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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알코올성 위염?


<난중일기>에 나타난 술자리와 앓아누운 기록을 한의사와 양의사에게 물어보았더니…
등록 2009-04-21 06:38 수정 2020-05-02 19:25
이순신 장군은 알코올성 위염?

이순신 장군은 알코올성 위염?

4월28일은 이순신 장군이 탄생한 지 464년 되는 날이다. 애족·애민 정신, 리더십, 군사적 지략 등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더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위대함에 더해 내가 그분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중요한 시기에 자신의 공사 일거수일투족을 진솔하게 일기로 남겼다는 점이다. 나는 몇 년 전 를 읽으면서 일기 곳곳에 등장하는 장군님의 숱한 술자리와 병이 나 자리에 누운 사례들의 관련성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이순신 장군은 술을 즐겨 마셨는데, 그것이 술병으로, 또는 질병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이었다. 우선 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의 술 마신 기록과 앓아누운 기록을 날짜별로 뽑아 한의사 두 분, 양의사 한 분에게 진단을 부탁했다.

한의사 이유명호씨는 이순신 장군의 병인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외상(外傷·기후가 감당이 안 돼 오는 병)으로, 해풍과 찬 기후에 노출돼 늘 상한병(傷寒病)에 시달렸을 것이다. 고된 업무와 전투훈련으로 자주 부상을 당했으나 치료는커녕 휴식도 없는 상황이라 심한 관절통·근육통을 앓았을 듯싶다. 그리하여 신음 소리를 내며 통증으로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밤을 지새운 듯하다. 한의학에서의 병명은 역절풍(歷節風)으로, 전신 마디마디가 다 아팠을 것이다. 또 내감(內感·안에서 생기는 병)으로, 끼니가 불규칙하고 조악해서 위장에 탈이 난 경우가 많았을 터이다. 온백원을 먹고 변을 본 후 시원하다는 걸 보면 변비 기운도 있었던 듯하다. 하루 중 가장 체온이 떨어질 때인 새벽에는 땀이 나지 않는 것이 건강한 상태다. 밤사이에 식은땀을 흘리는 것은 몸을 호위하는 위기(衛氣)가 약해져서 오는 허증으로 도한증(盜汗症)이라 부른다. 원인은 기혈이 쇠약한 몸에 허열이 떠서 음허화동(陰虛火動)이 겹칠 때 나타난다. 칠정(七情)은 요즘의 스트레스다. 여러 감정이 과도하게 압박하면 칠정병이 된다. 생각을 골똘히 하다 보면 식욕을 잃고 안색이 나빠지는데, 장군도 늘 고뇌와 번민으로 칠정 손상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번민과 고통을 견디려고 술을 통음해 잠을 청했을 것이다.”

한의사 강경태씨는 이순신 장군의 많은 음주량과 잦은 음주 회수에 주목했다. “이순신 장군의 증세는 한의학적으로 주상(酒傷)에 해당하고, 서양의학적 병명으로는 알코올성 위염 및 알코올성 췌장염에 해당될 것으로 판단된다. 과음으로 위나 췌장에 염증이 생길 경우 속이 쓰리고 복통이 심하며, 식은땀이 날 수 있다. 그리고 심하면 구토·설사(토사곽란)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다만 간은 이상이 있어도 특별한 증상이 없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에게 알코올성 간염이나 간경변증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연세대 의대 문병수 교수의 진단은 정신적 측면에 무게를 뒀다. “에 이순신 장군의 병세에 대한 확실한 징후가 없어 상상력으로 진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활도 잘 쏘고 술을 자주 드실 정도여서 육체적으로 쇠약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정서적으로 민감한 분인 것 같다. 어머니를 걱정하거나 아들이 떠난 것에 대해 안절부절못하고 측은해하는 다정다감한 분이다. 이순신 장군은 신열과 오한이 나고 식은땀이 자주 난다고 하며, 이것이 자기 병의 근원이라고 스스로 진단한다. 이런 증상은 신경이 예민하거나 잘 놀라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쌓아놓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데, 내분비계 자율신경의 조절에 이상이 생겨서 발생한다.”

싸움에 나가 죽는 병사보다 병들어 죽는 병사나 굶어 죽는 병사가 더 많았던 전선 현실과,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봉건왕조의 무능과 부패 사이에서 뼈와 살을 깎아가며 외로이 왜적과 맞섰던 이순신 장군! 술이 질병의 원인인지 아니면 질병의 고통을 잊으려 술을 마셨는지는 모르지만, 이순신 장군이 술이라도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임진왜란의 결말과 우리 민족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blog.naver.com/hakm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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