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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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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 타고 내려오다

일상의 권태·복잡한 심사 잊게 하는 인고의 3대 능선 종주
등록 2017-01-31 06:22 수정 2020-05-02 19:28
2010년 12월24일 지리산 중봉. 지리산 서북능선과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동부능선과 동남능선도 보인다. 중봉에선 천왕봉도 볼 수 있다. 김선수

2010년 12월24일 지리산 중봉. 지리산 서북능선과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동부능선과 동남능선도 보인다. 중봉에선 천왕봉도 볼 수 있다. 김선수

일상의 권태로 변화가 필요할 때, 삶이 잘 풀리지 않아 새로운 시도가 필요할 때, 복잡한 심사를 잊고 평정심에서 출발하려 할 때 몸을 극한 지점까지 이끄는 능선 종주를 다녀온다. 오로지 순간의 어려움을 견뎌내자는 한 가지 일념으로 몇 시간이고 걷고 나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된다. 무념무상으로 걸으면서 장대한 산줄기에 취해 몰아의 경지에서 노닌다.

그때 찾는 3대 능선이 있다.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공통점은 백두대간에 있고 능선 길이만 20km가 넘는다는 것이다. 무박으로 10∼13시간을 걸어야 한다. 대피소에서 하룻밤 자면 여유롭지만, 시간에 쫓기는 게 인생이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위험하지는 않지만 오르락내리락하며 인고를 극복해야 한다.

지리산은 노고단부터 천왕봉까지가 주능선이다. 성삼재에서 올라 중산리를 내려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화엄사에서 올라 대원사로 하산하는 화대종주는 더 길고 고되다. 성삼재에서 서북능선을 타고 만복대∼바래봉∼덕두봉∼인월 구간을 붙이고, 천왕봉에서 동부능선을 타고 중봉∼하봉∼왕등재∼밤머리재를 거쳐 동남능선을 타고, 웅석봉에서 덕천강 또는 진양호로 이어지는 구간을 붙여 ‘태극종주’라 한다. 100km 정도에 이른다.

주능선 종주는 2009년 5월22∼24일, 2013년 5월31일∼6월2일 했다. 태극종주는 2010년 12월21∼26일 완주했다. 2009년 5월 종주 때 치밭목대피소에서 유평마을까지 무릎 통증으로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내려갔다. 그 상황에서도 계곡을 하얗게 물들인 층층나무 꽃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태극종주는 기획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침낭을 준비하지 않아 장터목대피소에서 등산복을 입고 잤음에도 밤새 벌벌 떨었다. 새벽에 제석봉을 오르며 맞은 매섭게 차가운 일출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설악산은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을 밟고 공룡능선을 타고 설악동이나 백담사로 내려오는 게 일반적인 무박 코스다. 여기에 서쪽으로 귀때기청봉∼장수대∼안산 구간을 붙이고 마등령 위로 황철봉∼울산바위∼달마봉∼삼척바다를 이은 54km 정도를 ‘설악 태극종주’라 한다. 전문가들은 24~27시간 정도에 돈다고 한다. 태극종주는 시도해보지 못했다. 무박으로 가능한 설악의 많은 코스를 돌았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느 곳을 걸어도 설악산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덕유산은 육십령에서 남덕유를 거쳐 향적봉 정상을 찍고 백련사로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설천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기도 한다. 2008년 2월22~23일, 2010년 5월23~24일 두 번 종주했다. 가장 힘들었던 산행은 2008년 2월 덕유산 종주다. 같이 출발한 일행 중 한 명은 삿갓재대피소에서 포기했다.

칼로 에는 듯한 매서운 북서풍의 위력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등산로가 능선 기준으로 북쪽 사면에 있는 구간에선 바람을 정면으로 맞았다. 등산로가 남쪽 사면에 있는 구간에선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했다. 수십 분을 걸어도 계속 북쪽 사면이어서 참다못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설천봉에 도착해 곤돌라를 타려는데 강풍으로 곤돌라 운행이 중단됐단다. 1시간40분 정도 급경사의 스키 슬로프를 구르다시피 내려왔다. 이를 계기로 그 어떤 산행도 만만하게 여겨졌다.

2010년 5월 종주 때는 비가 내렸다. 바람이 동남쪽에서 불어왔다. 백암봉과 중봉 사이 키 작은 초목의 덕유평전을 걸을 때 거센 바람이 가는 빗줄기로 얼굴을 때렸다.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중봉 오르는 마지막 계단에선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덕유산 종주는 강한 인내를 요구했다.

언론인 김정남 선생은 천왕봉에서 느끼는 환희심을 맛보기 위해 지리산 종주를 하는데 “나, 지리산 종주하고 왔어!”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단다. 종주를 마친 뒤 뿌듯함은 1년을 족히 버티게 한다. 3대 능선 종주 코스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언제 가더라도 반갑게 맞아준다. 시련과 고통을 안겨주지만, 이를 극복하면 뿌듯함과 원기를 충전해준다. 변호사

김선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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