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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자의 만화방

‘만화 같은 일’ 가득하시길

제951호
등록 : 2013-03-08 03:27 수정 : 2013-03-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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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만화 행사인 ‘앙굴렘국제만화축제’는 한 사내가 아내에게서 받은 만화책에서 비롯됐다. 2013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포스터. ‘앙굴렘국제만화축제’ 누리집 화면 갈무리
‘만화 같다’는 말은 만화를 비하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세상에 이처럼 매력적인 말이 또 있을까?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만화, 그 만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세상은 한 권의 만화책과도 같을 것이니 말이다.

지금부터 50년쯤 전, 한 프랑스 사내가 아내에게서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에르제의 만화 <땡땡의 모험> 중 한권인 ‘파라오의 시가’의 재판본이었다. 남자는 이 책을 보며 만화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 남자는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만화와 서사적 형상’의 전시 도록을 보게 된다. 당시 프랑스에서 처음 열린 만화 전시회인 이 전시는 일주일 만에 무려 50만 명이 관람해 대대적인 만화 신드롬을 일으키던 중이었다. 도록을 통해 만화라는 장르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남자는 이 매력적인 장르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만화 이벤트를 열기로 결심한다.

2년 뒤인 1969년 4월, 남자는 보르도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서 ‘만화주간’이란 행사를 연다. 다시 2년 뒤 그 도시의 시의회 의원이 된 남자는 자신처럼 만화를 사랑하는 친구 장 마르디키앙과 의기투합해 판을 키워 이듬해인 1972년 ‘천만 개의 이미지들’이란 행사를 2주 동안 열었다. 뜻에 동감한 만화가들의 참여가 이어졌고, 독자들이 찾아와 행사는 성황리에 끝났다.

그 다음해 두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루카 만화축제를 찾아갔다. 자리잡은 만화축제의 힘을 본 두 사람은 루카 못잖은 만화축제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1974년, ‘국제만화살롱’이란 이름으로 프랑스를 대표할 만화축제가 시작됐다. 만화축제이니 포스터는 세계적 만화가 휴고 프라트에게 맡겼다. 축제는 그야말로 대성공. 1만 명이 찾아와 만화와 하나가 됐다. 성공에 고무돼 이 작은 도시는 행사를 국제 만화축제로 발전시켰고, 포스터는 유명 만화가들이 그리는 게 전통이 됐다. 1980년대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는 이 만화축제를 칸영화제를 포함하는 프랑스 5대 국제 문화행사 중 하나로 끌어올렸다. 이 축제가 바로 세계 최대의 만화 행사인 ‘앙굴렘국제만화축제’다. 모든 것은 프랑시스 그루라는 사내가 아내에게서 받은 만화책에서 비롯됐다. 정말 만화 같은 일이었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인구 10만 명의 소도시 앙굴렘에 세계의 만화팬이 몰려든다. 이 축제가 올해로 40돌을 맞았다. 1월31일부터 2월3일까지 열린 올해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받아 ‘한국만화특별전’을 열었다. 10년 전인 2003년에 이어 두 번째로, 30회와 40회에 한국이 주빈이 된 것도 묘하다.

만화는 세상에서 가장 저렴하고 손쉽게, 그럼에도 가장 무한한 꿈을 그릴 수 있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만화는 무엇이든 만들어낸다. 프랑시스 그루와 앙굴렘 만화축제 이야기는 이런 만화의 ‘만화 같은’ 힘이 현실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만화에 대한 이야기 ‘네 남자의 만화방’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이 코너를 마친다. 만화를 사랑하는 모든 분께 ‘만화 같은’ 일이 가득하기를.


구본준 한겨레 기자 bonbon@hani.co.kr

*‘네 남자의 만화방’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보내주신 구본준·김낙호·김봉석·박인하, 네 남자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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