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기형아 가능성이 높게 나왔네요”

사중 표지물질 검사 뒤 추가 검사 권고받았지만, 추가 검사 하지 않은 이유
등록 2021-01-12 12:36 수정 2021-01-15 01:43
한 임신부가 태아초음파진단 기기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임신부가 태아초음파진단 기기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아의 기형아 검사 결과가 높게 나왔네요. 1:25 정도입니다. 양수 검사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래전 이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 그리고 검사 결과지에 펜으로 쓰인 ‘1:25’라는 숫자를 본 기억은 아마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도 선명하게 남을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정상 수치 1:270에 비하면, 이는 매우 높은 확률이었으니까요.

너무나 가깝기에 오히려 볼 수 없는

누구나 알듯이, 아기는 엄마 몸속에서 자라 태어납니다. 임신했을 때, 아기가 내 몸속에 있다는 사실은 안심되면서도 한편으론 매우 불안한 일이었습니다. 안심되는 이유는, 내 몸 가장 깊숙한 곳에 아기가 위치하기에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아기를 분리시킬 수 있고 한시도 나와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불안했던 이유는, 아이가 내게 너무 가까이 있기에 역으로 아이에게 어떤 이상이 생겼을 때 어떤 대응을 하기는커녕 알아차리는 일조차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체와 태아는 무엇보다 더 가깝게 밀착될 수밖에 없지만, 너무도 가깝기에 엄마는 아기를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직접 만져볼 수도 없으니까요.

현대의학은 이렇게 직접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태아의 건강과 상태를 측정하는 다양한 검사법을 속속 개발했습니다. 초음파로 태아의 모습을 살피고, 다양한 검사로 태아의 건강 상태나 병적 이상 유무를 파악해 조처할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이 검사가 오히려 가뜩이나 태아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불안한 부모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현재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임신 주수에 따라 임신부에게 권고하는 검사 항목은 [표]와 같습니다. 이 가운데 ‘사중 표지물질 검사’(이하 쿼드검사)를 하는 시기가 되면, 수많은 임신부가 한 번쯤 마음을 졸이며 인터넷 맘카페를 찾아 “우리 아이의 검사 결과가 이런데, 추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데 꼭 받아야 하나요?”라는 글을 올립니다. 이 글의 첫머리에 썼던 제 기억의 순간도 이때와 맞물립니다. 쿼드검사는 흔히 다른 말로 ‘기형아검사’라고 하니 이상 소견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도 마음이 편할 부모는 별로 없을 테니까요.

세상 모든 아기가 질병과 장애가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면 좋겠지만, 세상은 늘 이 소망을 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신생아에게 선천성 이상의 발생 빈도는 관찰 시기나 방법, 지역, 결함의 정의 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태어난 이후 즉시 그리고 꾸준한 의료 처치를 요구하는 중증 신생아 이상의 발생 빈도는 2~3%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이 중 발생 빈도가 높고 의료 처치가 필요한 몇몇 이상은 산전에 미리 진단해 그 대책을 강구하는 방법을 권고하고, 그래서 개발된 것 중 하나가 쿼드검사입니다.

많은 임신부가 추가 검사 권고받아

쿼드검사는 임신부의 혈액으로 총 4가지 단백질을 검사하기에, 넷을 의미하는 쿼드(quad)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때 검사하는 네 물질은 태아당단백호르몬(AFP·Alpha-Fetoprotein), 인간융모성선자극호르몬(HCG·Human Chorionic Gonadotrophin), 에스트리올(Estriole), 인히빈-A(Inhibih-A)입니다. 이를 통해 다운증후군, 에드워드증후군, 신경관 결손 등을 선별할 수 있습니다. 이들 질환은 중증 선천성 질환 가운데 발생 빈도가 높습니다. 다운증후군은 부모의 나이가 많을수록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데 평균 1:800, 에드워드증후군은 1:8,000, 신경관 결손 1:1,000의 비율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개 예후가 심각하거나 근본적인 치료가 어려운, 그래서 연구가 많이 된 질환이기도 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다운증후군을 예로 들어 살펴볼까요. 다운증후군 자체를 학계에 보고한 것은 1866년 영국 의사 존 랭던 다운이었지만, 산전에 이를 감지할 방법이 갖춰진 것은 1980년대 이후였습니다. 수많은 통계치를 분석한 결과, 태아가 다운증후군일 경우 모체 혈액 속 AFP와 에스트리올은 같은 임신 주수 산모의 평균치보다 낮고, HCG와 인히빈-A는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 알려졌죠. 참고로 태아가 에드워드증후군을 가진 경우, 비포합 에스트리올과 HCG 수치는 낮고, AFP 수치는 다양합니다. 신경관 결손을 가진 태아의 경우 평소보다 AFP 수치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쿼드검사를 비롯한 트리플검사(쿼드검사에서 인히빈-A를 제외한 검사)의 보급률이 97%가 넘기에 임신부 대부분이 이 검사를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아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기에 개발이 필요했던 산전 검사의 취지와는 다르게, 검사받은 뒤 더 불안해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다운증후군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질환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생각보다 많은 임신부가 태아의 다운증후군이 의심돼 추가 검사를 권고받기 때문입니다. 그중 절대다수는 고민 끝에 받은 추가 검사에서 ‘이상 없음’ 판정을 받습니다.

쿼드검사에 비해 추가 검사는 비용과 위험성이 크기에, 누군가는 이 추가 검사가 병원의 상술이라고 투덜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쿼드검사의 위양성률(거짓양성률)이 5%에 이르며, 애초에 이 자체가 확진검사가 아니라 선별검사 특성을 가지기에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 가깝습니다.

위양성률 5%의 의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9년간 태어난 아기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의 비율은 1만 명당 5명이었습니다. 쿼드검사의 위양성률이 5%라는 것은, 임신부 1만 명이 쿼드검사를 받으면 이 중 500명은 실제와 상관없이 양성반응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추가 검사를 받았을 때 진짜로 다운증후군으로 판명될 확률은 ×100=1%입니다(여기서 ‘위음성률’은 따로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추가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판정되는 이가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쿼드검사는 확진을 위한 검사라기보다 가능성이 큰 사람들을 추려내는 선별(screening)검사입니다. 본선에 가기 전에 치르는 예선이며, 쿼드검사가 눈을 가린 채 소리만 듣고 누군가를 판별하는 간접 검사라면, 추가 검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태아 세포를 채취해 염색체를 직접 검사하는 것이기에 직접 눈으로 보는 것에 가까운 검사입니다. 당연히 정확도는 높지만 검사에 신체적·비용적 부담이 따른다는 게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많은 변수를 놓고 고민한 끝에 추가 검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좋지 않은 조건이 많았습니다. 당시 제 나이는 의학적 노산이라는 35살이 넘었고, 체외수정과 냉동배아 이식을 통한 임신에 쌍둥이라는 것이 기형아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로 지목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추가 검사를 위해 아이들의 세포를 채취하는 과정이 침습적인데다 그 자체가 지니는 유산의 위험성(게다가 쌍둥이라 두 번 해야 하니 이 확률도 두 배)에, 애초에 다운증후군이라는 질환 자체가 염색체 이상 질환이므로 현대의학으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입니다.

통계적 확률과 개별적 인생 사이

물론 이것만으로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임신할 때는 나이가 들었지만 배아를 채취할 때 나이는 30살이었고, 엄마는 한 명인데 아이가 둘이므로 당연히 모든 태아 관련 지표가 단태아보다 높거나 낮을 수밖에 없어 수치 보정이 필요하며, 가족력이 전혀 없고, 목덜미 투명대 검사나 정밀 초음파 검사 등에서 전혀 이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위양성률을 알고 있었기에 저 자신이 99% 확률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하에 추가 검사가 가져다줄 이익보다는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판단했다고 걱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별 이상 없이 태어났고 지금껏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저는 확률의 그물망에서 무사히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통계적 확률과 개별적 인생 사이에 놓인 괴리는 늘 두렵고 안타깝습니다. 만약 그 확률에서 비껴가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테니까요.

그동안 과학은 통계 수치를 다수의 현상을 더 정확히 기술하는 데 집중해서 더 간편하고 안전한 산전 검사로 이상이 있는 태아를 더 정확히 찾아내는 쪽으로 발전했습니다. 저도 그 확률과 통계에 기대 판단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앞으로 과학은 그렇게 정확히 찾아낸 아이들의 삶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인간답게 지속되도록 각자 상황에 맞는 개별적 방법을 찾아내는 쪽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통계적 확률이 비껴가는 경우에도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요. 절대 다시 살 수도 대치될 수도 없는 삶의 궤적 하나하나가 단지 숫자로만 정확히 측정되는 사회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아닐 겁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