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코로나 소설] 얼굴 보고 말하기②

[코로나 뉴노멀]
3부 코로나 소설
등록 2020-06-01 13:58 수정 2020-06-13 04:42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 [코로나 소설] 얼굴 보고 말하기①에서 이어집니다.

“유아 보육은 어떻습니까? 취학 전 영유아, 어린이 보육에서 로봇 활용 보육 문제는 확실히 사람을 다르게 만든다는 통계가 있던데요? V세대 중에서도 특히 정부 인정 프로그램 4.3버전, 4.4버전 세대는 좀 특이하다는 평이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요.”

“장기간 감염병 대유행이 이어지면, 로봇 활용 보육을 쓰지 않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조금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부모는 어떻게든 직장을 다니고 일해야 하는데, 단체로 영유아를 돌봐주는 시설이 감염병 때문에 문을 닫으면 아이들을 보낼 데가 없지 않습니까? 심지어 돈을 쓴다고 해도 애 돌봐주는 사람을 외부에서 고용해 집에 들이는 것도 감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용해서 들인 사람이 감염된 사람인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아기를 돌봐주도록 하는 건 유일한 대안입니다. 가족이 모두 자기 일을 하며 사는데, 옛날처럼 집안에서 한 사람이 무조건 육아만을 도맡아야 한다고 떠넘길 수 있는 시대도 아닙니다.”

“그렇긴 하죠. 그러나 아무래도 사람이 직접 살을 맞대며 키운 아기와 로봇이 키운 아기는 인간성을 배운다는 측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을 맞대며 아기를 키운다고 하지만, 사실 부모나 보육자가 자기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아기를 때리고 학대하는 경우는 예전에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로봇이 아기를 돌보면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 예전 부모들은 아기를 일부러 학대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잘못된 믿음으로 몸에 좋을 것도 없는 이상한 과즙 같은 것을 억지로 아기에게 많이 먹인다거나, 아기의 정서 발달에 악영향을 미치는 이상한 말을 어린이에게 해주는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로봇이 돌보는 아기들은 그런 문제를 겪지 않습니다.”

“로봇 부모가 친부모보다 낫다는 이야기인가요?”

“물론 헌신적으로 자식을 보살피는 현명한 부모와 비교하면 인공지능 로봇이 아기를 돌보는 것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아기의 평균으로 보면, 로봇이 보살필 때 더 포용력 있으면서도 의지가 굳건하고, 더 긍정적이면서도 남의 어려움에 잘 공감하는 사람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지원자 본인도 그런 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씀하신 대로, 저는 집에서 저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준 로봇이 정부 인정 프로그램 4.3버전이었습니다. 정부 인정 프로그램 4.3버전은 약간 오류가 있어서, 이 프로그램을 설치한 로봇이 아기를 키우면 도덕성이 조금 부족한 아기로 자랄 가능성이 있다는 검증 결과가 나와서 몇 달 전에 한 번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세대를 4.3세대로 부르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취업할 때 회사에서 4.3세대는 뽑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겼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조사로 알려지고 밝혀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로봇 프로그램의 문제 때문에 도덕성이 충분히 계발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꾸준히 살아왔습니다. 자신이 자라나는 동안 무슨 문제를 겪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반대 방향에서 한번 물어보죠. V세대가 로봇에 의해 길러지다보니, 자신을 길러준 로봇을 반납해야 할 때가 오거나 너무 낡아서 폐기처분해야 할 때가 오면 지나치게 슬퍼한다는 게 요즘 문제라고 하죠? 로봇 장례식을 치른다 어쩐다 하는 이야기도 있고. 심지어 다른 사람보다 어릴 때 자기를 돌봐준 로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요. 이런 건 문제 아닌가요?”

“문제인 점은 있지만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초 기록을 보면 옛날 사람들은 서울 시내 남대문이 화재로 무너졌을 때 그렇게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냥 오래된 나무와 돌조각을 모아놓은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안타까워서 흰 국화를 바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무당은 제사를 지내면서 굿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을 한 사람으로 자라게 해준 보육 로봇에게 어느 정도 감정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길러준 보육 로봇을 폐기처분할 때가 되었는데, 분리수거할 부피를 줄이겠다고 신나게 몽둥이로 두들겨 부수면서 아무 느낌도 갖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문제 아닌가 합니다.”

면접관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무엇인가 평가하고 따지는 시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자는 시간을 잠시 확인해보았다. 면접이 이미 중반을 넘어선 듯싶었다.

“요즘 대기업만 더 급속히 성장하고 중소기업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원자는 고민했다. 무난하고 평범한 대답을 할 것인가, 아니면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대답을 할 것인가. 지원자는 앞서 교육과 인성을 이야기하며 너무 면접관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질문은 평범한 대답을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갑자기 너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종사자는 구제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고 서서히 사업을 접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겠지요.”

“대기업과 고소득자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중간층은 몰락하는데도 괜찮나요?”

“점점 국가와 사회가 세금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데, 세금을 많이 걷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고소득자가 많아지는 편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1천만원 정도 버는 사람이 2천만 명쯤 있다고 해봐야 1천만원 소득자는 세금을 많이 낼 만한 처지가 아니니, 정부가 걷을 수 있는 세금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다들 그런 상황이라서 세금을 걷지 못했다면 감염병 대유행에 대처할 수도 없고,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재난지원금을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대신에 200조원을 버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다면, 그 단 한 사람에게서 정부는 초고소득자 누진세로 70조원 정도 세금을 걷을 수 있습니다. 2천만 명의 소득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면 정부에는 70조원 세금이 더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부가 세금을 걷는 처지에선 1천만원 정도 버는 사람 2천만 명 대신 200조원 버는 사람 1명 있는 게 압도적으로 이익입니다.”

“정부가 세금만 많이 걷으면 무조건 좋은 건가요?”

“당연히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걷어서 넉넉하게 재원을 마련해두고 국민의 살림이 어려워질 때마다 지원금을 수시로 나눠줄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방향입니다. 세금으로 일을 많이 하려면, 세금을 적게 내면서 자기 혼자 열심히 일하는 사람, 저소득자, 중소득자가 여럿 있는 것보다 세금을 아주 많이 내주는 몇몇 대기업이 있는 게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감염병이 유행할 때, 충분히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넓은 건물을 갖고 자체적으로 방역할 수 있는 인력과 설비를 갖춘 회사가 되려면 역시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 유리합니다.”

“지원자는 노숙자가 재난지원금을 받고 싶어서 또 감염병이 왔으면 좋겠다고 기다린다는 말이 사실이라고 보시나요?”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는 헛소문이라는 게 이미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요즘은 딱히 감염병 대유행이 오지 않아도, 점차 수시로 지원금이 나오는 분위기입니다. 노숙자들이 감염병이 오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면접관들은 잠시 질문을 멈추었다. 서로 잠깐 교감하는 듯도 했다. 지원자는 고민했다. 누가 나를 좋게 평가했을까? 적어도 이 사람은 뽑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겠지. 그러나 지원한 다른 사람 대신 내가 뽑히려면 좀더 좋은 인상을 받은 면접관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면접 초반 요즘 세대에 대해 면접관의 의견에 반발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좋지 않았다는 판단이 다시 들었다. 면접관들의 정서에 좀더 달라붙는 말을 해야 한다. 면접관들 부류의 인물에게 지원자는 ‘나는 너희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 ‘너희가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이다’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아가서 그 사람들이 뭘 하자고 할지, 뭐라고 말할지 예측해 그에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면접관이 말했다.

“성향 다면 평가 면접이니까, 마지막으로는 문제 해결 상황을 하나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질문을 끝으로 면접을 마친다는 의미였다.

“다시 감염병 대유행이 시작됐다고 해봅시다. 강력한 거리두기 조처가 시행된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경제를 완전 정지시킬 수 없어서, 몇몇 필수 사업장을 선정해 제한적으로 계속 운영하도록 지시를 내리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이해했습니까?”

“이해했습니다.”

“전국 각지에 널려 있는 사업장들에서 과연 제대로 감염병을 막아내고 방역할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그래서 법령을 만들어서 제도적으로 보완할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지역 감염병 대책반에서 매일 사업장들에 자동 검사 로봇을 보내서 감염자가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비상 비축 마스크와 장갑을 풀어서 일회용 마스크와 장갑을 제때 필수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식의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겠다는 겁니다. 지원자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조처를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원자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예시로 든 조처는 잘못됐습니다.”

“어디가 잘못됐다는 이야기죠?”

“방금 말씀하신 제도는 공공기관에서 감염병이 번지지 않게 하는 책임을 지는 방식입니다. 공공기관이 어려움에 처한 쪽을 도와주고 지원해주는 형태입니다. 이런 방식은 공공기관이 갑을 관계에서 을이 됩니다. 시민들이 감염병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공공기관은 그 일을 해결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공공기관은 감염병을 막기 위해 자기 책임으로 돈을 써야 하고, 일을 고민해야 하고, 노력하며 애써야 하고, 잘못되면 욕먹어야 합니다. 그런 게 을의 입장입니다. 혹시 문제가 심각해지면 을인 공공기관 사람 중에서 조사받고 처벌받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입니까?”

“우리 사회에서 공공기관은 갑 중의 갑 입장인데, 을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법과 제도는 공공기관 입장에 맞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공공기관은 을 입장이 아니라 갑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바람직한 제도는 법을 만들 때 모든 방역에 관한 일을 필수 업체가 각자 책임져야 한다고 의무로 정해놓는 것입니다. 업체에 담당자를 정하게 해서 각자 책임을 지고 최대한 감염병을 막는 게 당연한 의무라고 법령에 써둔다는 이야기입니다. 법을 우리 기관에 유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쪽의 일은 무엇이 되죠?”

“그렇게 해놓고 공공기관은 혹시 업체들의 감염병 막는 조치가 부실하지 않은지 단속하고 처벌하는 권한을 가지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업체는 우리를 두려워하게 되고 그에 따라 우리의 권한은 저절로 커집니다. 우리 기관의 직원들은 모두 업체 사람들이 떠받드는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우리 기관의 발전입니다. 만약 갑자기 우리 관할 구역에서 감염병이 크게 터져나오는 일이 생겨도 제도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두면 법적으로는 업체가 잘못한 것이 됩니다. 우리 쪽 사람이 다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면접이 끝났다. 면접이 끝나자, 면접관들의 얼굴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대신 안내문이 화면에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원격면접을 종료합니다. 지원자에게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면접관 중 절반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었고 절반은 사람 면접관이었습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공정한 평가를 위해 지원자의 외모를 보지 않고 말한 내용을 글자로 바꿔 그 내용만을 분석, 평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면접관 프로그램 중에는 별도로 말하는 속도와 발음의 특성을 분석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지원자는 컴퓨터를 끄고 카메라를 치웠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격방 문을 열고 나서니, 방금 지원자가 컴퓨터를 사용했던 것 같은 작은 칸막이 방 수십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원격통신으로 업무를 보거나 컴퓨터 작업을 해야 하는데, 집에서 작업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용하는 방이었다.

카운터로 가보니, 원격방 가게 주인은 계산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주인은 방금 다 쓰고 나온 칸에 로봇을 보내어 소독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도 곁을 지나칠 때 주인은 지원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면접 잘 봤어요? 그 방이 우리 집 면접 명당이에요. 지난주에도 어떤 학생이 자기 자취방은 너무 누추해서 화상면접에서 배경이 너무 안 좋게 보인다고 우리 가게에 왔거든. 그래서 배경이 제일 깔끔하게 보이는 방으로 달라고 해서 그 방으로 줬는데, 엊그제 들어보니까 합격했다고 하더라고. 그 방이 그런 느낌이 있대. 너무 구질구질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괜히 부잣집인 거 뽐내는 느낌도 아니고. 딱 명문 대학교에 깔끔한 학생 기숙사 방 비슷한 느낌으로, 그렇다고 하더라고.”

곽재식 소설가

※한겨레21 '코로나 뉴노멀' 통권1호를 e-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알라딘' e-북 구매 링크로 연결됩니다)

코로나 뉴노멀
3부 한눈에 보는 코로나19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