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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그런즉 외모로 젠더를 예단 말지니

타인의 외모로 파악할 수 있는 건 나의 인식 수준… 젠더 알아야 관계 맺기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벗어나길

제981호
등록 : 2013-10-0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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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에 살 때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한 여성과 마주쳤다. 수줍은 표정에 치마를 입고 살랑살랑 뛰어가고 있었다. 표정이 예뻤던 그녀는 아마 호르몬 투여를 두어 달 했을 법했다. 아직은 ‘남성적 특질’이라고 불리는 흔적이 조금 더 두드러졌다. 슬픈 표현이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이라면 그저 좀 여성스러운 남자로 여길 법했다. 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녀와 다시 마주쳤다. 통성명을 한 사이도 아니고 특별히 안면이 있는 사이도 아니기에 그녀를 알아본 건 우연이었다. 몇 달 전에 비하면 많이 변한 모습이었다. 남성적 특질이라는 몸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적어도 외모를 통해선 그런 특질을 찾기 어려웠다. 이제 그녀는 ‘여성’이라고 불리는 존재로 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동안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여성성을 재현하기 위해 꾸준히 호르몬을 투여하고 화장하고 옷 입는 법 등을 배웠을 거라고 짐작했다. 아마 길에서 마주치는 이들 누구도 그녀가 MTF(Male-To-Female·트랜스여성)임을 모를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지금의 외모였고 당연히 비트랜스여성이라고 인식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 젠더를 인식하는가

흔히 타인의 외모를 통해 그 사람과 관련한 어떤 ‘정보’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외모만으로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있고, 나이를 가늠할 수 있고, 계급이나 삶의 양식을 짐작할 수 있고, 인종이나 출신 지역을 추정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중 어떤 것(젠더·나이·인종)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나기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실로 여긴다. 특히 젠더는 외모를 통해 단박에 그리고 오류 없이 알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젠더는 타고나며 외모는 우리의 현재 정체성을 재현하는 무대와도 같다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남자 아니면 여자, 젠더 이분법에 걸리지 않는, 저항하는 ‘외모들’이 있다. 서울 이태원을 걷는 청소년 트랜스젠더.한겨레 박수진
하지만 그것은 믿음에 불과하다. 외모가 알려주는 정보, 그중에서 젠더와 관련한 정보는 그리 정확하지 않다. 예컨대 지나가는 어떤 사람을 남성으로 파악했다고 치자. 물론 우리는 어떤 타인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일일이 인식하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자명하고 자연스러운 사실로서 ‘인식’을 요하지 않는다. 그냥 상대는 여성 아니면 남성이다. 상대방의 젠더가 ‘모호’하거나 지배 규범에 부합하지 않아 ‘쟤, 여자야 남자야?’라는 반응을 야기할 때만 젠더를 인식한다. 이것은 성적 지향과 비슷하다. 이 사회는 어떤 타인을 향해 ‘저 사람은 이성애자네’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냥 이성애자다. 혹은 그 사람은 이성애자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포착할 때 비로소 성적 지향을 인식한다. 물론 그 인식은 섬세하지 않다. 이성애자가 아닌 것 같으면 그땐 그냥 동성애자일 뿐이다. 양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무성애자인지, 다른 어떤 성적 지향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그저 이성애자가 아닌, 그리하여 뭔가 이상한 존재란 점에서 동성애자로 뭉뚱그려질 뿐이다. 젠더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 아니면 남성인 건 당연한 사실이다. 젠더와 성적 지향에 관한 이런 인식이 사회를 구성하는 지배 규범, 즉 자연 질서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성으로 인지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남성으로 인식할까? 이것은 본인만이 답할 수 있는 문제다. 그는 자신을 남성으로 인식할 수도, 여성으로 인식할 수도, 남성인 동시에 여성으로 인식할 수도, 남성도 여성도 아닌 다른 어떤 범주의 젠더로 인식할 수도 있다. 또한 호르몬을 장기간 투여해 남성으로 통하는 FTM(Female-to-Male·트랜스남성)일 수도 있고, 호르몬을 비롯한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지 않거나 이제 막 호르몬 투여를 시작한 MTF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외모는 비록 남성으로 더 잘 통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본인 외에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때론 본인도 단언하지 못한다).


트랜스젠더,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들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지배적 이미지는 매우 여성/남성스러워서 이른바 ‘여성/남성’으로 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존재다. 호르몬 투여, 수술 등 다양한 의료적 조치를 통해 여성 혹은 남성으로 인식되는 데 문제가 없는 이들이 주로 미디어에 등장한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앞서 얘기했듯 어떤 트랜스젠더는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지 않고 살아간다. 또 어떤 트랜스젠더는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되 호르몬 투여만 한다. 가슴이나 얼굴 관련 수술을 선택하는 트랜스젠더도 있고, 외부 성기 재구성 수술을 하고 호적상 성별 정정을 하는 트랜스젠더도 있다. 우리, 트랜스젠더는 각자 자신의 맥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거리에 지나가는 누군가를 보고 그 사람의 젠더를 분명하게 구분할 방법은 없다. 호르몬 투여를 선택한 트랜스젠더와 선택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를 구분할 분명한 방법도 없다. 호르몬 투여를 한다고 해도 한 달 정도 했다면 두드러진 외모 변화는 없다. MTF라면 여전히 남성으로 통할 가능성이 높고, FTM이라면 여전히 여성으로 통할 가능성이 높다. ‘오, 저 사람은 호르몬 투여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난 트랜스젠더네’라고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타인의 외모를 통해 그 사람의 젠더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타인의 외모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건, 상대방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 사람의 외모를 이해하는 나 자신의 인식 수준이다. 내가 누군가를 ‘남성’으로 인식했다면 이는 그 사람이 남성이라는 뜻이 아니라 ‘나는 특정 골격, 수염 흔적 등이 있는 사람을 남성으로 파악한다’일 뿐이다. 누군가를 ‘여성’으로 인식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여성인지 아닌지를 외모만으로 알 수는 없다. 타인의 외모를 통해 무언가를 알았다면, 그건 외모를 해석하는 나와 사회의 인식 체계다.

재검토돼야 할 젠더와 외모에 대한 믿음들

이 글을 시작하며 얘기한 트랜스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여성이 호르몬 투여를 이제 막 시작해서 남성으로 통할 때 당신과 마주쳤다면 당신은 그녀의 젠더를 어떻게 인식할까? 그가 호르몬 투여를 상당 기간 진행해서 여성으로 통할 때 당신과 마주쳤다면 당신은 그의 젠더를 어떻게 인식할까? 한 사람의 긴 역사에서, 단지 한순간 우연히 마주친 모습으로 상대의 젠더를 파악했다고 믿는 건 위험하다. 무언가를 파악했다고 믿고 싶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젠더가 아니라 ‘나’의 젠더 인식 수준이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젠더를 알면 상대와 관련한 어떤 걸 알았다는 믿음, 상대방의 젠더를 알아야만 그 사람과 제대로 관계 맺을 수 있다는 믿음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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