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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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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신’ 영역으로 여겼던 임금, 일본·미국·영국 정부 장
기화한 불황 속 불평등 문제 해결하기 위해 임금 인상 견인에
나서
등록 2015-03-06 04:54 수정 2020-05-02 19:27

먼 바다를 건너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바다가 넓고 험한지라 길잡이가 필요했다. 어느 날 바다에 격랑이 몰아쳤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 상인들은 바다의 신이 진노한 탓이니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얘길 들었다. 상인들은 의논 끝에 길잡이를 제물로 바쳤다. 그러자 바다는 다시 고요해졌고, 상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길잡이를 잃은 그들은 망망대해를 떠돌다가 굶어죽었다. 에 나오는 얘기 한 토막이다. 당장의 이익만 생각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만시지탄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정치권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걸 보면서 떠올렸던 오늘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아베의 선택, ‘임금 좀 올려줍쇼!’

시작은 일본이었다. 2012년 집권한 아베 신조는 그간 참담했던 일본 경제를 단번에 일으키려 했고, 그 의지를 높이 사는 이들은 이를 ‘아베노믹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과감한 재정통화 정책을 외쳤다. 하지만 그의 잰 발걸음은 일본 중앙은행이 아니라 대기업들로 향했다. 도요타와 히타치를 찾았다.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서 예전처럼 ‘군기잡기’를 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아베 총리는 그들의 손을 꼭 쥐며 임금을 좀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골프장도 같이 찾아 우애를 다졌다.

2012년 8월 월마트 매장 계산원인 폴라 조던이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곳 앞에 서서 “생활임금을 벌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걸 기억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한겨레 박현 기자

2012년 8월 월마트 매장 계산원인 폴라 조던이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곳 앞에 서서 “생활임금을 벌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걸 기억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한겨레 박현 기자

아베 총리가 모양이 다소 빠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다급했다. 경제 불황이 길어지면서 임금이 쑥쑥 오르길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생산성이 오르고 경제가 회복하는 기운이 있을 때조차 임금은 꼼짝하질 않았다.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일반 서민들의 주머니도 같이 묶이니, 국내 수요도 덩달아 꽁꽁 얼어붙었다. 경기가 좋아지려는 싹이 나타나면 내수 부진으로 싹을 키우질 못했다. 수출에서 숨통이 좀 트여 기업의 자금 사정에 여력이 생길 때조차 임금은 좀체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최근 유명무실해진 노조에 기대기도 힘들었다. 서민들의 불만이 많아지고 경제정책 당국의 처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임금은 올려야 할 판인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기업의 멱살을 잡고 윽박지를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온 궁여지책이 총리의 방문과 ‘읍소’였다.

아베노믹스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주며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에 관심을 표했던 유럽과 미국의 언론은 싸늘했다. 미국 경제지 은 아베 총리가 ‘구걸 행각’을 한다며 한탄했다. 일본의 지지부진한 임금 성장은 노동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생산성을 높일 구조개혁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까지 아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세상 물정도 모르고 저지른 철딱서니 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이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던 미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최상위 소득 그룹의 대약진과 달리 중하층 소득 그룹의 사정은 악화 일로였다. 미국의 자랑이던 ‘튼튼한 중산층’이 날로 야위어갔다. 그 이면에는 임금 정체가 있었다. 특히 하위 임금층의 경우, 실질임금이 유지되기는커녕 오히려 감소했다. 경제위기를 겪으며 불평등 문제가 많이 부각됐지만, 정작 불평등 확대의 짐을 오롯이 고통스럽게 지고 가는 저임금층을 위한 정책 조치가 마땅치 않았다. 조세나 사회보장 정책을 통한 소득 지원이 있지만, ‘추락하는 임금’은 내버려두고 언제까지 ‘사회적 지원’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임금을 올릴 방책도 마땅치 않았다. 한때 융성했던 임금협상은 이제 오히려 ‘예외’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의 개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됐고, 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 애매한 계층도 생겨났다. 미국도 일본만큼 답답한 상황이었다.

골프 회동만 하지 않았을 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베 총리식 호소라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골프 회동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2000년대 들어 빈사 상태인 연방 최저임금 카드를 끄집어냈다. 마침 그가 취임한 2009년은 공교롭게도 연방 최저임금이 7.25달러로 인상되는 해였다. 민주당이 산전수전 끝에 통과시킨 2007년 법 덕분이었다. 사실 연방 최저임금은 미국 노동시장의 아픈 상처다. ‘모두를 위한 번영’을 약속한, 자본주의의 자존심인 미국에서 실질임금은 그 실질가치를 두고 따지면 1970년대 이후 계속 떨어졌다. 최저임금은 상당 기간 동결되거나, 인상될 때조차 그 폭은 미미했다. 최저임금이 7.25달러로 ‘획기적’으로 올랐지만 그 실질가치는 1950년대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최저임금을 더 올릴 여지도 있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내친김에 10.10달러로 올리자고 했다. 획기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적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바짝 날을 세우는 의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구멍 사이로 걸어가는 것 만큼 희박했다. 게다가 2009년 인상안이 임금 인상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일 뿐이었다. 실업률 하락 소식은 꾸준히 들려왔으나, 임금 인상 소식은 바람 같은 소문처럼 잠깐씩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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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그간 팔짱 끼고 이 모든 것을 여유롭게 지켜보았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끈 노동당 정부의 핵심 치적으로 꼽히는 최저임금제도가 꽤 잘 운영됐고, 노동조합도 1980년대에 결정적 타격을 입긴 했으나 그나마 다른 나라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불평등 증대와 빈곤 문제로 논란이 많을 때조차, 임금에 관해서는 경제학의 태두임을 자임하는 나라답게 ‘시장에 맡겨라’는 구호만 반복했다. 경제위기이긴 하지만 실업이 그리 늘지 않았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고용시장이 탄탄했다면 의당 임금도 올라가야 할 터인데 임금은 꼼짝하질 않았다. 최저임금을 매년 상향 조정하는 남다른 노력을 했는데도 말이다. 지난해에는 명목임금이 떨어지는 ‘엽기적인’ 상황까지 벌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디플레이션의 그림자도 부쩍 가까워졌다. 하지만 역시 딱히 방법이 없었다. 결국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한때 영국 언론이 조롱하던 아베 총리의 방식을 따른다. 얼마 전 그는 상공회의소 총회장을 찾아서 주최 쪽을 당혹하게 하는 발언을 했다. “복잡하게 말할 것 없다. 이제 임금을 올려야 할 때다.” 골프 회동이 없었다는 점이 그나마 영국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는 더 다급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새해 들어 의회연설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라고 의회를 다그쳤다. “최저임금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 돈으로 한번 살아보시라”는 거친 언사도 불사했다. 다그친다고 의회가 움직일 리는 없겠지만, 그가 의도한 것은 기실 고도의 정치적 캠페인이었다. 이미 시민사회 여기저기서 미국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대규모 유통점 앞에서 시위하는 일도 잦았다. 시민단체는 현재의 최저임금을 2배 정도 인상해서 15달러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책을 바꿀 힘도 없고 조직적인 노조 세력도 없는 것을 잘 아는 오바마는, 차라리 사회적 압력에 기대어보자는 계산을 세웠겠다. 정치적으로 무책임한 일이지만 그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월마트의 전격적 임금 인상

효과가 있었다. 얼마 전 월마트에서 드디어 시간당 최저임금을 9.5달러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내년에는 오바마의 최저임금 목표에 근접한 10달러로 인상하겠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월마트가 미국에서 고용하는 노동자 수는 무려 50만명이라 하는데, 이것을 근거해서 보자면 10억달러 정도의 추가적인 인건비 지출이 예상된다. 게다가 상징적 의미도 크다. 월마트는 저임금을 양산하는 대표적 기업이었고, 그동안 초과근로수당 등과 관련해 무수한 고발과 소송에 연루됐다. 시민사회가 월마트를 정조준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 일간지 를 비롯한 언론은 다시 한번 호들갑이다. 일부에서는 하룻밤 사이 일당을 2배로 올리며 임금 혁명을 주도한 헨리 포드의 임금정책이 부활했다고도 하고, 다른 쪽에서는 시장 논리에 따르지 않은 정치적 굴복이라고도 한탄한다. 수십 년 동안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고 버텨오던 월마트가 이런 전격적인 결정을 내린 건 분명 ‘사건’이다. 월마트의 결정에 담긴 복잡다단한 속내를 알 수는 없겠다. 하지만 몇 가지 따져보자.

우선, 결정은 전격적이지만 파격적이진 않다. 임금 인상으로 추가적인 인건비 지출이 10억달러에 이르니 입이 떡 벌어질 법도 하지만, 지난해 월마트의 총이윤이 160억달러다. 총이윤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적잖은 액수지만 파격이라고 하긴 힘들다. 여기에 포드주의를 갖다대면 포드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게다가 이 정도의 결정이라면 굳이 지금까지 인내하고 기다릴 필요가 없었겠다. 그전에도 충분히 여력이 있었다.

그렇다고 시장 요인을 고려한 ‘합리적 결정’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미국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며 최근 고용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실업률이 높다. 게다가 고용 증가와 함께 노동시장에 새로이 진출한 인력이 늘어나면서 실업률은 오히려 늘어났다. 직원 채용이 어려워질 것 같아서 선수를 쳤다는 주장도 그다지 근거가 없다. 임금 인상을 통해 직원들의 잦은 이직을 막아서 전반적인 생산성에 기여하려는 정책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고 실제 그런 기업이 많지만, 저임금 노동자의 끊임없는 채용을 근간으로 해왔던 월마트는 이런 가능성에서 가장 멀리 있는 기업 중 하나다.

또한 월마트가 ‘임금 인상 시대’를 열어젖힌 개척자도 아니다. 깃발은 이미 다른 기업들이 올렸다. 지난해 이미 의류 유통업체 갭(Gap), 가구업체 이케아(Ikea), 그리고 의료보험회사 애트나(Aetna)는 두 자릿수 임금 인상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에는 ‘별다방’ 스타벅스도 그 대열에 참여했다. 특히 갭의 임금 인상은 오바마 대통령이 환영의 뜻을 표할 만큼 관심의 대상이었다. 또 전격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으로 치자면 월마트가 아니라 애트나다. 애트나는 임금 인상과 복지 혜택을 파격적으로 늘렸다. 최고경영자(CEO) 마크 베르톨리니는 “이건 임금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협약의 문제다. 민간 기업이 나서서 혁신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경영진에게 700쪽에 달하는 책을 읽도록 했다. 이렇게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 월마트에 임금 인상 계획에 대해 물었다.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임금을 시장에 따라 결정한다.” 딱 1년 전의 인터뷰다. 1년 만에 월마트가 급선회한 것이다.

새로운 길잡이의 탄생?

오늘날 경제는 월급 올리자고 나선 항해에서 길 잃은 배와 같다. 그동안 임금 ‘협상’이니 인상이니 하는 일을 쓸데없고 번잡하며 돈 드는 일이라고만 여겼다. ‘시장의 신’이 노하지 않게 한다는 전설 같은 명분도 있었다. 임금 인상을 부추길 만한 수단들을 과감히 버렸다. 길잡이도 그렇게 버렸다. 그러다보니 ‘경제’라는 큰 배를 노 저어가려면 사공들의 뱃심이 필요한데, 사공들은 배곯기만 하고 좀체 속도를 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경제라는 바다는 불황이라는 격랑 속이다. 길잡이는 없고 임금 인상의 물길은 좀체 환하게 열리지 않는다. 소리만 무성하다. 그래도 시끄럽게 소리라도 내야 좌충우돌하며 길을 찾아갈 것이다. 그 소리를 모아내는 길잡이도 그런 소란 속에서 새로이 나오겠다. 그래서 이 모든 소란을 환영한다.

국제노동기구(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국제노동기구(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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