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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연금술사’의 냉정함은 어디서 왔나

등록 2012-07-11 15:48 수정 2020-05-03 04:26
<강철의 연금술사> 작가 아라카와 히로무는 자신의 고향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만화 <백성귀족>에서 유머러스하게 농업 생활을 그린다.

<강철의 연금술사> 작가 아라카와 히로무는 자신의 고향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만화 <백성귀족>에서 유머러스하게 농업 생활을 그린다.

2000년대 들어, 일본 만화의 블록버스터를 꼽는다면 2억 부 넘는 판매 기록을 세운 를 필두로 등을 들 수 있다. 다들 최고의 만화이고, 개인적으로 필독하는 만화지만 그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면 아라카와 히로무의 다. 등에 비하면 마이너 잡지인 에 2001년부터 연재된 는 ‘성인만화의 주제를 소년만화에 이식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깊이 있는 주제의식과 탄탄한 스토리로 독자를 사로잡았다. 인기 있다고 해서 질질 끌거나, 먼 산으로 가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고, 마지막 회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은 점도 좋았다.

는 이야기나 그림이 전형적인 소년만화와 다르지 않았기에, 보면서도 아라카와 히로무가 여성이라는 걸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보니, 이야기와 그림에서 느껴졌던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의 균형감은 어쩌면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아라카와가 홋카이도의 농가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거대한 면적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농장 출신. 에서는 엘릭의 고향을 묘사할 때 친근감이 두드러지는 정도였지만, 이란 ‘농가에세이’ 만화를 보면 아라카와의 사상이 어떻게 단련됐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아라카와 히로무. 2권에 나오는 홋카이도 개척의 역사를 보면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다. 엄청난 추위, 대홍수, 메뚜기떼 습격, 아이누족 포수조차 도망쳐버린 곰들의 출몰 등등. 불과 100여 년 전, 아라카와의 증조부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일본 최고의 명절 골든위크 때도 밤낮없이 일해야 하고, 곰과 사슴과 다람쥐 등 야생동물의 습격에 고군분투하고, 생산량이 많다고 우유를 그냥 버려야 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다친 소들은 죽일 수밖에 없다. 아라카와는 유머러스하게 홋카이도의 농업 생활을 그리지만, 그 안에는 처절하고 혹독한 현실의 무게가 그대로 담겨 있다. ‘자신의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 냉정한 현실인식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깨닫게 된다.

이 식량자급률 1천%에 이르는 홋카이도의 농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기에 가치 있는 만화는 아니다. 의 진짜 즐거움은,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고 재미있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온갖 중장비를 몰다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사고, 한겨울에 팬티만 입고 축사에 가서 소의 출산을 돕는 아버지, 농장에서 키우는 소와 개와 고양이의 이상하고도 즐거운 이야기까지 아라카와의 유머감각은 일상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을 보다 보면, 의 매력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소년만화의 열정과 모험이 있고, 어른의 심오한 현실인식이 있고, 유머와 감동까지 함께 어우러진 작품. 야말로 21세기를 대표하는 일본 만화라 할 수 있다. 은 즐거운 소품이고, 아라카와의 차기작은 바로 자신의 경험을 살린 홋카이도의 농업학교를 배경으로 한 학원물 다. 지금 가 아주 궁금하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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