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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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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를 맡고 눈에 놀라던 그때

정신분석의 이승욱의 고향 강원도 삼척… 느껴지는 대상으로 속절없이 ‘전락’함으로써 맛본 ‘영혼의 순간’, ‘전 존재적 교감’의 경험
등록 2013-04-19 08:58 수정 2020-05-02 19:27

나는 강원도 삼척 두타산 밑 산골에서 태어났다. 쌀 대신 감자가 주식이던 시절이었다. 감자는 약간의 쌀과 함께 조, 수수를 듬뿍 넣어 쪄 먹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모닥불에 구워 먹는 것이다. 집에서 감자밥은 남겨도 구운 감자는 맛있게 먹었다. 그때만 해도 ‘간나새끼들’이 머릿수만큼 슬쩍해가는 서리는 모른 척해주는 것이 동네 인심이었다.
아직 수확을 하지 않은 감자밭에서는 절대로 서리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감자는 어른들이 아무리 알뜰하게 수확해도 땅속을 파보면 제법 알 굵은 놈들이 남아 있다. 이런 떨거지들은 어머니들의 부수입이기도 했기에 동네 아이들은 어른 눈을 피해 캐가곤 했다.
서리를 할 때는 농기구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불문율도 있었던 것 같다. 고작 나무 막대기 같은 도구를 사용했으니 비가 온 뒤 무른 흙을 파헤치는 것이 가장 용이했다. 어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코가 땅에 닿을 듯이 자세를 잡고 비에 젖은 땅을 파헤치면 축축한 수분을 머금은 흙에서 어떤 깊은 체취처럼 향이 훅 하고 올라온다. 그때 흙냄새는 전신을 덮듯이 강력했고, 속수무책으로 내 모든 실핏줄까지도 흙 향으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온몸의 협응 능력이 한창 능숙해지던 그즈음의 나는 들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내 몸을 자각했고, 또 흙 향을 감각하는 내 존재를 자각할 수도 있었다. 나의 원체험은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났다.

어느 겨울 실컷 자고 일어난 뒤 집 처마보다 높이 쌓인 눈을 봤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2001년 폭설로 고립된 강원도 인제군. 한겨레 김봉규 기자

어느 겨울 실컷 자고 일어난 뒤 집 처마보다 높이 쌓인 눈을 봤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2001년 폭설로 고립된 강원도 인제군. 한겨레 김봉규 기자

또 다른 내 감각의 고향은 눈이다. 겨울이면 내리는 하얀 눈 말이다. 강원도는 정말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다. 삼척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언젠가는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 아직도 밖이 캄캄했다. 아마 새벽에 눈을 떴구나 싶어 잠을 청했고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밖이 컴컴했다. 일어나 부모님 방으로 갔더니 아무도 안 계셨다. 이상하다, 하면서 여닫이 창문을 여는데 문이 안 열리는 거다. 방문을 열고 나갔더니, 세상에… 눈이 집의 처마보다 더 높이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면 눈은 낭만이 아니라 약간 공포스러운 대상이 된다. 방문을 열고 집 높이만큼이나 쌓여 있는 순백의 벽을 마주한 그날 그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 흰빛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명령처럼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존재를 산산이 느끼게 했다. 나는 그저 느껴지는 존재였지만 그것으로 나는 ‘확인’되었다.

비존재. 실재하지만 실존하지는 않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인간은 두려워한다. 어떻게든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안달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는 것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도리가 없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 모든 인간이 조건 없는 전(全) 존재적 교감의 경험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외로움이라는 상처는 말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도 말 거는 대상이 아니라는 체험 때문에 발생한다.

영혼의 순간에는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것을 위해 느껴지는 대상으로 속절없이 ‘전락’한다. 나는 흙의 향기와 눈의 빛의 대상으로 전락함으로 존재 이유를 감각하고 확인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아마 나는 비존재에 대한 심각한 불안을 감각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이승욱 정신분석클리닉 ‘닛부타의 숲’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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