오는 데엔 대당 2500억~3천억원가량이 든다. 단기적으론 큰돈이 들지만, 25년 이상 멀리 보면 전용기가 전세기보다 경제적이란 게 청와대 설명이다.
평소에도 관리해야 하는데 경제적?두 번째는 보안 문제다. 민항기를 빌리면 항로가 공개된다. 테러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미국의 에어포스원은 군에서 관리하는 군용기이므로 항로가 노출되지 않는다. 우리도 미국·유럽까지 논스톱으로 갈 수 있는 전용기를 도입하면, 공군에서 관리하면서 항로 노출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전용기 도입이 경제적이란 주장엔 반론도 있다. 단순히 임차비용만을 따지면 전용기 도입이 유리하지만, 평소 관리비용과 시설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1990년부터 운항을 시작한 2대의 에어포스원을 새로 들여오는 데 든 비용은 당시 시세로 4억1천만달러(약 6천억원)였다. 여기엔 비행기 2대 값뿐 아니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에어포스원 전용 계류장을 만드는 비용까지 포함됐다. 미 공군은 에어포스원을 관리하기 위해 수십 명의 전담 정비요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외벽 타일 하나까지 직접 손으로 점검한다. 평상시의 관리 인력과 비용까지 감안하면, 전용기 도입이 꼭 경제적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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