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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사라진다

목소리·영상까지 조작 가능한 인공지능 기술
등록 2017-05-17 05:58 수정 2020-05-02 19:28
인공지능 기술은 목소리나 영상을 변조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영상 속 인물의 표정을 바꾸는 기술인 ‘페이스투페이스’(Face2Face) 개발팀의 논문에 실린 기술 시연 장면. www.graphics.stanford.edu/~niessner

인공지능 기술은 목소리나 영상을 변조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영상 속 인물의 표정을 바꾸는 기술인 ‘페이스투페이스’(Face2Face) 개발팀의 논문에 실린 기술 시연 장면. www.graphics.stanford.edu/~niessner

선거를 치르는 나라에선 이제 ‘가짜 뉴스’와의 싸움이 필수 여정이 됐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 자체를 흔드는 위협이니 가만둘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 식대로 “뿌리 뽑고 엄단”하겠다고 덤비는 것도 곤란하다. 무엇을 뽑을 뿌리로 볼지, 그것을 누가 판단할지, 그 뿌리는 누가 뽑을지 생각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뽑을 뿌리와 멀쩡한 뿌리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것이다. 뽑는 이가, 뽑아야 하는 뿌리보다 뽑고 싶은 뿌리를 뽑기 위해 악용하는 게 더 문제일 수 있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있는가는 플라톤부터 미셸 푸코나 질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수천 년을 고민해온 철학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 나 가 던진 질문처럼, 나는 실제인가 허상인가? 내가 허상이라면 그 허상은 또 진짜인가 가짜인가! 장 보드리야르의 말대로 우린 이미 모사된 이미지(시뮬라크르)가 현실을 대체하고 오히려 그것이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티’ 세상에 사는지 모른다.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해가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탄생한 요즘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진? 당연히 아니다. 이젠 수고스러운 ‘포샵질’도 필요 없다. 스마트폰 앱 하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도 20대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 러시아의 한 인공지능 업체가 만든 ‘페이스앱’(FaceApp)은 원하는 나이대에 맞는 자연스러운 주름 제거 정도는 기본이고 미소도 집어넣을 수 있다. 같은 얼굴로 남녀 성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목소리는 나만의 것일까? 캐나다 몬트리올의 업체 ‘라이어버드’(Lyrebird)는 지난 4월 말 성대모사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해 내놨다. 60초 정도의 음성 데이터만 있으면 그 목소리의 ‘음성 틀’을 바로 만들어낸다. 이 틀에 원하는 문장을 텍스트나 음성으로 넣으면 그만이다. 목소리에 감정을 입힐 수도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1분짜리 자상한 목소리만 있으면 버럭 소리 지르는 그를 만들 수 있다.

영상은 어떨까?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에를랑겐대학, 미국 스탠퍼드대학이 공동 개발한 ‘페이스투페이스’(Face2Face) 기술은 영상의 ‘진본성’(authenticity)에 의문을 던진다. 영상 속 인물의 표정을 내 얼굴 표정으로 조작하는 기술이다. 내가 입을 크게 벌리면 재생 영상 속 트럼프 대통령도 입을 똑같이 벌린다. 눈썹을 들썩이고 입을 실룩거려도 그대로 따라한다. 유튜브엔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설 장면으로 만든 시연 영상이 올라 있다.

페이스앱 사진, 라이어버드 목소리, 페이스투페이스 영상을 결합해보면 어떨까? 어떤 조합이든 막강 그 자체일 것이다. 이렇게 만든 결정적인 가짜 사진, 목소리와 영상이 대선 직전에 번졌다면? 당장 보이스피싱에 이 기술이 사용된다면? 그럼 기술을 만든 업체를 탓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기술 개발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닐까?

라이어버드가 기술 전문 매체 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목이 와닿는다. “목소리가 더 이상 안전한 보안 기술 또는 법정 증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 기술은 더 빨리, 널리 알려져야 한다. 우리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개발했을 기술이다. 더구나 스스로 진화의 길을 걷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막는 방법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린 이미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에서 이름을 따와 만든 가공의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가 “한국 대통령 탄핵 흐름이 매우 괴이하고 음험하다고 말했다”는 가짜 텍스트 몇 줄로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태극기 인파가 만들어졌다.

함석진 넥스트인스티튜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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