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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든가 대인배가 되든가

등록 2012-11-30 17:04 수정 2020-05-03 04:27
작가 자신이 주인공인 ‘오너캐’에서는 만화가 인기를 얻으면 작가도 스타가 된다. 하지만 캐릭터 공격이 작가에 대한 공격이 되기도 한다. 최근 다른 만화에서 실명 등장해 봉변을 당한 의 ‘오너캐’ 야매토끼.

작가 자신이 주인공인 ‘오너캐’에서는 만화가 인기를 얻으면 작가도 스타가 된다. 하지만 캐릭터 공격이 작가에 대한 공격이 되기도 한다. 최근 다른 만화에서 실명 등장해 봉변을 당한 의 ‘오너캐’ 야매토끼.

어릴 때 인형이나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기억을 상기해보자. 스스로 겪은 상황들과 대중문화로 흡수한 이야기 조각들이 마구 뒤섞인 세계관 설정이 머리 속에 펼쳐지고, 손에 쥔 장난감들은 그 안에서 생명을 얻어 서사극을 펼친다. 그런데 종종, 그중 어떤 캐릭터는 유독 그 세계의 조물주인 자기 자신을 많이 이입하게 된다.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창조된 세계 안에 있는 나의 대리인이다. 자신이 만든 흥미진진한 상상 세계 안에서 모험을 하고 싶은데 직접 뛰어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면, 자신과 닮은 분신 같은 피조물을 들여보낸 뒤 그 상황을 다시금 전지적 창조주로서 조종해나가는 것이다(이 설명에서 어째선지 종교적 은유가 읽힌다면, 어디까지나 우연이라고 해두자).

만화에서 작가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캐릭터를 은어로 부르는 것이 바로 ‘오너캐’다. 오너캐는 작가를 얼마큼 반영하는가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작가를 모델로 했지만 기본적으로 작품 속 세계관의 가상 캐릭터인 경우다. 예를 들어 의 주인공 최군은, 모 대학 만화과에 다니며 자취하는 고학생이라는 측면에서 최규석 작가 자신의 인생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최군은 작품 세계 안에서 완전히 생활하는 가상의 등장인물이다. 픽션 세계관 속의 인물이기에, 이런 오너캐는 작가를 반영하는 것임을 독자들이 뻔히 알고 있음에도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미화 또는 기타 변형이 자유로운 것이 장점이다. 에 등장하는 만화가 키시베 로한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바는 없지만 독자들 사이에서는 널리 작가 오너캐로 인식되고 있는데, 만화에서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고 덤으로 상대의 모든 것을 스토리로 읽고 써넣을 수 있는 막강한 초능력을 지녔다. 아무리 현실의 아라키 작가가 석가면 전설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닐 것 아닌가(사실,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서, 자신을 모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신을 캐릭터로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웹툰의 보편화와 함께 크게 증가한 일기체 일상을 그리는 작품들에서, 주변의 생활 경험, 사연을 들려주는 식으로 자신의 아바타를 등장시킨다. 의 성게군부터, 의 조석, 의 야매토끼 등 많은 히트작의 주인공들이 여기 속한다. 작가 자신인 오너캐가 등장한다고 해서 이 작품들이 모두 논픽션임은 아니지만(당연히 대부분의 경우 상상된 요소들이 붙는다), 작가 자신 주변의 현실 세계 사연을 좀더 웃기게 각색했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예 작가 자신인 오너캐의 장점은, 작품의 인기와 함께 작가의 스타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작품이 호응이 좋아서 주인공이 인기를 끄는데 그것이 바로 작가인 셈으로, 스타 감독보다는 스타 배우, 즉 연예인의 인기에 가까워질 수 있다. 독자들 역시 그쪽이 몰입하며 공감하기에 더 효과적인 부분이 있다. 반면 단점은, 캐릭터에 대한 공격이 작가 자신에 대한 공격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최근 일어난 사건에서는 미티라는 작가가 작품에서 야매토끼 캐릭터가 남자를 보자 얼굴 붉히며 오줌을 지리는 장면을 개그 요소로 넣었는데, 이것이 캐릭터 패러디에 머물지 못하고 야매토끼 작가의 실명과 성희롱 용어가 결합돼 포털 사이트 인기검색어에 오르내리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런 패턴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이후의 사과 과정에서 더 문제가 커지기까지 하고 말이다.

오너캐를 활용하고 싶다면, 작가와 캐릭터가 일체화되는 혼선이 일어날 것을 미리 각오하고 대인배가 되거나, 어떻게든 일정한 거리감을 만들어내든가 적당히 조율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캐릭터화해 스타성을 누리는 것이란, 지나치게 잘 드는 양면의 칼날이다.

김낙호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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