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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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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알고리즘에 악마가 자란다

정교한 이용자 취향 저격으로 인기 끈 아마존·페이스북,

‘지름길 소비’에 유리하지만 다양한 세상 읽기엔 걸림돌
등록 2017-08-09 12:28 수정 2020-05-02 19:28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페이스북 본사 입구에 있는 대형 ‘좋아요’ 간판. 성공한 IT 기업들은 개인의 취향을 코드명으로 분류해 서로 비슷한 친구, 물건 등을 추천한다. 구본권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페이스북 본사 입구에 있는 대형 ‘좋아요’ 간판. 성공한 IT 기업들은 개인의 취향을 코드명으로 분류해 서로 비슷한 친구, 물건 등을 추천한다. 구본권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은 1957년 발표된 미국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어의 연구 결과물이다. 실험은 간단했다. 한 그룹의 학생들에겐 1달러를,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겐 20달러를 실험 대가로 주고 각자 거짓말을 해보도록 했다. 어느 쪽이 더 열심히 거짓말을 했을까? 1달러 쪽이었다. “스탠퍼드대학 학생인 내가 고작 1달러를 위해 그렇게 진지하게 실험에 참가했겠어? 실험은 아주 흥미로웠고 의미도 있었다고.” 학생의 심리 상태는 이런 것이었다.

내가 믿거나 바라는 것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면 심리적으로 불편해진다. 사람들은 그것을 줄이기 위해 믿음을 바꾸기보다 상황 합리화 쪽을 선택한다. 불편하게 만드는 정보의 유입을 차단한다. 내가 믿고 싶은 것만 찾아서 믿고 믿음을 스스로 다져가는 인지적 속성,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그렇게 작동되고 강화된다.

아마존, 페이스북 등 성공한 인터넷 기업들은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고들었다. 그들이 내세운 ‘사용자 편의성’이란 문구를 다시 쓰면 ‘불편함 해소’다. 컴퓨터 알고리즘은 인터넷 공간에 남긴 흔적을 클릭 하나까지 있는 대로 긁어 모아 나를 숫자로 치환해 분석·분류한다. “내가 당신을 잘 아니 나만 믿고 따라오세요.”

그렇게 따라간 인터넷 공간은 조화롭고 쾌적하다. 이렇게 해석된 함석진이란 인간은 ‘1456-A89’ 같은 코드명으로 대체돼 인터넷 공간의 재료로 쓰인다.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것으로 파악된 다른 코드명을 친구로 추천해주고, 취향 매칭 수치가 높은 책과 음악을 골라 배달해준다. 내 코드명은 다른 코드명의 친구 추천 목록에 올라가고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한다.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업체들은 가입자 네트워크를 키우고 책과 음악을 판다. 인공지능 무기까지 장착한 인터넷 세상의 필터는 더욱 정교하고 강력하게 거르고 가려줄 것이다.

뭔가 고르는 일 자체가 큰일이 된 인터넷 세상에서 취향까지 살펴 내가 찾는 것을 딱 골라주는 ‘맞춤형 친절’을 굳이 삐딱하게 볼 이유는 없다. 확률 높은 업체들의 ‘핀포인트 마케팅’이 나에겐 품을 더는 ‘쇼트컷 컨섬션’(지름길 소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볼 지점은 있다. ‘맞춤형’이란 지향의 위험성이다. ‘나에게 맞는다’는 건 무엇일까? 지지 정당, 응원하는 프로야구팀, 좋아하는 음식, 자주 듣는 음악, 아이에게 맞는 동화책이나 장난감. 이런 것들로 치환되는 그 무엇일 텐데, 내 기호나 취향이 그렇다는 것과 내가 그 음식만 먹고 음악을 듣는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팀을 응원한다고 내 스마트폰 기사창에 그 팀의 기사만 잔뜩 오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읽는 일이 즐겁고, 해보지 않은 것을 하거나 여러 가지 배우는 일을 좋아한다. 알고리즘 맞춤형은 사실 내게 맞지 않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걸러주는 정보만 편식하는 시대의 위험성을 경고한 (원제: The Filter Bubble)의 저자 엘리 패리저는 이렇게 말한다. “알고리즘은 나와 세상을 절대로 온전하게 독해(reading)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한번 맛을 보면 끊기 힘들다. 내 생각과 같은 기사들만 배달되고, 나와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거주하는 소인국의 삶은 평안하다. 악마는 그 속에서 자란다.” 다음회에선 ‘필터 버블’ 세상에 저항하는 여러 시도를 살펴보겠다.

넥스트인스티튜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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