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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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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먹고사는 ‘시설 재벌’ 이라니

장애인 ‘자립생활’이 아니라 ‘시설수용’에 힘 실어줘선 안 된다는 외침은 묻히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적에 오점 남긴 장애인 ‘수용’시설 꽃
동네 방문
등록 2014-08-30 05:49 수정 2020-05-02 19:27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7월11일 서울 명동성당 앞 거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비마이너 제공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7월11일 서울 명동성당 앞 거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비마이너 제공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한 4박5일은 나에게도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마냥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지난 8월16일 오후, 그의 동선을 담은 TV의 몇몇 장면은 지난 며칠 동안 받았던 뜨거운 감동에 찬물을 끼얹고 만 것이다. 이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중증장애인 형님 한 분도 교황이 TV에 나올 때마다 흥분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 형님은 자기에게 익숙한 어떤 동네가 화면에 나올 때면 왼손을 좌우로 흔들어대며 불만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교황이 그날 방문한 곳이 다름 아닌 그 형님이 14년 동안이나 살았던 충북 음성의 꽃동네였기 때문이다.

“거룩한 명동성당 더럽히지 말라”는 대답만

꽃동네는 우리나라 최대의 장애인 ‘복지’시설 또는 장애인 ‘요양’시설이라고 불린다. 여기에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숙인, 노인 등 이른바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이라는 사람들 수천 명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 이들은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간다. 형님은 이곳에서 14년을 얻어먹으며 살았지만, 외출은 고작 23번만 허락됐다. 그렇게 그가 바깥세상과 벽을 쌓은 채 살아가는 동안 받은 것은 ‘주님의 은총’이 아니라, 창살 없는 감옥 속 ‘수인(囚人)의 삶’이었다.

그래서 꽃동네에서 나온 이들은 그곳을 장애인 복지시설도 요양시설도 아닌, ‘수용시설’이라고 부른다. 무엇보다 이들은 고작 ‘거주 이전의 자유’를 얻기 위해 인생을 건 싸움을 해야 했다. “10년 전 제가 중증뇌성마비장애인으로서 지역사회로 나가 자립생활을 하려고 하니, 저보고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2004년 꽃동네에서 나와 결혼도 하고,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배덕민씨의 이야기다.

이 때문에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꽃동네 탈시설 장애인 모임’을 비롯한 장애인단체들은 8월 초부터 서울 명동성당,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쫓아다니며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취소해달라고 애원했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아니라 ‘시설수용’에 힘을 실어줘서는 안 된다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고작 “거룩한 명동성당 더럽히지 말라”였고, 일부 네티즌은 “꽃동네라도 없었으면 10년 전에 노숙하다 굶어 죽었을 놈들이 고마운 줄 모르고 떠든다”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나는 여기에 대고 꽃동네 같은 시설이 한국 장애인 복지에 얼마나 암적인 존재인지 구구절절 떠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영화 와 같은 시설 내 성폭력 문제, 최근에 밝혀진 서울 도봉구 인강원과 경북 구미 SOL복지재단의 시설거주인 폭행과 공금횡령 등을 아무리 이야기한들 ‘그건 악마 같은 놈들이 운영하는 일부 시설의 문제’라거나, 저 네티즌들처럼 ‘그런 곳이라도 없었으면 굶어 죽었을 것 아니냐’라고 말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그저 입안에 밥만 밀어 넣어주면 그만인 가축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인권을 부르짖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나는 대신에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을 짠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 묻고 싶다.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를 강조하는 베르고글리오(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명)와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이 꽃동네 같은 거대 장애인 ‘수용’시설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당신들의 신앙 속에서 장애인은 어떤 존재인지, 성서의 입장에서 답해주길 바란다. 비가톨릭 신자로서 주제넘는 줄 알지만, 나는 베르고글리오와 프란치스코가 추구한 것이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였다면,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가 추구한 것은 ‘가난을 먹고사는 교회’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들의 신앙 속에 장애인은 어떤 존재인가?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지 않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서 재산을 훔친 셈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재산은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하며 가난한 삶을 자처했고, 가난한 자와 함께 살았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으로 있을 때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역시, 마약·인신매매 등으로 악명 높은 빈민촌을 대동하는 수행원 한 명 없이 수시로 방문해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한 건 두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자들 ‘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자기 삶의 현장에서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데 자신의 신앙을 바쳤다는 것이다.

반면 오웅진 신부의 꽃동네는 가난한 자들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오갈 데 없이 가난하게 만들어 시설로 내모는 이 사회의 구조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장애인과 부랑자를 ‘사회악’으로 낙인찍고 노동능력이 있는 이들은 삼청교육대로, 노동능력이 없는 ‘심신장애자’는 “종류별로 분리하여 각기 전문 재활시설에 수용”(보건사회부, , 1989년)하는 정책을 폈다. 이 때문에 국가의 장애인 복지 예산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시민적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 수용시설을 키우는 데 쓰였다. 덕분에 꽃동네는 가난한 이들 ‘곁으로’ 나아가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쌓아올린 성채에 수천 명의 오갈 데 없는 이들을 끌어들여 한 해 예산만 380억원을 지원받는 거대 ‘시설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항상 어린아이들을 만나길 좋아하는 교황은 꽃동네에서도 장애아동의 손을 잡고 그들에게 입을 맞춰주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 나라 가톨릭 사제들은 혹시 이런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저 아이들은 자기 부모와 함께 살며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왜 저곳에서 살아야 할까? 이 나라의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분명히 장애아동도 지역사회에서 살며 학교에 다닐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저 아이들을 산골짜기 시설에 살도록 한 것은 대체 누구의 의사에 따른 것인가? 혹시 한국 가톨릭교회에 장애인이란 존재는 온전한 인간 존엄을 실현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당신들 신앙의 숭고함과 자비로움을 하느님께 증명하기 위해 바치는 제물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지나치게 경망스러운 질문일까?

교황의 방문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하지만 나의 이런 경망스러운 의문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간다. 교황이 로마로 떠나자마자 교황이 꽃동네에서 걸었던 길과 머무른 방이 성지화돼서 관광상품으로 개발된다고 한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라”고 호소했던 교황을 돈벌이의 도구로 쓰겠다는 발상도 참으로 도발적이고 창의적이다. 이들에게 한낱 장애인을 돈벌이 도구로만 보지 말라고 하는 게 얼마나 아둔한 요구였는지 새삼 한탄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할 뿐이다.

하금철 장애인언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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